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자폐인과 가족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세상과 만나는가?
30년간 자폐인 아들에게 써 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수치심과 죄책감, 무지와 편견을 오직 사랑으로 헤쳐온 평범하고 위대한 엄마의 이야기
오래도록 절판 상태로 많은 독자들의 애를 태웠던 채영숙 선생의 책이 복간되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시대에 자폐인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겪은 일을 차분하고 진솔하게 전달한 그의 글은 수많은 장애 부모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은 물론, 블로그와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비장애인들에게도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아들의 자폐를 알고 “차라리 아이를 데려가세요, 하나님!”이라고 울부짖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책은 “우리의 인생 여정에 반드시 올라야 할 큰 산이 하나 있었고, 우리는 그 산을 부지런히 올랐을 뿐”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가장 큰 부정에서 출발해 가장 큰 긍정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그 사이에 유아기를 지나 세상과 관계를 맺고, 학교에 다니고, 사춘기를 겪고, 이제는 청년이 된 아들의 모습과, 그 아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울고 한숨 쉬고, 싸우고 따지고, 사정하고 설득하고, 감싸 안고 환대하고, 용서하고 연대하는 엄마의 모습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책에는 기막힌 사연이 가득하지만, 그 사이에 흩뿌려진 유머가 보석처럼 반짝여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평범하지 않은 아들과, 평범하지만 그런 아들을 위해 비범한 용기와 지혜를 내야 하는 엄마가 세상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진실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지은이의 말처럼 선량한 이웃이 장애인과 가족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어떤 말로 위로하며, 어떤 몸짓으로 사랑을 보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당신에게 먼저 말을 붙인다.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당신의 이해가 필요해요.” 이제 당신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갈 차례다.
<작가정보>
채영숙
자폐성 장애인 아들의 엄마이며 아동보육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장애인가족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장애인인권교육 활동가, 유엔아동권리교육 강사입니다.
자폐인 아들을 낳고 키우며 비장애인들이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것,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것은 어떤 말로 그들을 위로하며, 어떤 몸짓으로 그들에게 사랑을 보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사람들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당신의 이해가 필요해요.” 사람들은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오늘도 아들과 함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우리가 그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빠르고 쉬운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책 속으로>
P21 호민이가 다섯 살 때였던가, 아이와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던 중이었다. 앞자리에 서너 살쯤 된 어린아이와 엄마가 앉아 있었다. 아이는 “엄마~ 엄마~” 부르며 쉴 새 없이 질문을하고 엄마는 일일이 대답해주고 있었다. 호민이는 끽끽 이상한 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엄마와 얘기하던 그 꼬마가 호민이 흉내를 내자 아이의 엄마가 눈을 흘기며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눈짓으로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 순간 ‘내가 왜 저 사람들한테 미안해하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 호민이 때문이라고? 그럼 내가 이 아이를 낳은 게 잘못인가? 아이의 장애가 내 탓이란 말인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내 물음에, 내 설움에 눈물이 났다.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말 못하는 내 아이가 가엾고, 언제나 엄마소리 한번 들어보나 하는 내 연민에 참았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호민이는 엄마가 우니까 불안해서 또 킬킬 웃었다. 엄마는 울고 아들은 웃고, 이런 코미디가 또 어디 있을까. 그날 저녁에도 기도를 했다.
‘제발 이 아이를 데려가세요. 하나님!’
