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착한 암 혹은 흔한 암이라고 불리는 갑상선암은 암이라는 단어의 공포는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아픔은 드러내기 어려운 질병이다. 초음파 검진을 통해서 쉽게 발견이 가능하고 완치율이 높기 때문이다. 초기에 발견하는 경우 고통스러운 항암치료 없이 부분 절제 후 바로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한 것도 착한 암이라는 별명 짓기에 한몫했다.
그렇다면 갑상선암 환자들도 자신의 질병을 착하다고 생각할까? 갑상선암에 걸리면 암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그대로 느끼면서 다른 암 환자들처럼 동요할 수 없는 굴레에 갇힌다. 췌장암이나 유방암처럼 쉽지 않은 치료 과정을 버텨야 하는 다른 환자들 앞에서 감히 아픔을 티 내기 어려워서다. 심지어 돈 버는 암, 암도 아니더라는 소리까지 감당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아닌, 그렇다고 죽음에 맞서 싸워야 하는 중환자도 아닌 갑상선암 환자들. 그들은 마음껏 울지도, 그렇다고 속 편히 웃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주변을 안심시키고 자신을 돌봐야 한다. 혹시 모를 전이의 가능성을 염려하며 혼자 두려움에 떨면서.
〈갑상선암에 걸리면 스카프 쇼핑부터 하는 게 좋다〉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날부터 1년 동안 쓴 투병 일지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저자 문희정이 ‘마흔의 뉴스레터’로 발행했던 암(1)~(3) 원고가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공개하기 어려웠던 내밀한 속내를 100여 명의 친밀한 뉴스레터 구독자들에게만 털어놓았다. 그러다 이 글을 책으로 엮게 된 것은 최근 그녀의 주변에 또 한 명의 갑상선암 환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저자가 갑상선 유두암 진단을 받고도 의연히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주변에 이미 갑상선암 수술 후 잘 회복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암 진단 후 괴로워하거나 절망하기보다 더욱 소중히 삶을 끌어안았다. 그들이 질병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는 암 진단이 꼭 삶의 불행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했고, 덕분에 그녀는 아주 쉽게 그녀에게 찾아온 질병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삶에 찾아드는 크고 작은 불운에 휘청이는 사람들에게 〈갑상선암에 걸리면 스카프 쇼핑부터 하는 게 좋다〉는 가볍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넨다. 여기에도 갑상선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흔한 불행을 향해 조용히 손을 흔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갑상선암 환우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불행과 고통 사이 다행과 감사를 발견할 줄 아는 저자의 담담한 경험담을 통해 상처를 감싸줄 스카프처럼 보드라운 위로를 얻길 바란다.
<저자 소개>
문희정
두 아이와 부둥키고 삽니다.
1인 출판사 문화다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공저)』
『여행자의 편지, 치앙마이』
『정원을 돌보며 나를 키웁니다(독립출판)』
등을 썼습니다.
<작가의 말>
쓰고 만든이의 말
갑상선 유두암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행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제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암 환자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의연한 태도와 회복에 집중하며 일상을 소중하게 가꾸는 성실한 모습은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어요. 그렇기에 ‘왜 하필 나에게’라는 원망은 당치도 않았습니다.
저 역시 여기에도 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조용히 손들기 위해 일기를 썼습니다. 질병의 종류와 아픔의 강도를 떠나, 겁먹은 누군가를 손잡아 주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더불어, 이 책을 구입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이 읽어주신 덕분에 한 권당 1,000원씩 중앙대학교병원 암환자 생명지원사업에 기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디작은 1인 출판사 문화다방이 9년째 기부를 이어갈 수 있는 건 모두 독자분들이 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읽는 사람 덕분에 여전히 쓰는 사람으로 올해도 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목차>
1. 놀랍도록 아무렇지 않았다 / 11
2. 이게 바로 암 환자의 우울이다, 이것들아! /25
3. 양보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애쓰는 중 / 37
4. 암에 걸리면 다들 친절해진다 / 45
5. 아픈 내가 다 큰 어른이라 우리 엄마는 가슴이 덜 아플까 / 65
6. 갑상선암에 걸리면 스카프 쇼핑부터 하는 게 좋다 / 81
7. 마흔의 여름 방학 / 97
8.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거야 /113
쓰고 만든이의 말 / 135
<책 속으로>
암일 수도 있다. 결과는 최악을 상상하고 과정은 대책 없는 긍정으로 밀어붙이는 편이다. 불행을 모두 피해 가는 사람은 없고, 이게 내가 겪어야 하는 불행이라면 감당해야겠지 담담하다. p.14
갑상선 유두암은 우리 부부가 처리해야 할 여러 일 가운데 하나로 전달됐다. 마치 세탁 세제가 떨어졌다는 이야기처럼 일상적이었다. p.19
마치 내 인생 같았다. 온갖 거 다 챙기다가 정작 자기 것은 못 챙기는. 온갖 거 다 신경 쓰다가 자기는 스트레스로 암에 걸려 버리는 병신 같은 인생. p.27
“너 없어도 애들 안 굶어. 그리고 좀 굶어도 안 죽어. 너 없다고 애들 어떻게 안 되니까 걱정 하지 마.”
