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는 시소
저자: 이병금
발행: 북허그
발행일: 2019. 4. 25.
정가: 7,000원
쪽수: 168쪽
규격: 116*200*8.3(mm)
ISBN: 979-11-957661-2-3(03810)
죽음의 레이스에서 ‘나’를 불러 세우는 방법,
산문시와 초단편적 글쓰기를 통해 시간과의 싸움을 새로 구성해냈다
도서소개
작가는 하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시간, 그 난폭성 앞에서 인간은 과연 속수무책일 뿐인가. 죽음 너머를 알고 싶지만, 이 미션에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지금도 시간이란 괴물은 침을 질질 흘리는데. 빨리? 가진 거라곤 낡은 일상뿐인데? 일상을 넓게, 멀리, 높이, 깊게…. 열어보기로 시간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하긴 그것밖에 할 일이 없기도 하다. 오늘을 사는 글쓰기를 통해 점점이 자라나는 죽음이란 구멍들을 설기얼기 꿰매보는 것! 따라서 그녀의 글쓰기는 쉬지 않고 이야기하려는 시도가 가득하다. 「시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너 없는 시소』 1부 작품들은 2부의 것들보다 다소 시적이지만 시라고 하기엔 산문적이다. 또한 산문이기엔 시의 어법에 기대고 있다. 2부의 작품들은 이야기시라 할까? 초단편으로 불러준다면 좋겠지만 그것들은 아직 젖도 못 뗐다. 너무나 자기 고백적이어서 상이용사 같다. “이건 소설이 아니군, 뭣도 아니야!” 누군가 내 글을 내던진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소설을 한 번 써보는 게 꿈이었으니까. “꿈이라면 다 용서되냐?” 뭐, 그렇게라도 말해주는 독자가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1부, 2부의 장르가 조금 다름에도 여기 한 집에 모인 이유는 글의 장르가 이도 저도 아닌 까닭도 있다. 굳이 또 다른 이유는 그것들이 하나의 물음을 향하고 있어서이다. 죽음 너머를 알고 싶다.“ 오늘이 주어진 삶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 오늘을 위해 누군가 무수하게 죽어갔다. 죽음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은 둥근 공 모양일까? 안도 밖도 없겠지? 누군가의 죽음에 빚을 져야 살 수 있는 이상한 삶의 방식, 그래서 오늘이 끝나가는 시간에도 글을 쓰고 병을 앓고 여행을 떠난다.
출판사 서평
2017년 『어떤 복서』를 출간한 이병금 시인은 거대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 먼지와도 같은 인간의 실존을 직시한다. 시간의 선적 흐름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인간존재란 싸움꾼일 수밖에 없다. 이번 포에세이집, 『너 없는 시소』에선 싸움꾼으로서 다른 무기를 들고 나타났다. 시인은 시적 언어보다는 일상적 어법으로 말하고자 노력한다. 「시인의 말」에서 그녀는 초단편을 써보는 게 꿈이란다. 그만큼 허적한 인간 상황을 촘촘한 언어로 메워보려는 전략이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은 시인 자신이지만 만들어진 주인공이기도 하다. 시인이 말하듯 ‘백조’로 상징된 주인공은 평화로운 호수에 구멍이 나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은 조금씩 빠져나가고, 그럼, 그 구멍 속으로 빨려들기도 전 미리 죽어버릴까?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하다 보니 이야기로 짜인 세상엔 친구들이 많아졌다. 멸치 볶음을 보내준 친구, 아버지 친구, 익명의 친구, 이미 죽은 친구…. 친구들 속에 작게 감긴 11차원의 기억?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법은 작고 나지막한 이야기가 아닐까. 시간과의 싸움에서 바늘귀만한 승리 몇 개만 이루어도 이번 생은 성공적이라고 해두자.
차례
시인의 말
1. 백조야, 날자
백조야, 날자
숨바꼭질하자
저장탱크가 새고 있다
이야기들은 어디서 왔을까?
