1. 책이름 : 눈빛의 형상
판형 : 무선제본
쪽수 : 84p
가격 : 12000원
2. 작가이름 : 박지윤
3. 책소개
눈빛의 형상은 바다에 이어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이 알을 깨고 나온 것 처럼 제가 이제 그 어떤 상처를 딛고 마주하게 된 세상의 시점으로 쓰게 된 시집 입니다. 그간의 아픈 기억들은 이제 저는 감당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믿고 사랑을 믿고 세상에 갓 나온 어린아이처럼 많은 것을 부딪혀보고 쓰게 된 책입니다. 이것은 여러 사람에 대한 감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그간 만났던 사람들의 눈빛들이 축적되어 생긴 형상들을 모은 스케치들입니다. 어둠과 밝음이 뒤섞여 매우 혼란스러운 내용이지만 글을 읽어가면서 저와 함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눈빛의 형상 표지
3. 눈빛의 형상 머릿말
나의 시선은 언제나 부재하는 것에 도달해있고
목적없는 허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사라져가고
상실감의 일관성을 가진다
눈빛의 형상은 길게 길게 늘어지고
나는 유성을 따라가는 소년들처럼
그곳을 향해 좇는다
형상이 몽글몽글 맺히기 시작하면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치기 시작한다
만약 내 뒤가 절벽이라면
4. 끝맺음 말
목적없이 방황하는 영혼들 그 속에 나 또한 포함되있다 그런데 너는 어디에 있는지 자취도 없이 소멸한다 내가 보았던 너의 눈빛은 길게 이루어져 있단걸 확신했는데 부재의 선명함이 나를 들끓게 한다 가죽 영혼 피 살결들은 실재했던 것인가 허무가 영혼을 완연히 감싸고 나는 길을 잃은 채 정처없이 공허를 쏘다닌다 외로움의 주린 배를 감싸고 너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일까 기대와 또 기대하며 너는 그래주길 바라면서
5. 첨부사항 시
1번 봤어
봤어 너를 봤어 무작정 소리를 뚫고 진공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에서 계속해서 봤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구나 항상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와 내 세계의 반경이 있다면 그 경계선을 좀 더 넓히기 위해 공사중이야 네가 준 무언가를 지지대 삼아 좀 더 멀리 요트를 띄운다 새로운 대륙을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국면 무섭지않을까 미풍이 돛에 힘을 실어준다 무언의 말을 내 안에 새기면서 나는 천천히 밀려나간다
2번 타투
나는 넘치는 마음을 가졌지 한 때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모두 다정하게 굴었어 누구하나 빠뜨리지 않고 최대의 사랑을 준 것 같아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의 수평선처럼 계속해서 노를 저었어 어디로 도달하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설계되어있거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눈빛들을 주고받았어 이름들 하나 하나 마음 속에 각인시키면서 나는 타투를 새겼지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그 자리에는 까만 잉크로 살갗을 뚫고 퍼진 검은색이 자리잡고 있어 지우고 싶지않아 칼로 도려낼 수 있지않을까 싶었지만 도저히 용기가 없어서 그대로 두었어 언젠가 흐려질 수도 있으니까 잊히지 않는 이름들을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가 앞으로도 이어질 이름들 더 이상 문신을 할 수 없어지는 지경이 올 때까지 내 몸 어느 곳에라도 새길 수 있어 앞으로도 빛이나는 순간을 영구히 채워넣을거야 약속을 할게 떠나지 않고 슬퍼하지 않도록 다정할 수 있게 노력할게 바세린을 손가락에 덕지덕지 묻히고 흐려져가는 이름들에 눈이 부시도록 반들반들하게 바를거야 너는 잊어가더라도 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는 영속성을 지닐 수 있도록 심해 끝까지 담궈둘거야 그러면 이제 인사를 하자 다시 또 볼 수 있도록 안녕이라고 할게 언젠가 다시 만나면 안녕이라고 말하자
3번 0과1
우리들은 주르륵 미끄러졌고 흐트러졌다
늘어나는 점도의 슬라임처럼
대화의 사이가 끈적거린다
너는 어디에서 왔니
어느 곳에 있을 예정이니
예 아니오
0 과 1
중간은 없어
심령학을 배우는 어느 곳에선
분신사바를 통해서 마음을 전한다고해
그래?