나는 그 말이 다 맞다는 걸 알면서도 이 손을 놓지 못한다. p.36
저 밑에 있는 나를 자꾸 끌어올려 위에 세운다. 좋은 것은 너 먹어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힘들면 쉬어라. 내 아이에게 하듯 나를 돌보는 흉내를 낸다. p.39
‘그래, 수술 전에 얼굴 한번 보자. 맛있는 거 먹고 힘내.’ 같은 이야기들이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진짜 만남으로 이어졌다. 암을 앞두고는 ‘언젠가’나 ‘나중에’ 같은 막연한 약속은 하지 않았다. p.46
암이라니. 내 친구가 암이라니. 그 사람이 암이라니. 그 아기 엄마가 암이라니. 내 가족이 암이라니. 사람들은 곧 태도를 바꾼다. 훨씬 상냥해진다. p.48
입원 가방을 싸면서 왜 이게 입원이 아니라 여행같이 느꼈는지 드디어 알았다. 저녁밥을 차려서 누가 내 침대로 가져다주다니. 오늘은 뭘 해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끼니마다 백반 한 상이 제공된다니. 나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p.60
“혼자 있으려니 너무 무서워.”
환자복을 입은 어느 아주머니가 복도에서 통화하며 운다. p.68
아프지 말지. 당신들도 나도, 어서 나아서 진료가 끝난 병원 문밖의 사람이 됩시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응원을 보낸다. p.70
아이는 신경 쓰지 않고 연승하고 있는 한화의 득점에 환호하고 있을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정도는 홈캠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또다시 울화가 치민다. 떼어 낸 내 암세포가 아마 이렇게 처음 생겼을 것이다. p.74
누군가는 돈으로, 누군가는 선물로, 누군가는 말과 글로 나를 위했다. 그 진심이 전해져서 더 아플 수도 없었다. 이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병을 얻고서라도 결코 잃고 싶지 않다. p.77
내 체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무리하지 말고 잠시 쉬어 가라는 몸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버티지 않는다. p.80
스카프 쇼핑은 다른 사람들의 불필요한 걱정을 막기 위함이자, 내 삶에 사소한 즐거움을 더하기 위함이었다. p.82
고마운 사람들에게는 바로 보답하지 않는 편이다. 대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머릿속에 고마운 사람들 리스트를 잘 정리해서 가지고 있다가 그들이 보답으로 느끼지 않을 때쯤 되돌려 주고 싶다. p.88
하나하나 갚을 길이 없을 때는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도 하자. 내가 마음을 줬던 사람이 허튼짓하지 않고 밝은 쪽으로 걷는 것이라도 보여 주자. 일단은 죄짓지 말고 내 삶을 충실히, 건강하게 지내는 것. 그것을 목표로 한다. p.88
갑상선암 환자에게 스카프는 보드라운 무기이자 상처가 두렵지 않을 포근한 갑옷. p.91
나에게 금융 치료는 그런 의미다. 언제나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잘하지 못했던 것. 고마웠던 사람에게 돈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 p.101
“암에 걸렸다는 건 나쁜 일이잖아? 그런데 수술하고 나서 엄마는 더 건강해진 것 같아. 채소도 많이 먹고 운동도 하고. 앞으로 더 건강해지려고.”
“엄마 몰랐구나?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거야.” p.115
더 이상 나의 아픔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모두에게 잘된 일이었다. p.116
한때 목표였던 일희일비하는 사람 말고 이제는 분노할 줄 아는 인간이 되고 싶어진다. 한 번 폭발해 보고 싶다. 그러면 나는 암 같은 건 안 걸리고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 없이 속 편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p.124
다행히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과 같은 상태로 큰 이변 없이 병원을 나올 수 있었으나 이제는 알고 있다. 이 무사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p.125
가능하다면 오래 살고 싶다. 몇 살이든 그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악착같이 찾아내 즐기고 싶다. p.129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원하는 것을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그리게 되었다. 노화되는 신체에 발맞춰가면서 그 나이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p.131
노인이 되어도 나에게 허락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후회하거나 역정 내지 않고 달라진 몸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p.131
<서지 정보>
제목: 갑상선암에 걸리면 스카프 쇼핑부터 하는 게 좋다
저자: 문희정
출판사: 문화다방
발행일: 2025년 4월 10일
쪽수: 136p
판형: 120*180mm
가격: 16,000원
ISBN: 979-11-989473-1-4
갑상선암에 걸리면 스카프 쇼핑부터 하는 게 좋다 / 문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