승리자의 얼굴
아가의 시간에 놀다
언젠가 이곳에 왔던 것 같다
그 사람은 두 시 세 시의 잔돌이 비치는 물가에 앉아 있었다
십일월 마지막 날의 동화
햇살나무 수풀
멸치볶음을 보내준 너
결승점이 보이지 않는 경기
꽃잎처럼 펼쳐진 귓바퀴
2018번째 왔다가갔다
난 모래알이라서
언어 없는 마을
아버지와 함께 흘러간 마흔 해
이상한 나라의 두 여자
가을증폭기
질문하는 머신
동짓날, 빛나는 다리 위에서
죽음이여, 안녕!
3월의 찻잔
서쪽 마당
날씨의 나라를 여행하기엔 파주의 사월도 좋다
오월의 力士
2. 3초
공중누각
볼펜으로 배를 저어
여보세요, 누구 없나요!
머리에 혹이 생긴 후
화성에서 온 선물
2012년, 덤의 철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3초
어떤 택배기사의 위로법
익명의 이웃
짝짓기의 계절이 오면
바늘귀만한 시집
6162
복사꽃이 그날 피어있었다
이젠 그녀의 얼굴조차 잊었지만
잠시만 가족
멸치의 고래사랑
너 없는 시소
한밤중 그녀는 울고 있었다
놈의 여행
꽈리밭에 달팽이 보셨나요?
영감님은 호스피스를 홈피스라 한다
그냥 좋아서 하는 거야
삼인행엔 스승이 있다고 들었다
작가의 산문
책 속에서
치료용 적외선 알전구보다 작고 희끄롱옹 태양이 구름계단을 밟으며 사라져갈 때, 종이로 만든 폰으로 셀카를 찍으며 1급수 비행사를 불러냈다. 근심 검버섯 돋고 눈두덩무덤 부풀어 주름 그물에 갇힌 턱주가리굴쭈굴 남자도 여자도 아닌 b, 저편에서 알은 체를 한다. b는 폐휴지 감옥으로 날마다 감금되어가는 벌을 받았다.
p.10 「백조야, 날자」 중
울음새들이 벌레소리와 함께 웃었다. 하늘은 조금 높아지고 부풀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불러내어 팽팽하게 감긴 전선을 배송하고 싶다. 그것밖에 없어? 그게 전부야? 이게 네가 살아 있는 이유인 거야? 그건 새들도 할 수 있잖아, 벌레들도 하고 있잖아.
가을증폭기!
더 멀리까지 볼륨을 높이는 건 내가 가장 잘해! 새들보다 벌레보다 내가 잘해! 글을 쓸 수 없을 때 레이스가 끝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나 살아있음을 증폭할 수 없을 때, 그때!
p.37 「가을증폭기」 중
구름으로 목걸이를 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멀리서 구름을 바라볼 때다.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이 사라진다. 결국 함께 걸어야 했던 그와 추락할 일만 남았다. 정해진 패배의 게임에 우리만의 룰을 정할 수 있을까. 자. 앉아! 네가 버튼을 누를 차례야! 이 게임을 멈출 수가 없다. 어제, 오늘, 내일도 게임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한 아이를 만나곤 한다. 내 안쪽 게임방을 열어보면 십 년 전이나 삼십 년 전이나 어린아이 하나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고 있다.
p.71 「머리에 혹이 생긴 후」 중
보릿고개 꼭대기에 올라서면 겨울잠에 드는 짐승이 부러웠다. 펼쳐지는 부채의 부챗살 감옥을 벗어나려고 몸을 던지는 골목장사꾼에게 되돌아 온 건, 끝내 불이 꺼지지 않는 일상이라는 무대. 반복강박의 횟수가 점점 빨라지는 십년구렁이, 장사 구멍의 물이 마르기 시작하면 천만 원 빵구 나는 건 두 달이면 충분하다. 아마 그때도 보릿고개 넘기기가 숨차오는 삼월의 꼭대기였다. 남편과 나는 투잡에서 쓰리잡으로 접어들었다. 장사를 해서는 채워지지 않는 이자구덩이 때문에 우유배달이나 신문배달처럼 새벽타임의 일을 시작해야 했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택배는 아니고, 카드를 배달하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자주 주저앉았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가 가장 부끄러웠다.
p. 87 「백조야, 날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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