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마지막일 때 마지막이라는 걸 알 수 없어서
서로를 최대한 오래 끌어안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
나는 첫 번째 집에 사는 25년 동안 방 없이 살았다.
한 살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내 방이 없었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개 놀랐다.
그러나 방이 없는 생활은 힘들고 슬픈 동시에 기쁘고 즐거운 모든 감정을 내게 알려줬다.
이 책은 오랜 세월 자신의 방이 없었던 이가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머물렀던 사람, 머물다 떠난 사람, 차마 오지 못한 사람들이 그의 방에 짙은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이 쌓이고 쌓여 그의 방은 사면이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는 어둠에 머물러 있지 않고 창을 내어 빛을 들인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용케도 빛을 찾아낸다.
결국 이 이야기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써의 ‘방’을 넘어, ‘마음의 방’을 구축해 나가는 견고한
여정이다.
<저자 소개>
지혜
평범한 장면에 한 번 더 눈길이 갑니다.
지혜는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카메라로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후 관찰하는 도구로 핸드폰을 사용해 사진과 영상을 찍고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평범하게 지나가는 일상이 모여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록이 지닌 힘을 믿고 있다. 매일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 함께 나눈 대화가 삶에 어떤 모습으로 기여하는지, 기록하는 삶으로 이야기한다.
편집숍 오브젝트, 엽서 도서관 포셋 브랜드 에디터로 일했으며 「매일이 그렇듯」 개인 전시를 열었다.
출간 도서로는 「내가 놓친 게 있다면」, 「생활메모집 시리즈」가 있다.
<작가의 말>
나는 자주 많은 걸 놓치고 또 그만큼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택한 방법은 되도록 많이 쓰고, 남기며, 모으는 것이었다. 집과 일터, 때가 되면 바뀌는 창밖의 풍경, 가족과 친구들이 남긴 것. 가리지 않았다. 이렇게 친밀하고도 낯선,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매일이 쌓이고 쌓여 삶이 흘러간다는 것을 믿고 싶었나 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순간을 함께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모든 걸 나눌 수 있지는 않을까. 내가 퉁퉁 부은 눈으로 그 노을 속에서 본 것. 혼자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 걸으면서 느낀 것. 길고 짧은 대화들과 다시 돌아올 일 없어서 아름다웠던 시간들. 아직 말해지지 않은 비밀들까지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늘상 꿈꿨던 것 같기도 하다.
문득 주변이 고요하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춥고 늦은 밤에도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가지만 나는 매일 내가 살아 있어서 가능한 일들을 하고 싶다.
<추천사>
단지 기억력만 좋은 사람에겐 ‘어쩜 저런 것까지 떠올릴까?’ 위주의 반응이 따라올 뿐이다.
한편 좋은 작가는 세세히 언급한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다시 말해 좋은 작가란 타인들이 작가의 기록을 접하는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억과 감정을 스스로 마주할 수 있게, 작품마다 사색의 공간을 창출해낸다. 그런 맥락에서 지혜는 본 책에서 인간에게 ‘마음의 고향’이란 과연 무엇일까 묻는 여정을 통해, 독자 개개인이 고유한 마음의 고향을 생생히 곱씹어 보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물을 수 있도록 ‘사색의 극장’을 마련한다. 작가는 본인이 체험한 세 번의 이사, 세 곳의 집, 세 사람의 죽음을 바탕으로 마음의 고향을 단일한 형태로 확정 짓지 않은 채 꾸준히 탐색해온 나날들을 페이지마다 상영한다.
이 극장에 마음이 동하는 이유는, 삶이란 본디 어떻다고 확언할 수 없다는 작가의 경계심 스민 문장들이, 나와 타자를 좀 더 다채로이 읽어보고픈 의욕의 불씨를 지펴주기 때문이다. ‘존재란 한 가지 표현에 정착하자마자 이내 다른 표현을 기다린다’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철학에 가닿은 지혜의 기록하기 덕분에, 나는 고백할 수 있다.
기쁨과 슬픔, 고통과 즐거움, 좋음과 싫음, 행복과 불행 등 삶을 이루는 서로 상반된 요소가 분리됨 없이 나란히 찾아올 수 있다는 지혜의 시야에 힘입어, 뭘 해도 뾰로통한 요즘 삶이 주는 오묘함에 대해 다시금 흥미를 느끼게 됐음을. 아울러 내가 속한 세계를 향해 여전히 궁금증이 생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혜의 태도로 말미암아, 어제보단 한 뼘 더 확장된 마음으로 내일의 삶을 들여다보고 겪어볼 용기를 품게 됐음을.
