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 육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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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름을 잃을 때 나의 모서리가 정확해졌으므로

날개를 떼어내야만 천사들은 날 수 있었으므로”

 

‘영원’을 넘어, ‘소년’을 넘어, ‘천사’를 넘어

현실의 세계를 폭죽처럼 터뜨릴 때 쏟아지는

꿈의 파편들로 써내는 시

 

문학동네시인선 188번으로 육호수 시인의 두번째 시집을 펴낸다.

“사물이 갖고 있는 뉘앙스를 건져내는 데 탁월한 감각이 있”(심사위원 박성우 안현미 유종인)다는 평과 함께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등단 2년 만에 묶어낸 첫 시집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아침달, 2018)에서

“감각과 사유의 절묘하고도 기묘한 균형감”(시인 김언)을 갖추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런 그가 첫 시집 이후 두번째 시집을 펴내기까지 6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은 시를 향한 시인의 고민이 짙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작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허수경 시인론’이 당선되며 평론활동을 시작한바,

동시대의 시를 세밀하고 깊게 살피려는 시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저자 소개>

육호수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에 시,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가 있다.

 

 

 

 

<작가의 말>

 

언젠가 거듭 작별하는 꿈에서 너는 손 위에 검은 돌멩이를 쥐여주며 말했지

“새를 잘 부탁해. 죽었지만” 2023년 3월 육호수

 

 

 

 

<목차>

 

Prelude

희망의 내용 없음

 

1부 면벽중에 벽을 잃어

잠에 든 손, 깨어나는 손/ 물끄러미, 여름/ 다나에/ 고사리 장마/ 망보는 아이들의 눈을 피해, 미래를 미래로 미뤄두려다/ 장마/ 접속/ 소년 금지 영원 금지 천사 금지/ 부레/ 새벽엔 당연했던 말들로/ 창으로 채우는/ 자정의 기도/ 쉴 만한 물가

 

Interlude

하다못해 코창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말미잘을 보고도 네 생각이 났어

 

2부 스스로에게 배웅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동봉-취급 주의/ 고향, 잠/ 다 적어내려 하다간 백지가 젖어버릴/ 겨울의 예외에서/ 무사히 놀이/ 빛의 궁지/ 추억은 배낭에 쓰레기는 가슴에/ 고락푸르행 따깔 티켓/ 하다못해 코창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말미잘을 보고도 네 생각이 났어/ 천사 금지 소년 금지 영원 금지/ 크라잉 게임/ 등 위에 바보라 쓴다 해도 나는 바다로 알 거야/ 시론에는 원고료가 없고/ Łй 악몽 속으로 へㅏㄹΓ진 ㉡ㅓ의 영혼의 ёnŧrØpħy로 Ꮣㅐ겐 Øl런 문ㅈБO1 Łй己lヹ.../ 신호 대기/ 꿈속맘속의꿈속의맘속

 

3부 벽을 닦아 거울을 얻어

Prelude/ 나란히/ 잠들면 다신 자신으로 깨어나지 못하는/ 망명/ 정오의 비틀림과 오후의 뒤틀림, 자정의 흐느낌과 새벽의 헐떡임/ 워킹 홀리데이/ 귀신은 귀신같이 나를 찾고 나는 나처럼/ 둘레/ 안수/ 산티탐 프렌드/ 벽을 닦아 거울을 얻어/ 중보/ 영원과 하루/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접속-함께/ 정오의 기도/ 풍경사진인 줄 알았다/ 회복

 

Postlude

순진한 의인화-소돔의 천사들

 

해설 | 낮은 밤의 꿈

김준현(시인, 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여러 겹의 몸을

몸 위에 겹쳐지는 무수한 유령들을

허물로 남겨두고

밤의 아름다움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자

푸른 하늘 은하수 끝나지 않는 손장난

밤이 기어이 밤을 어기는 곳으로

_「희망의 내용 없음」 부분

 

어떤 꿈에선 사랑이 많은 사람과 만났다

그와 살아서 가고 싶은 곳보다

죽어서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았다

(…)

 

어떤 꿈에선 걸음이 남아

꿈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떤 방향으로 누웠는지

누구의 곁에서 잠에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_「다나에」 부분

 

POST CARD

 

안녕, 어젠 해변의 네 살배기들과 조개를 모았어.