우리의 마음은 어느 곳에도 찾을 수 없는 걸
순간 검은색 물체가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삐- 삐- 전산입력 오류입니다
시스템 언어를 다시 입력해주세요
실제와 실재는 다른 것 처럼
홀로그램을 본 듯 하다
너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내 세계는 하나 뿐인데
너는 다른 우주에서 온 것만 같다
알아낼 수 없는 명령어 입니다
어쩌면 절대로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4번 눈빛
눈과 눈이 마주칠 때 하나의 우주가 발생한다
서로가 떨어지는 행성처럼
1초마다 폭발음이 발생하고
눈웃음을 짓는다
나는 너의 눈빛을 읽을 수 없고
너 또한 나를 읽을 수 없다
같이 함께 한다는 것
매일같은 폭발음을 들으면서
폭죽을 터뜨리는 것 같다
다시 눈웃음
언젠가 너와 나는 같은 표정으로 웃고있다
5번 말해
미풍이나 송풍
미약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맑게 개었다
어린아이의 명랑한 웃음소리
나는 걷는다
길을 따라 걷는다
햇살이 나를 따라온다
볕이 좋은데서 담배 한대를 태운다
내가 입은 옷은 가볍고 느슨하다
사장님 여기 아이스 라떼 한잔이요
먹고 갈게요
1층에 있는 카페가 좋아
자주 나갈 수 있으니까
너를 마주하는 건 나를 지긋이 관찰하는 것
너의 자유를 존중해
나의 자유를 존중해
콘크리트 벽이 좋아 단단하니까
한 번에 무너져내리지 않으니까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말하게 되면 알 수 있을거야
온기 체온 내밀한 눈빛 살결 따스함
불필요한 감정은 가지고 있어봤자
마음만 무거워 지잖아
마음이 몸을 질질 끌게 되잖아
말해줘 말해 세계에다 대고 크게 말해
6번 불
나는 불이에요
순식간에 화르륵 타오르고
빨리 사그라드는 그런 불이에요
번지는 속도도 빨라요
물 속에 물감을 떨어뜨리면 번져나가는 것 처럼
나는 그대에게 모든 것을 맞춰줄 수 있어요
원하는 걸 말해주세요
필요한 걸 말해주세요
정확하게 원하는 말을 해드릴게요
구체적일수록 좋아요 확실한게 좋으니까요
나는 그대가 보고싶습니다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나는 그대와 함께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대와 있는 순간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세하게 말해줄 수 있어요
싫어하는 것이 있으면 먼저 말할게요
그리고 그대도 말해주세요
저는 다 맞춰드릴 수 있다니까요
그대는 그대대로 나는 나대로
수평선 위를 넘나들면 되요
나는 존재를 사랑합니다
존재의 무게 부피 질감 촉감 등을 따지지 않아요
아 향 정도는 좋았으면 좋겠어요
보다싶이 황홀한 한 순간에
그대를 사랑하게 되요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함께 웃는 그 순간들에 끼어드는
순진무구한 표정들이
서로의 형상을 만들어내요
웃다가 지치면 각자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면서 순간을 지나쳐갑니다
그렇게 그렇게 쉽게 빠르게 하면 되요
7번 돌고래
이곳이 아닌 어디론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중2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내가 존재하는 순간들은 모두 고통이었고 숨쉬는 것 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일들이 많았다 28살이 되어서도 나는 아가미가 없는 물고기처럼 물 속을 헤어치고 다닌다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 처럼 아무리 음파를 내뱉고 다녀도 좁은 유리벽에 부딪히고는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일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나를 구경하고 내가 나를 보기위해 유리벽 앞에 우두커니 서있을 때를 보고 즐거워하고 사진을 찍는다 나는 그런 순간이 아냐 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 밖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보며 돌고래가 왔어! 우리를 보고 있어! 라며 소리를 친다 벽에 갇혀 되돌아오는 음파는 저 밖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나를 투명한 유리벽이 아닌 저 안으로 숨겨주세요 저 치들의 눈알들이 수백개씩이나 모여있으면 저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저기 저 안쓰럽게 나를 쳐다보는 눈빛들도 보고 싶지가 않다 나의 비정형 행동에 대해서 반쯤을 알고서 쳐다보는 것이겠지 왜 나는 이곳에서 태어났을까 사람들은 왜 내가 미쳐가도록 놔두는 것이지 바닥에 축 가라앉는다 죽은 것 처럼
