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에서 유 / 오은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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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에서 유를, 유에서 또 다른 유를!

오은이 선보이는 언어의 마술

 

오은의 세번째 시집 『유에서 유』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문학동네, 2013) 이후 3년 만의 시집이다. 오은의 시를 ‘오은의 시’답게 만드는 유쾌한 말놀이와 단어들이 제공하는 재미는 여전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사회의 부조리를 향한 거침없는 폭로와 상처, 어둠, 쓸쓸함 등의 감정을 기록해내고자 하는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중첩되는 단어와 시구 들이 밀어붙이는 리듬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창출된다. “세계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놀이”(권혁웅, 문학평론가)이기에 오은, 그의 말놀이는 한가로운 피크닉 장소에 떨어진 폭탄처럼 평온함을 뒤엎고 전에 없던 흥겨움을 터뜨린다. 말놀이로 일궈낸 신나는 한 판이 오은의 시어들 속에서 시작된다.

 

 

 

 

 

<저자 소개>

 

오은

저자 오은은 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현대시』로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가 있다. ‘작란(作亂)’ 동인이다.

 

 

 

 

 

<책 속으로>

 

좋아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 잠에서 깨니 그 단어가 기억나지 않았다. 거울을 보니 할 말이 없는 표정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다른 기분으로 듣는다. 종착역보다 늦게 도착한다. 만남은 성사되지 못한다. 선율만 흐를 뿐이다.

 

들고 있던 물건들을 다 쏟았다. 고체가 액체처럼 흘렀다. 책장에 붙어 있던 활자들이 구두점을 신고 달아난다. 좋아하는 단어가 증발했다.

 

불가능에 물을 끼얹어. 가능해질 거야. 쓸 수 있을 거야. 가능에 불을 질러. 불가능해질 거야. 대단해질 거야. 아무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거야.

 

10년 전 오늘의 일기를 읽는다. 날씨는 맑음. 10년 후 오늘은 비가 내린다. 오늘에서야 비가 내린다. 지우개 자국을 골똘히 바라본다. 결국 선택받지 못한 말들, 마침내 사랑받지 못한 말들이 있다. 다만 흔적으로 있다.

 

어느 날 우리는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서 다른 음악을 같은 기분으로 듣는다. 시발역보다 일찍 출발한다. 불가능이 가능해진다. 착각이 대단해진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오늘 저녁에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찰나, 식당 하나가 문을 닫았다. 메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배 속이 끓고 있다. 턱턱 숨이 막히고 있다. 당장, 당장.

 

시공간이 한 단어에 다 모였다.

―「아찔」 전문

 

학교에 있던 학생들이

학원에 고스란히 앉아 있었다

준비물처럼

책상 위에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사용되었지 우리 학원에서

우리가 우리를 사용할 때

우리는 주어일까 목적어일까

영어 선생님이 물었지

자기도 모르면서

학생이었으면서

옛날에 우리 학원에 다녔으면서

샤프심처럼 뚝뚝 끊어지고

지우개처럼 똥을 끌고 다니고

자처럼 재기 바쁘다가

노트처럼 갈가리 찢어졌으면서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음악 미술 체육

비결은 있었지만 도덕은 없었다

노트는 있는데 샤프가 없는 상황처럼

샤프는 있는데 샤프심이 없는 상황처럼

샤프심은 있는데 지우개가 없는 상황처럼

매시 매분 매초가

부족했다 위태로웠다

 

그래도 지구는 돌고

 

사회를 미처 다 배우지 못하고

사회에 투입되었던 학생들이

학원에 고스란히 앉아 있었다

준비가 완료된 준비물처럼

입을 앙다물고

마지막 학원에

마지막을 위한 학원에

죽을 준비를 도와주는 학원에

 

준비물은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되었다

노쇠하고 병든 몸뚱이나 살고 싶지 않은 마음

우리 학원에는

이미 늙거나 벌써 아픈 우리가

우글우글 들끓었다

우리 학원에서 한 번쯤 만났던 친구들이

각도기처럼 앞과 좌우만 볼 수 있었던 친구들이

완벽한 준비물이 되어

360도 회전이 가능한 컴퍼스가 되어

샤프심이 장전된 샤프가 되어

 

우리 학원인데

우리 것은 아닌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음악 미술 체육처럼

한 번도 우리 것인 적은 없었던

우리 학원에

 

더 이상 준비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준비물들이 있었다

원생이기를 이제 그만 포기하기 위해

난생처음 순순히

학원에 발 들인 학생들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우리라고 말할 때

목적어에서 주어가 될 때

보어 없이도 완전해질 때

 

비로소 대명사가 된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도덕은 다음 생에서 배우기로

―「우리 학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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