석양이 들면 그때 우리가 다 줍지 못한 조개껍질들이 은화처럼 반짝였어.

어젯밤엔 귀와 입으로 고운 모래가 쏟아져 들어와 잠에서 깼어.

 

(…)

 

POST CARD

 

안녕, 혹시 고사리 장마라는 말, 아니? 이곳에선 봄장마를 고사리 장마라고 한대.

난로 앞에 앉아 산책길에 묻어온 그늘들을 말리고 있어.

구름이 세상을 기어 건너는 계절이야.

지나가지 않는 과거의 기억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겠냐고 내게 물었었지.

_「고사리 장마」 부분

 

꿈 바깥의 안부를 전하느라

거듭 옅어지던 꿈의 개울가에서

 

서로의 귀에 귀를 포개었지

서로가 기르는 침묵의

둘레가 되어주려고

 

(…)

 

물에 잠긴 징검다리를 건너

여름에서 비켜나 그때

귓속에 담아둔 소리를 마저 듣지

여기 비가 지나고

비 소식이 지나고

비. 소리가 지났어

_「장마」 부분

 

사람 모양 쿠키를 쪼개어 먹으며 생각한다

잃고 싶어 내민 손이었다고

 

눈이 오지 않았다

눈이 오지 않는다

사이에서

 

월요일의 창밖엔

월요일의 눈사람이

화요일엔

화요일의 눈사람이 몸을 잃어간다

_「겨울의 예외에서」 부분

 

투명한 얼음 바닥에 비친

투명한 나의 눈에 갇힌

투명한 천사의 몸

_「크라잉 게임」 부분

 

“レ┫의 꿈ㅇㅔ㈆ㅓ ㄷL㈆ㅣ 깨㈇ㅓ날 순 없을ㄲr 그런 ખ일Øl면 ●ビ 될ㄲト”

_「Łй 악몽 속으로 へㅏㄹΓ진 ㉡ㅓ의 영혼의 ёnŧrØpħy로 Ꮣㅐ겐 Øl런 문ㅈБO1 Łй己lヹ...」 부분

 

이야기가 시간을 모으며, 시간이 그림자를 모으며, 그림자가 밤을 모으며, 밤이 악몽을, 악몽이 기도를 모으며,

기도가 고요를 모으며, 고요가 슬픔을, 슬픔이 얼굴을 모으며……

「정오의 비틀림과 오후의 뒤틀림, 자정의 흐느낌과 새벽의 헐떡임」 부분

 

눈 발자국 위를 포개어 걸으면

그 위를 걸었던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

 

슬픔으로 맑은 사람

그애가 여름에 온다면 더 멋질 거라고

_「산티탐 프렌드」에서

 

 

 

 

 

<출판사 서평>

 

첫 시집을 통해 빛과 꿈, 새, 바다나 모래성과 같이 섬세하게 반짝이는 감각과 이미지들로 소년기의 상처를 되짚고 현실과 천국의 풍경을 겹쳐 보았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층 더 단단해진 사유와 언어에 대한 감각을 선보인다. 시인은 ‘영원’ ‘소년’ ‘천사’라고 “손톱을 세워 벽 위에”(「다나에」) 쓰는 것만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해 가고자 자신이 자리한 곳을 되짚어본다.

