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지 않고서야 / 김현경, 장하련, 재은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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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고민과 용기와 추억을 앓아가며 써내려간 이야기

 

취하지 않고서는 전하지 못한 말들, 잠들지 못한 밤들, 친해질 수 없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취하지 않고서야』.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영 소질이 없고, 오랜 시간 자신과 단둘이 남겨지는 게 두려운, 불쑥 찾아오는 공허함과 쓸쓸한 기분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술잔을 나눌 누군가를 찾아본 사람들, 쓸모없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사랑하고, 술자리 특유의 느슨한 분위기와 서로의 촘촘한 간격, 따뜻한 눈빛, 헐렁한 표정, 솔직해진 자신과 한껏 진지하거나 가볍고, 쉽게 울고 웃는 그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들과 그 시간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비슷한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용기내서 써내려간 진심을 담아냈다.

 

 

 

 

<작가정보>

 

김현경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책 같은 것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울증 수기집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등을 만들었습니다.

 

장하련

맥주와 소주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우리가 함께 마신 술병의 개수를 세는 걸

좋아합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시간들을 보냈다>

 

 

 

 

<책 속으로>

 

나는 사실 술은 별로 안 사랑하고 너네만 사랑해. 물론 술도 좋지. 맛 좋고 쓰고 시원한데 실은 술이 좋아서 술을 마신다기보다 술을 마신 우리가 좋은 거다.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땐 느낄 수 없는 더운 숨을 가진 서로의 촘촘한 간격, 따뜻한 눈빛, 내가 좋아하는 헐렁한 네 표정, 아무것도 못 숨기는 나, 한껏 진지하고 가볍고 쉽게 울고 웃는 그 모든 순간이. p8

 

내 술자리가 끝나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차마 들썩이는 엉덩이를 티 낼 수가 없었다. 마주 앉은 서로의 인생에 점점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울리는 휴대전화도, 한쪽 팔만 아리도록 추운 에어컨의 바람도, 자꾸만 감기는 눈도 참아낸다. p27

 

아껴둔 가게는 행여나 남에게 들킬까 꼭꼭 숨겨두었다가 함께하고픈 이들을 아낌없이 데려가는 쏠쏠한 재미 또한 내가 놓칠 리 없지. 나는 약속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해 고른 가게에서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만족스러워하는 상대의 모습을 보는 쾌감이 좋아서 이왕이면 노력해서 맛있게 술을 먹고 싶은 거다. p37

 

집에 가는 길인데, 집에 가기가 싫어서 술 한잔하자고 누구 하나 불러내고 싶은데, 휴대전화 연락처를 쭉쭉 내려보고 다시 쭉쭉 올려봐도 쉽게 불러낼 사람 하나 없네 싶어서 외로웠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 덩그러니 앉아 가벼워지는 맥주 캔만 만지작거리며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이른 저녁 내내 외로웠다. 정말이지 다가올 밤을 홀로 지켜내야 하는 것 같아서, 하늘은 점점 땅으로 꺼지는데 그냥 딱 외로웠다. p54-55

 

각자의 모양으로 서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녁.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없이 소란스러운 시간”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내가 썼던 글을 누가 여기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사랑하는 몸짓만으로 작은 공간이 가득 차는 순간.” 비좁은 가게는 고요한 소란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모두가 서로의 등을 맞댄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토록 기분 좋을 수가 있나 싶었다. p88

 

편의점 할아버지는 내게 안주를 내어 주기 시작했다. 과자라든지 육포라든지 하는 편의점에서 파는 안주들. 아마 안주도 없이 막걸리를 병째 마시던 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편의점에서 파는 육포면 가격이 꽤 될 텐데, 모르긴 몰라도 편의점을 봐주는 한 시간 정도의 대가는 되리라. 그는 내게 번쩍거리는 포장지의 육포를 건네며 “술만 마시면 속 버려요.”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호의에 하루를 더 살아냈다. p127

 

불안하고 우울한 밤에 술 한잔할 친구마저 없으면 그 사실이 나를 더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친구들은 바쁘거나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을 뿐일 텐데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은 알지만 여전히 늦은 밤 나를 혼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술잔을 부딪쳐줄 누군가를 찾는다 .p199

 

나를 먼저 버스에 태워 보낸 네가 또 먼저 잘 가고 있냐고 물어주고 오늘 고맙다는 말을 덧붙일 때, 나는 이제 정말 죄지은 사람 같아서 이러려고 부른 게 아닌데,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를 좋은 사람이고프게 만드는 사람들아, 나는 오늘도 멋진 척하려다 말아먹었지만 재도전하겠습니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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