P90 신문배달 일을 시작하고 한 달 후부터 집 가까이 있는 교회에 새벽예배도 나갔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5시 새벽예배에 다녀와서 샤워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신문배달이 건강을 돌려주었다면, 새벽예배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죄하고 괴롭히던 나를 용서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애아를 원하는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우리 부부도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가 태어나리라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낳아 기르다 보니 별스럽고 까다로운 아이임을 알았다. 호민이는 갓난아기 때부터 모유를 먹을 때 외에는 언제나 내게 등을 돌렸다. 안아주면 상체를 뒤로 힘껏 젖혀서 늘 한 손으로 등을 잡아주어야 했다. 아이가 엄마인 나조차 거부하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수록 나도 서서히 마음속에서 아이를 밀어내고 있었음을 깊은 묵상기도 끝에 알았다. 겉으로는 아이한테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쫓아다니면서도 무의식은 아이에게서 멀어지길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나의 이중적인 모성을 깨닫고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밤 아이 앞에 눈물로 사과했다. 제발 나를 엄마로 받아달라고 애원도 했다. 한 달 뒤 호민이는 나를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내 목덜미를 꼭 끌어안으며 웃어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민이가 먼저 나를 안아준 날이었다. 그 순간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죄의식과 절망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아이의 장애는 더 이상 내게 장애가 아니었다.
남편은 몇 년 뒤 술기운을 빌려서, 그날 저녁 우리 모자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다고 극찬을 했다
P138 올봄에도 호민이는 집에만 들어오면 창문을 닫아걸고 커튼을 쳤다. 신경이 예민해지면 주위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견디지 못하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채널은 7번에 고정시켜야 한다. 다른 채널로 바꾸면 방바닥을 쿵쿵 울리며 울었다. 특정 프로그램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7번 채널에 집착하는 것뿐이다. 샤워하는 순서나 옷 입는 순서도 자기가 정한 틀에서 하나라도 벗어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뭐든지 먹으면 바로 양치를 한다.
물 컵 하나라도 닦을 게 있으면 어느새 주방세제를 듬뿍 풀어 설거지를 하느라 늘 싱크대는 거품으로 그득하다. 그릇이나 컵은 싱크대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마음을 놓는다. 책가방도 책과 학용품 넣는 자리를 정해 놓고 조금만 비뚤어져도 단박에 알아차려 다시 정리한다.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는 벽에 바짝 붙어서 발걸음을 세며 보폭을 조절한다. 제식훈련 받는 군인처럼 ‘오른발, 왼발’ 구령까지 붙여가며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반항기’답게 겁도 없어졌다. 우유에 커피를 타 먹다가 들켜서 손바닥을 열 대나 맞고도 다음날 또 커피를 우유에 타서 마시다가 걸렸다. 자진해서 손바닥을 맞겠다고 해서 잠시 당황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으니 이번에는 봐준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렇게 한 달 이상을 반항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짜증이 줄고 정리정돈도 안하고 말도 고분고분 잘 들었다. 부르면 여전히 대답 대신 물끄러미 쳐다보지만 그쯤이야 애교로 봐줄 만하다. 비스듬히 누워서 ‘나 불렀냐?’ 시비 걸 듯 바라보는 모양새가 어찌나 건방져 보이는지 돌아서서 후후 웃어버렸다.
P152 입학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선생님한테 아이의 성장 과정과 어미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드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주된 목적은 편지가 아니라 ‘촌지’였다. 선생님한테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입학 전에 주위에서 전해들은 교사들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얼른 해결하고 싶어서 내 딴에는 꾀를 낸다는 것이 ‘편지와 함께’였다.
봉투를 받아 든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더니 그 자리에서 봉투를 열었다. 다른 엄마들한테 들은 대로 “나중에 보세요!”라고 말하기도 전이어서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봉투 속에 든 내용물을 모두 꺼낸 선생님은 큰 소리로 웃더니, 편지는 나중에 읽어보겠다며 빼놓고 나머지는 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사태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너무 적은가?’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 사이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저는 신문에 날까 봐 봉투는 원래 안 받습니다. 그리고 어느 아이 할 것 없이 다 다르니까 개성이라고 생각하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엄마가 강해야 아이가 학교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일 년 동안 잘 키워봐요.”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호민이처럼 울어버렸다. 울음으로 내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음을 알면서도 선생님의 완강한 말투와 태도 앞에 그냥 울기만 했다.