 

누군가 방의 입구에 불을 지른다면

어디로도 나갈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여러 번 화염에 휩싸인 채 깨어나야 했다

 

너른 꿈의 좁은 입구에서 여러 번 내쳐졌다

(…)

 

쏟아지는 빛에 놀라 깨어났으나

여러 겹의 어둠 속이었다

(…)

 

어떤 꿈에선 걸음이 남아

꿈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떤 방향으로 누웠는지

누구의 곁에서 잠에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_「다나에」 부분

 

육호수의 화자가 살고 있는 세계는 결코 넓지 않다. “너른 꿈”의 가장자리가 곧 그가 사는 현실의 가장자리이다. 거기에 난 입구는 더욱 좁아 그는 꿈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여러 번 내쳐”지지만, 그럼에도 “꿈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다나에」)한다. 그가 바라는, ‘영원’ ‘소년’ ‘천사’로 표상되는 모든 것이 꿈속에 있기 때문이다. “무수한 유령들을/ 허물로 남겨두고/ 밤의 아름다움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희망의 내용 없음」) 그곳에서 아름다운 석양 아래 “은화처럼 반짝”이던 조개껍질과 “고운 모래”는 깨어나는 순간 몸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들”(「고사리 장마」)이 되어 있고, “쏟아지는 빛에 놀라 깨어”나면 눈앞으로는 “여러 겹의 어둠”(「다나에」)이 펼쳐져 있다.주목해야 할 것은 육호수의 시에서 꿈과 현실을 연결하는 통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도 기능한다는 점이다. 거울 속의 ‘너’와 ‘나’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거울 속의 우리는 한 번도 떨어진 적 없”음에도 “아주 먼 사이”(「고사리 장마」)이며, 심지어 현실의 ‘나’는 “거울에 붙은 모기를 죽이려다” 거울 속의 ‘너’에게 “무언가를 죽이려 다가가는 얼굴을 들”(「물끄러미, 여름」)키기까지 한다. 이렇게 ‘나’와 ‘너’가 개별적인 존재인 탓에 거울 너머 꿈의 세계는 자유로이 넘나들 수는 없는 곳이 되고, “다나에”는 “궁전 아래 밀봉된 지하 감옥”에서 “누군가 방의 입구에 불을 지른다면/ 어디로도 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꿈속의 “그 빛이 어디에서 왔을지”(「다나에」) 하염없이 그려야만 한다.

 

그 방을 떠나던 날엔

신발을 신고 들어섰다

(…)

 

옮기면 안 되는 것까지

옮기게 될까봐 나를

금지하는 문턱 앞에서

좁은 방의 좁은 입으로서 서 있었지

 

(…)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바라는 게 많았다

작고 깊은 이 방을 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참 많이 지었다

밤 대신 아침을 새우며 기대면 이 방의

창문은 허공보다 투명한 거짓을 허공뿐인

허공에 보여주었지

“이 방의 어둠을 해치지 않고 창밖의 새들은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가?”

새에 대해 생각하며 새에 대해 취약해지던

이야기를 허물기 전엔 나갈 수 없는 방이었다

_「망명」 부분

 

그런데 이처럼 바라는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꿈으로 넘어가는 길이 요원해 보이는 곳에서, 육호수의 화자는 문득 질문을 던진다. “이 방의 어둠을 해치지 않고 창밖의 새들은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가?”(「망명」) 이에 대한 답이 그에게 실마리를 던져준다. “이름을 잃을 때” “모서리가 정확해”지고 “날개를 떼어내야만 천사들은 날 수 있”(「시론에는 원고료가 없고」)듯이, “이 방의 어둠을 해치지 않고”(「망명」)서는 방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 “면벽의 안식”이 실은 “감금”(「희망의 내용 없음」)이었다는 것.그러므로 거울 너머 꿈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좁은 방의 벽에 새겨진 “‘영원’ ‘소년’ ‘천사’를 뒤에 남겨둔 채 자신을 “금지하는 문턱”을 넘어”(문학평론가 김준현)서야 한다. 그럼으로써 더이상 그 말들에 “진 빚”(「희망의 내용 없음」)이 없다고 선언할 때, “누군가 방의 입구에 불을 지른다면/ 어디로도 나갈 수 없다는 생각”(「다나에」)은 비로소 “작고 깊은 이 방을 위해” 지어낸 것에 불과한 “무서운 이야기”(「망명」)가 되어 허물어지고, “너른 꿈의 좁은 입구”(「다나에」)는 전소된다.

