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roll 01
‘산책’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이 책은 천천히 거닐며 발견한 소소한 순간들을 한데 엮은 기록입니다. 바쁜 발걸음을 잠시 늦추고 골목골목을 거닐 때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지요.
<stroll 01>은 저자의 고향인 강서구에서 5년 동안 지역 문화예술 활동을 하면서 겪고 느낀 풍경과 생각을 사진과 글로 담아내었습니다. 지역 문화 예술 소식지 '방방'에 기고한 글부터 조사한 지역 자료까지 꼼꼼히 담아내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독자는 마치 작가와 함께 조용한 동네를 산책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주한 하루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를 누리는 산책처럼, 이 책은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쉼표 하나를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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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곧은 길이 있어야 분별이 생깁니다. 사례가 쌓여야 미래가 보입니다. 벼를 빨리 자라게 한다고 벼의 목을 뽑아서는 안 됩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기지 말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단단하게 만들면서 그 무엇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가꿔야 합니다. 사람이 아쉽고, 사회가 아쉽고, 정치가 아쉽고, 예술이, 목숨이, 생각이 아쉽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어디로 걸어가며 발자국을 남기고 있나요.
가엽지 않나요. 물길을 잃어버린 갯가는. 점점 작아지고 깎이는 산은. 새벽마다 마을 곳곳에 덮이며 말의 뜻과 의미를 찾던, 짙은 안개는. 그 거리를 헤매는 인간은. 개가 된 삶은. 삶아진 개는. ‘마곡에는 고고마진이라는 나루터가 있었어요. 어제는 농촌이었고 지금은 산업단지가 되었지만, 엊그제만 해도 어촌이었어요.’ 겸재정선미술관 옆 오래된 건물에 쓰인 ’후포‘라는 글씨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쓰인 글씨는 ’후포‘인데 나는 왜 ’슬퍼‘로 읽는가 하고.
- 두 가지를 함께 가질 수 없다면 중에서
‘지방에는 먹이가 없고, 서울에는 둥지가 없다’라는 비유가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울로 편입된 지 61년이 된 강서구는 대부분 논이었던 지역이지만, 논이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이주해 와 살면서 56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삽니다. 이는 강서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이가 바꾸기보다 이동을 선택합니다.
앞선 이야기는 모두 전제에 가깝습니다. 삶에서, 지역에서, 예술에서 다방면을 고려하지 않고, 당사자성을 갖지 않은 채 재맥락화하여 이야기하는 방식은 자꾸만 무언가를 가린다는 기분이 듭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가 아니라 괜찮은 절이 되도록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권위, 윤리, 도덕, 감정, 감상’ 따위가 ‘삶’을 가려도 되는지.
대상을 좁히고 확대하여 묻습니다. 당신의 삶은 이곳에서 ‘이주’입니까, ‘이민’입니까, ‘망명’입니까, ‘난민’입니까. 당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바라본 풍경입니까. 자리가 풍경을 만든 것은 아닌지, 풍경을 보고 타인의 삶을 라벨링 한 것은 아닌지, 둥지 밖 풍경은 평면이 아닌 4차원이라는 걸 아는지. 왜 스스로 바꾸지 않는지.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들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하고, 부자들은 생필품의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의 무덤을 찾아간다.” 세르비아 속담은 이야기합니다. 전쟁과 물가 상승, 이러한 풍경은 가난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고. 자, 그럼 우리는 언제까지 가만히 있으면 될까요.
- 이주, 이민, 망명, 난민 중에서
책제목 Stroll 01
글쓴이 김경현
페이지 160쪽
판형 105*165mm
재질 (내지) 그린라이트 100g
* 목차 없음
Stroll 01 (서울 강서구 편) / 김경현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