P192 “육 년이나 통합교육을 받은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은 더 이상의 사회성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는 단적인 예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중학교는 특수학교로 진학시키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세요.”
“하지만 호민이 부모님은 일반 아이들과 통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학부모의 결정을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가 아이 상태를 직시하지 못하고 무조건 통합교육 쪽으로만 밀어붙일 일은 아니지요.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달라서 아이가 친구들한테 집단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돌아보니, 주위에서 이런저런 염려와 충고를 하지 않더라도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는 날마다 수많은 생각을 떠올린다. 과연 호민이가 처음부터 특수학교에 입학해서 장애아들 틈에서만 육 년을 지냈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일반학교에서 보낸 육 년 동안 아이의 사회성은 얼마나 발달했고, 1학년 입학 때 그려본 육 년 뒤 아이의 모습에는 얼마나 근접했는가? 중학교 진학 문제에서 과연 어떤 선택이 아이의 발전에 바람직할까? 생각의 초점은 언제나 아이한테 맞춰져 있지만, 제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아이의 진로 결정은 언제나 부모의 몫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점진적이나마 아이의 긍정적인 성장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교육받고 생활해야 한다는 편견의 벽은 반드시 허물어져야 하고, 그 벽을 허무는 작업 또한 부모들의 몫이라는 것을. 세상이 더디 변하는 것만 탓하고 있기에는 내 아이가 너무 빨리 자란다. 조급증이 나서 얌전히 기다릴 수가 없다.
P239 한번은 시댁에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했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식사시간이 늦어졌다. 배고픈 걸 못 참기도 하지만 상황 설명이 통하지 않는 호민이가 혼자 먼저 밥을 먹다가 양이 찼는지 그만 먹겠다고 일어나기에 밥그릇을 치우려고 할 때였다.
“형님, 그거 제가 먹을래요.”
난 순간 깜짝 놀라 동서를 쳐다봤다.
동서는 여전히 그 사람 좋은 웃음으로 밥그릇을 받아 들었다.
“뭐 어때요. 애가 먹던 건데요. 저 사실은 배가 너무 고픈데 어른들께서 식사 전이시라 먼저 먹을 수도 없고요. 그래서...”
그러면서 호민이가 먹던 국 만 밥을 다 먹었다. 너무도 맛있게!
그날 이후 동서 생각만 하면 자꾸 눈물이 났다. 그제서야 나는 호민이를 향한 동서의 마음이 가식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때 동서는 큰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뱃속에 아이를 가진 엄마라면 당연히 가릴 것 가리고, 예쁜 것만 골라 먹고, 고운 말만 할 터였지만, 동서는 내 고정관념뿐 아니라 편견과 아집까지 모두 버리게 해주었다. 그동안 동서는 남매를 낳았는데 두 아이 모두 건강하고 똘똘하다. 나는 그게 또 고맙고 예쁘기만 하다.
P273 그날 저녁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나는 두어 달 이상 계속해오던 대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섯 살인 아들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아이의 두 손을 내 두 손으로 꼭 보듬어 잡았다. 몸을 약간 앞으로 숙여, 마주잡은 아이의 손을 내 가슴께로 붙였다. 그런 다음 아이의 일과를 쭉 나열해가며 취침 기도를 시작했다.
선교원과 특수교육 치료실 선생님한테서 전해들은 아이의 일상을 최대한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애를 썼다. 선교원에서 이유를 알 수 없이 약 20분간 울었다는 대목에서는 내가마치 아이가 되어 선교원에 있었던 것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엉~엉~! 나는요, 너무 억울해요! 친구들과 어울려 잘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어요. 나는요, 너무 억울해요! 친구들은 말을 잘해서 선생님께 조잘조잘 얘기도 잘하는데 나는 말을 못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선생님께 말할 수가 없어요. 나는요, 너무너무 억울하고
아들의 답장을 기다리며 / 채영숙 (U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