8번 한 여름밤의 산책
날이 조금씩 어둑어둑 해지고 새벽의 기운이 몰려올 때 여름이 오는 기척을 느껴 설레이게 된다 가벼운 니트 원피스 한 장 걸치고 속옷은 저멀리 던져두고 풀냄새 가득한 숲으로 걸어들어간다 풀벌레들 찌르찌르 울면 내 마음도 찌릿하게 전율을 일으킨다 밤공기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냄새가 있다 밤의 냄새 담배를 물듯 시원하게 한 모금 내뱉으면 폐 속에 여름의 밤공기가 담긴다 폐포 하나하나 그 내음이 기억된다 작년의 여름 재작년의 여름 그 그 작년의 여름마다 전부 다른 냄새로 기억된다 습하고 진득한 공기가 우리 사이를 메우고 마치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다 정맥 다발들이 전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의 순환기 구조처럼 우리는 다공성인 것 처럼 한 쌍의 육체가 나비처럼 붙어 있다 나는 찢겨진 날개로 다른 한 쌍을 지겹도록 찾는다 우리는 전부 돌연변이다 비상식과 상식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상식을 따를 수 없는 유전자 구조로 이루어졌다 겨우 바느질해서 가진 날개는 독자적인 개체로 움직인다 징을 치면 공간이 울린다 음파는 위 아래로 곤두박질 치면서 날개를 흩뜨린다 사락사락 얇고 부수어지기 쉬운 날개들 그것들은 여름밤에 곧잘 이루어지곤 한다 언제나 여름밤은 소녀들을 불러모으는 시각이다
9번 중절
중점을 중절이라 읽고 잠시 아득해졌다
환락과 오락은 어떻게 달랐던가?
잘 끼워맞춰진 나무 바닥
틈새마다 먼지처럼 나는 그 사이를 가로지른다
웃기게도 이제는
시가
단어가
어조사가
잘게 쪼개질 때마다
머릿 속이 점차 어지러웠다
전진과 후퇴가 점멸하듯이
이따금씩 고장이 나버린 신호등처럼
깜빡인다
오랜동안 맑았던 눈은
어느사이 뿌옇게 흐려져버리고
세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이 슬프게만 느껴진다
우리가 무형의 존재로 있었다면
부딪히지 않을 텐데
중절되버린 모든 일이 한스럽다
태어나지 못하고 아스라져가는
가능성들 그런 가능성이
나를 미치게 한다
10번 공간감
공간이 주는 압도감 정적인 압박감으로부터의 탈피 소리가 없는 곳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다리부터 몸통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그 다음에는 정신까지 잡아먹힐 차례이다 살아있는 곳은 언제나 소리가 나야한다 안 그러면 사람은 미친다 할 것이 많다면 상관없다 흰 방 벽지를 보면서 양을 세고 있노라면 뇌세포가 자멸한다 언젠가 총명했던 눈빛도 빛을 잃고 일그러진 자아상을 만들어낸다 누구든 어디에서든 나가서 시끄럽게 떠들어야한다 공간은 힘이 있어서 인간이 혼자 자리하기에는 버틸 수 없다 살아 있는 무언가를 가져다 놓아야 한다 그래야 정신차릴 수 있게된다 몸을 게을리 하지 말고 쉴 새 없이 움직여야한다 귀신같이 붙는 잡념들이 마음을 해친다 지속적인 소통을 해라 계속해서 무언가를 붙들어라 무언가가 되있을 것이다 자신을 방치하지 말고 계속해서 노출시켜라 말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언젠가는 그것이 문제가 되어 너를 또 해칠 것이다 시기의 문제이지 언제 말하든 개연성은 없다 누군가 관계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졌다면 그 문제는 반드시 풀린다 남을 똑바로 마주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몇 겹의 가면을 쓰고 남을 대하니까 전부는 믿지마라 실체를 보여주는 것은 비언어적인 행동 뿐이다 그 찰나를 잘 보아두어라 사소한 것 하나가 언젠가 큰 불이 된다 너무 자아를 뒤집어 심연까지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 본다 심연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적당히 생각하고 적당히 움직여라 _ 지윤에게
눈빛의 형상 / 박지윤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