<책 속으로>
나는 첫 번째 집에 사는 25년 동안 방 없이 살았다. 한 살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내 방이 없었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개 놀랐다. ‘방이 없으면 어떻게 살았어요?’ 그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처음에는 그냥 ‘거실에서 고모랑 지냈어요.’ 하고 얼버무렸다. 방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그런 속마음을 숨기고 싶어서 얼버무렸는지도 모른다. 사실 자신만의 방을 가진 고모부가 부러웠고 방을 멋지게 꾸며 놓고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부러운 마음만으로 25년의 시간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방이 없는 생활은 힘들고 슬픈 동시에 기쁘고 즐거운 모든 감정을 내게 알려줬기 때문이다.
p20
이제 세상에 ‘엄마’ 하고 부를 사람이 없어진다는 건 무슨 느낌인 걸까.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뻥 하고 뚫리는 느낌일까. 구멍은 나날이 커져 결국엔 구멍 자체가 마음이 돼 버리는 건 아닐까.
p44
“지금 내 삶은 망망대해 같은 바다 위에 판자 하나를 간신히 건져서 표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야.”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연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의 폐에는 기본적으로 공기가 차 있어서 물 위에 가만히 있으면 홀로 뜰 수 있게 된다. 그걸 믿는 데까지가 오래 걸리는 거야.”
누구는 사람에게 기대고 술에 기대고 운에 기대고…. 사람마다 기대는 무언가가 있다. 기대야지만 넘어가게 되는 고비들이 있는 것이다. 연수와 내가 서로에게 기대는 것처럼 우리는 이미 무언가에 기대면서 살아가지만 실은 모두 홀로 뜰 수 있는 사람들이다. 판자 없이도 붙잡거나 기댈 만한 것이 없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주 잊는다.
p 109
엄마와 아빠가 있는 집에 놀러 가서 일주일, 길면 한 달을 지내는 것에 익숙했다. 잠깐 만났다가 오래 헤어지기. 함께였다가 다시 혼자가 되기. 그런 일에 익숙했지만 사실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아파할 일 없이, 혼자 될 일 없이, 어딘가로 돌아가야 할 일 없이 있는 그 자리에서 행복해지고 싶었다.
p 118
어떤 날은 바라는 삶에 성큼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떤 날은 먼 섬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그동안 많은 시간들이 내 안에 축적되었고 맨 아래에는 어떤 시간들이 있었는지 기억이 흐리다.
p139
아침에는 기운을 냈다가 저녁이 되면 지쳤다. 사람은 살기 위해 계속해서 같은 패턴을 만들어 냈다. 등 뒤로 따뜻한 햇살을 받고 서 있다 보면 내 앞으로 분명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불행이 두 발 아래 막 당도한 것 같이 짙고 어두운 그림자였다. 강한 햇살에 주변이 환했고 그림자는 검은색에 가까웠다.
나는 더 이상 어두워질 수 없을 만큼 짙어지는 그림자를 지켜보았다. 얼마나 오래 그걸 바라보고 서있었는지, 버스는 얼마만큼 더 기다려야 오는 것인지 문득 깨닫게 되었을 때 나를 가로질러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바닥을 타고 따라오는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였다.
p151
돌아온 사진 앨범은 수년이 지났어도 모서리가 닳아 있다거나 상한 곳 하나 없었다. 그것은 잘 보존된 행복처럼 보였다.
p175
동네 마트에 주민 등록을 했더니 매일매일 그날의 파격 할인 상품이 문자로 발송된다. 그 문자를 아침마다 보면서 이렇게 꾸준하게 사는 사람은 누굴까 하고 궁금했다. 성실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숨 쉴 수 있는 구멍까지 틀어막아 버리는 것만 같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으면 오래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숨이 벅찼다. 우리에게는 셀 수 없이 많은 때와 기회가 있고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럴 때도 저럴 때도 있다는 걸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p187
이미 건너간 시간들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저 너머에 있지만 우리 언젠가 그곳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들이
불빛처럼 환했다.
p196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순간은 크고 환한 빛이 비치던 날이 아니었다.
대부분 내가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늘이었다. 나무 아래서였다.
문 틈 사이로 비치는 좁은 빛을 볼 때였다.
p239
<출판사 서평>
누군가 펼치고 다시 접어 놓은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봤는데
헤어진 사람이 돌아올 운세라 했다.
헤어진 사람은 너무 많아.
아무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p200
반복된 이별은 때로는 체념을 부른다. 체념은 이별에 대한 방어기제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찌감치 체념을 학습한 아이는 뜨거운 햇살보다는 서늘한 그늘이
무지개빛 희망보다는 무채색의 적막이 더 편한 어른으로 자랐다.
하지만 그는 체념할 뿐, 낙담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잦은 이별에 슬퍼할지언정 삶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이의 틈을 발견한다.
이별과 만남 사이 불행과 행복 사이 삶과 죽음 사이의 틈을.
작가는 그 틈에 독자를 앉혀 두고 나지막이 말한다.
이 틈이 우리가 쉴 곳이라고.
이 책은 이미 떠난 이들을 통해 남은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습관적으로 뒤돌아볼지언정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어둠을 거쳐 빛으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그러하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단편적인 자기 고백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인 서사로서 공감을 일으킨다.
나아가 죽지 않고 살고자 하는 한 사람의 고요한 분투로 다가온다.
부디 이 책이 당신의 삶에 드리운 짙은 어둠의 틈에서
빛을 찾아내는 단서가 되기를 바란다.
<서지 정보>
제목: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
저자: 지혜
발행일: 2024년 02월 25일
ISBN: 9791188594290
쪽수: 240p
판형: 115*190mm
가격: 18,500원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 / 지혜 / 엣눈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