 

때㉤ㅏ침

때㈄ㅏ침ぇㅓ럼

㉩ㅓ럼의 ぇㅓ럼㈉ㅓ럼 창밖ના는

불ㄱド해㉭Ł ㅂㅣフド LH己ㅣヱ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_「Łй 악몽 속으로 へㅏㄹΓ진 ㉡ㅓ의 영혼의 ёnŧrØpħy로 Ꮣㅐ겐 Øl런 문ㅈБO1 Łй己lヹ...」 부분

 

그렇게 현실이 폭죽처럼 터지고 꿈의 파편들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가운데, “영원보다 더 먼 영원”, “소년보다 더 무위의 소년”과 “천사보다 더 투명한 천사”(‘육호수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중에서)가 있는 그곳으로 육호수의 화자는 들어설 것이다. 신발을 신고서 성큼.

 

시와 꿈의 닮은 점은 어떻든 의미의 결여 상태라는 점, 그리고 이를 최대한 지속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애써 유기체에 가까워진 언어-세계를 다시 파편으로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이 육호수의 시가 지닌 차별화된 미덕인지도 모르겠다. 도예에 비유하자면, 육호수는 단 하나의 완벽한 완성체를 위한 집념의 장인 정신으로 갓 구운 수많은 도자기를 깨부수기보다 오히려 ‘도자기 부수기 놀이’가 주는 쾌감에 기초한 유희 정신으로 시를 써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생기는 부서짐, 의도한 바 없기에 방향을 모른 채 사방팔방으로 튀는 파편과 같이, 우연적으로, 그리고 사후적으로 오는 모든 좋은, 나쁜, 이상한 것들은 결국 읽는 ‘당신’의 몫이 된다. 당신이 이 시를 읽는 독자이건 이 시를 쓴 시인이건, 당신은 이 즐거운 방임의 주체가 된다._김준현, 해설에서

 

◎ 육호수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Q1. 첫 시집 이후 오 년 만에 두번째 시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를 출간하셨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두번째 시집을 출간하는 마음은 어떤지 말씀 부탁드려요.

 

첫 시집이 세상에 나온 후 여러 독자분들께 응원의 메시지를 참 많이 받았어요. 시에 대한 감상뿐만 아니라 시를 써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 심지어 살아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짧은 감사의 인사밖에 돌려드리지 못했지만, 그 마음들 덕분에 제 마음도 잘 지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백지 앞에서 두렵고 후회되고 비참하고 막막하고 좌절하고 혼란스럽고 부끄럽고 죄스럽고 허망하고 어지러워 시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큰 힘이 되었어요. 가끔은 낭독회에 제 시를 미리 외워가기도 했어요. 그러면 시를 읽는 동안 듣고 있는 분들의 표정과 눈빛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 눈빛들 덕분에 용기를 내어 다시 백지 앞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첫 시집 때는 사는 것을 어떻게 시로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이제 어떻게 이 시를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한 편 한 편 방을 만들고 그 안에 큰 창을 내고 벽난로와 의자를 만들어 살다가, 언젠가 이곳에 와 머물 독자들을 위해 청소를 하고 방을 비우며 오 년을 보냈네요. 첫 시집에 실린 시를 쓰던 때에는 과연 이 시들이 세상에 나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막막했어요. 영원히 이 모니터 속에 갇혀 있을 것 같아 시들에게 참 미안하기도 했고요. 이젠, 이 시들이 꼭 필요했던 누군가에게 반드시 닿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여러 마음들 덕분이에요. 이 시집이 몇 명의 사람에게 닿게 될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이 시를 알아볼 수 있는, 이 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당신’에게는 꼭 이 시집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어요. 우연히 서점이나 여행지에서 이 시집을 마주친다거나, 인터넷에서 어떤 구절을 보고 지나칠 수 없게 된다거나 하는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해요.

 

Q2. 제목이 무척 강렬한데, 시집을 읽기 전까지는 정말 ‘영원’ ‘소년’ ‘천사’ 등이 나오지 않는 시집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듯해요. (웃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인지 소개해주세요.

