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The Hole) / 편혜영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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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미 뚫려 있던 구멍의 실체와 마주하다!

 

편혜영의 네 번째 장편소설 『홀(The Hole)』. 2014년 작가세계 봄호를 통해 발표한 단편 《식물 애호》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느닷없는 교통사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완전히 달라진 사십대 대학 교수 '오기'의 삶을 큰 줄기로 삼으면서 장면 사이사이에 내면 심리의 층을 정밀하게 그려내고, 모호한 관계의 갈등을 치밀하게 엮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야기는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교통사고. 이 사고로 오기는 아내를 잃고, 스스로는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다. 의사의 말대로 ‘의지’가 있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상태에 처한 셈이다. 사고 직후 일시적인 충격으로 오기의 기억에는 드문드문 구멍이 생긴다. 그리고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는 오기의 독백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은 오기의 일상을 한순간 뒤흔드는데…….

 

오기의 신체와 삶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데에 교통사고가 결정적이고도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만, 저자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 오기의 삶을 한 꺼풀씩 벗겨내며 이미 뚫려 있던 삶의 구멍의 실체를 보여준다. 사고 전후의 모습을 계속해서 교차하며 오기가 만들어온 그의 삶을 관찰하면서 한순간에 벌어진 사고가 아닌, 일상의 결정들이 제 스스로를 곤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야기 초반 비어 있던 기억의 그림자는 관계와 감정의 공백으로 대체되고 사라졌던 기억이 되돌아올수록 비어가는 또 다른 문제들, 예상할 수는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빈 공간’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이 책의 중반부 이후를 완벽히 장악한다. 이 작품의 대부분의 사건과 이야기는 타운하우스 형태로 지어진 오기 부부의 집에서 벌어지는데 크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삶에의 불안과 공포가 사건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오기를 조여 온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지난날의 삶이 덮쳐오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독자들 역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작가정보>

 

편혜영

저자 편혜영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등을 출간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의사의 말을 곱씹었다.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는 말에 담긴 비관과 ‘조금 더’라는 말에 담긴 낙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기는 의지를 발휘하라는 말보다 ‘조금 더’라는 부사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말은 조금 더 힘을 내면 괜찮아진다는 뜻 아닐까. 조금 더 힘을 내면 턱을 움직여 말할 수 있고, 제 발로 걸어서 검사실에 가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말할 것도 없이 오기는 ‘조금 더’의 세계에 의지했다. 오기는 무척이나 살고 싶었다.

(p. 14)

 

기억이 선명해지고 정황이 분명해질수록 오기는 슬퍼지고 서글퍼져서 비통할 것이다. 차라리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기억이 떠오를수록 아내를 잃었다는 것을, 다시는 아내를 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p. 34)

 

묵묵히 슬픔을 끌어 올리는 장모를 보면 오기는 함께 울고 싶어졌다. 턱을 움직여 소리 낼 수 있다면 같이 울었을 것이다. 제 슬픔을 장모에게 전달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아내는 죽고 자신이 살아남은 일을 사과하고 싶었다. 함께 아내에 대해 말할 수 없어 미안했다. 가슴속에서 통증이 일었다. 뜨겁게 끓었고 토할 것처럼 목구멍이 꽉 막혀왔다. 그 때문에 오기는 제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흐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침이었다. 오기의 턱이 조금 움직였고 마른 입이 벌어졌고 그리로 슬픔 대신 침이 흘러내렸다. 오기는 계속 침을 흘렸다. 벌어진 턱을 제 힘으로 아물 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

(p. 35)

 

오기는 종종 주먹을 꽉 쥐었다. 한참 동안 힘을 주었는데도 미처 의식 못 할 때도 있었다. 그러고 나면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힘이 들어간 손을 여러 번 쥐었다 폈다. 그렇게 힘을 주면서까지 움켜쥐고 있던 게 무엇이었을까.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p. 79)

 

아내가 돌볼 수 없게 된 후 정원의 나무와 풀과 꽃은 죽어갔지만 집 뒤쪽의 덩굴식물은 더욱 무성해지고 흡착력이 강해져서 정면 쪽 벽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뻗어오고 있었다. 오기의 방 창문으로도 바람이 불 때면 담쟁이의 커다란 잎이 흔들리는 게 다 보였다. 오기는 그 푸른 잎을 불안하게 올려다봤다. 얼마 후에는 오기의 창을 잠식해 시야를 막아버릴 것만 같았다.

(p. 91)

 

“그래야죠. 죽어버렸으니까요. 다 죽었지요, 전부 다…… 다 죽었어요. 기껏 애지중지 키워놨는데, 그만 어이없게 죽어버렸어요.”

잠시 쉬었다가 장모가 말을 이었다.

“살려야지요, 내가. 내가 다 살려야죠.”

(pp. 148~49)

 

어떤 가정도 낙관적이지 않았다.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얼마 후 비슷한 일이 끝없이 반복될 것 같았다.

오기는 무력해졌고 내부의 공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멍 속으로 자신이 아예 빠져버릴 것 같았다.

(pp. 1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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