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오랜 타지생활로 인해 울산은 제게 고향이라는 느낌이 없습니다.
단지 취직을 했는데 소재지가 울산이었고, 현재 살고 있는 거주지일 뿐, 향수병에 돌아오고 싶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울산중구B-04구역은
늘 가슴한구석이 시큰거리는 고향같은 그리움이 있습니다.
그런 동네가 소멸하는 과정을 눈 앞에서 똑똑히 목격하는 건 여간 씁쓸한 일이 아닙니다.
세월의 풍파에 모든 것이 바스라지듯이 낡아버렸고, 주민들은 떠났고, 온기가 사라져 텅- 비어버린 동네에는
"철거예정" 같은 표시들만 남아있습니다.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했던가요? 뜨거운 뙤양볕에 살을 태워가며 동네 구석구석 사진을 모았습니다.
세월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들에 대한 쓸쓸함과 어떤 형태로든 붙잡아두고 싶은 절박함으로 이 기록을 남깁니다.
<저자 소개>
최보윤
울산중구B-04구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까지 이 구역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린시절을 보낸 작은 화단이 있는 작은 집, 그 집을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다시 사서 꼭 돌아오리라 꿈을 꾸었지만
재개발로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습니다.
<책 속의 문장>
2025년 7월 31일까지 퇴거 및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
건물마다 ‘철거’, ‘위험’, ‘출입금지’ 표시가 벌겋게 쓰여졌다.
건물에 내려진 잔인하고 살벌한 사망선고死亡宣告 같았다
터전을 떠나야하는 기분은 평생 쌓아온 탑이 무너지는 기분일까?
아니면 새로운 출발出發을 할 수 있는 설레임일까?
주인없는 고지서만이 문 앞에 잔뜩 쌓여있었고, 오가는 이 없는 다방 테이블엔
2025년 7월 8일자 신문이 이 다방茶房의 마지막 날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울산광역시 중구 보호수 지정현황’ 자료에 따르면
성남동 경로당에 있는 이 커다란 나무는 보호수保護樹로 지정되어 있지 않았다.
재개발로 어차피 사라질 운명이었기에 보호수로 지정을 하지 않았던 걸까?
동네를 빽빽히 채운 나무들과 식물들을 보면 늘 의문을 품는다.
사람은 이사가면 그만이지만 발 없는 나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남겨진 식물들은 마치 기차역에 버려진 미아迷兒 같았다.
새로 짓게 될 아파트로 20년, 30년, 50년 후엔 낡고 오래된 것으로 치부되어
똑같이 ‘사라져야 하는 흉물凶物’로 간주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오동나무는 바람에 씨를 퍼트려 아무데서나 뿌리를 내리고 잡초처럼 잘 자란다. 동네의 사정事情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철거라는 글자 위, 벽돌 틈새에 짧게 끝날 제 사람을 틔웠다.
어떤 집들은 낙후됐다는 표현보다 죽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기도 했다.
오래된 폐목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지고 공간에 생기生氣가 없었다.
‘정말 사람이 살긴 했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살았던 흔적보다 버려지고 잊혀진 시간이 더 오래 각인刻印된 듯 했다
이주종료일인 2025년 7월 31일, 분주하게 이사를 나가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마지막날까지도 머물러야했던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갈 곳이 없어서일까? 새 거주지를 찾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차마 떠날 수 없었던 마음이었을까?
7월 30일 밤, 동네에 드문드문 켜진 불빛들은 유난히 쓸쓸했다.
<서지 정보>
제목: 사라져버릴것들
저자: 최보윤
장르: 사진집, 에세이, 기록물, 아카이빙, 향토자료
발행처: 달의뒷면
발행일: 2026.02.17
쪽수: 184p
판형: 130*190mm
가격: 18,000원
ISBN: 979-11-98838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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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버릴것들 울산중구B-04 / 최보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