 

(시집 제목이 좀 세 보이긴 하지만… 매운맛 아니니 너무 걱정 마셔요.) 영원이라는 말로 영원을 담을 수 없어서, 천사라고 쓴다고 천사를 볼 수 없어서, 소년이라는 말로 소년이 될 수 없어서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된 것 같아요. 영원과 소년과 천사는 첫 시집을 쓰던 시절부터 제가 골몰해 있던 것들이에요. 첫 시집이 세상에 나오고 난 후에 이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고민하다 이들을 표하는 ‘시어’를 믿지 말자는 생각에 다다른 적이 있어요. 그날 종이에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라고 크게 써서 책상 앞에 붙여두었죠. 당시 ‘2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등 여러 금지를 오가던 때라 금지란 말을 매일같이 들었거든요. (웃음) 천사, 영원, 소년. 이 셋 모두 이 세상에선 내게 금지된 것 같기도 했고요. 무언가가 금지되고 나서야, 우리에게 금지된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곤 하잖아요. 미문에 천착하지 말자, 시어에 경도되지 말자.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이지만 여전히 어려워요(그래서 저의 이 ‘젊은 시인’ 시기를 어서 건너고 싶기도 해요). 영원이라는 말로 담고자 했던 건 영원보다 더 먼 영원이었어요. 천사보다 더 투명한 천사, 소년보다 더 무위(無爲)의 소년에 닿고 싶었죠. 금지의 방식으로라도 그들이 이 시 안에 와주었으면 했어요. 객기죠. (웃음) 시인이 가진 것은 언어뿐이겠지만, 그렇다고 시에 언어만이 담기는 건 아니잖아요. 시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담을 때도 담은 후에도 저는 다 알 수 없지만, 그중 미리 담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시의 의미겠지요. 시집의 제목에 대해 이런저런 배경을 말씀드리긴 했지만, 이 제목에는 어떤 의미도 미리 담겨 있지 않아요. 시의 의미는 시의 언어와 문장 안에 이미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영혼과 마주하는 때에 비로소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것은 제 몫이 아닌 것 같아요. 의미는 독자께 내어드리고자 해요. 와서 지내다 가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Q3. 강렬한 제목과는 달리 서정적인 작품들도 여럿 마음에 남았어요. “꿈 바깥의 안부를 전하느라/ 거듭 옅어지던 꿈의 개울가에서// 서로의 귀에 귀를 포개었지/ 서로가 기르는 침묵의/ 둘레가 되어주려고”(「장마」) “안녕, 어젠 해변의 네 살배기들과 조개를 모았어. 석양이 들면 그때 우리가 다 줍지 못한 조개껍질들이 은화처럼 반짝였어. 어젯밤엔 귀와 입으로 고운 모래가 쏟아져 들어와 잠에서 깼어.”(「고사리 장마」) “어떤 꿈에선 사랑이 많은 사람과 만났다/ 그와 살아서 가고 싶은 곳보다/ 죽어서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았다”(「다나에」) 같은 부분들이요. 인용한 부분들은 공통적으로 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데요, 시인님의 시세계에서 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악몽 부자입니다. (웃음) 나는 내게 진실하기 어렵고, 세상에 진실하기 어려워요. 반대로 누군가에게, 세계에게 진실을 바라기도 참 어렵죠. 영혼과 진실은 공기에 취약하잖아요. 내놓으면 갈변하죠. 자기의 영혼과 진심을 세상에 드러내고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악몽만은 악몽의 방식으로 내게 진실해요.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후회하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지 아주 투명하게 펼쳐 보여주지요. 악몽 안에는 이 세계의 것은 아니지만 시공간이 있고 감각이 있고 이야기와 감정이 있죠. 이 세계와 단절된 세계이면서도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요. 그런 면에서 악몽과 시는 참 닮았어요. 악몽에서 깨기 직전의 순간과 시의 마지막 문장도 비슷하고요. 저는 악몽에서 깨고 난 직후의 한밤중에 시가 제일 잘 써져요. 악몽을 한바탕 겪으며 세상에서의 내가 완전히 무장해제되고 무방비의 영혼이 노출되는 시간이니까요. 그래서 원고 마감에 쫓길 때는 악몽과의 독대를 바라며 잠에 들기도 해요. 저는 시를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 바라는 바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이제 타인에게도 딱히 바라는 바가 없어요. 다만 제 악몽 속의 여러 이들에게는 바라는 게 많아요. 다음번 악몽에선 좀 살살 부탁드립니다. 매번 저만 먼저 악몽의 밖으로 도망쳐서 죄송합니다. 꿈 속의 이야기를 꿈 바깥으로 훔쳐가서 죄송합니다. 제가 악몽 말고는 가진 게 없는지라.

 

Q4. 시집을 넘기다보면 유독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어요. 표제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에서 단어의 순서만 바꾼 「소년 금지 영원 금지 천사 금지」 「천사 금지 소년 금지 영원 금지」 같은 시들은 하나의 시 속에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거나 병치되어 있고, 「하다못해 코창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말미잘을 보고도 네 생각이 났어」는 전체가 사진 한 장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또 「Łй 악몽 속으로 へㅏㄹΓ진 ㉡ㅓ의 영혼의 ёnŧrØpħy로 Ꮣㅐ겐 Øl런 문ㅈБO1 Łй己lヹ...」는 특수문자 등의 ‘외계어’로만 가득차 있고요. 이 작품들의 독법을 제안해주실 수 있을까요?

 

재미있게 봐주세요! 얼마 전 찾은 외국의 한 해변에서 꼬마 아이 셋이 모래성을 짓는 것을 한참 보았는데요, 파도가 깊게 들어와서 아이들이 쌓던 모래성이 무너질 때마다 아찔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러는 사이 아이들의 놀이에 제가 더 몰입해서 보고 있는 거 있죠(아이들은 물론 쿨하게 다시 성을 쌓다가 쿨하게 모래 도시를 떠났지요). 우리는 학교에서 시 속에 숨겨진 의도를 찾게끔 배워왔잖아요. 정해진 주제나 틀에 박힌 표현과 효과를 학습하고 그것에서 벗어난 답을 내면 가차없이 오답이 되고요. 그래서 시를 보면 시인의 의도와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하거나, 교과서 바깥의 ‘요즘 시’들은 그게 잘 안 되니 시를 멀리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월권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저자로서 보증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표현상의 의도나 의미도 미리 숨겨두지 않았어요. 그것을 찾으려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파도가 넘어들어와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당연하고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여겨주시면 좋겠어요. 모래성을 무너뜨리려고 파도가 치는 게 아니듯이, 그 파도에는 의도와 의미가 없어요. 파도와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을 보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이 더 중요해요. ㄴㅐ겐... ┓┠끔... ㈚도ㄱ߅ 친다... フト끔은 ㅍΓ도를 え占을 수 없는 내>ㅏ 별루ㄷr... (◕﹏◕✿)

 

Q5. 마지막으로,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를 읽을 독자분들께 인사를 건네주세요.

 

반가워요. 육호수입니다. 저는 시인이기 이전에 한국의 시를 찐으로 좋아하는 독자예요. 이십대 중반의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시가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구체적 생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너무너무 좋아하다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평론도 하는데요, 저는 오래오래 여러 시를 곁에 두고 읽고 쓰며 평생을 지내고 싶어요. 십 년 후에도, 백 년 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시로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반갑게 여기실 수 있도록 살겠습니다. 제가 처음 시인으로 데뷔했던 때, 지면에 이렇게 수상 소감의 마지막을 적었었네요. 부끄럽긴 하지만, 지금도 그때와 같은 마음이에요. “제가 가진 곁을 모두 시에 내어주고, 백지 앞에서 조금도 비켜가지 않겠습니다.”

 

 

 

 

 

<서지 정보>

쪽수: 176p

판형: 131*225mm

가격: 12,000원

시리즈명: 문학동네시인선

발행일: 2023년 03월 10일

ISBN: 9788954698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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