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17년 『문학3』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다연 시인의 첫 시집 『나의 숲은 계속된다』가 타이피스트 시인선 004번으로 출간되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자신의 목소리를 탐색해 온 시인은 빈칸과 공백과 바람의 언어를 손에 쥐고 일상의 소음에 지친 우리에게 에코의 목소리를 건넨다.
어떤 말로도 채워지지 않는 존재의 상실을 통해 시인은 그 나날을 기록함으로써 너의 없음에서 발현되는 말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허공의 목소리로, 한 끝의 부산스러움도 없이, 김다연 특유의 배려와 세심함이 돋보이는 문장들로 독자들을 나직한 숲의 세계로 초대한다.
『나의 숲은 계속된다』는 ‘무’의 언어이자 그리움의 언어에서 시작된다. “너로부터 쓸 수 없는, 그러나 써야 하는 슬픔을 물려받은” 김다연에게 이 세계는 나와 너 사이의 거리이며, 변화와 깊은 사이의 스며듦이며, 적요와 소란 사이에서 발생하는 말들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현의 울림을 닮은 그의 시는 ‘무’의 아름다움으로, 무엇보다 아름답게 태어난다.
김다연
2017년 『문학3』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의 말>
잃었다고 하기엔 애초에 없었던
없음으로 존재하는
어떤 말로도 채워지지 않는 을
하염없이 바라만 본다
2024년 6월
김다연
<목차>
1부
너는 너의 밤을 중얼거리고 나는 나의 꿈을 웅얼거리고/ 아무 일도 아닌 거잖아/ 나를 너로 고쳐 쓰는 밤/ 고독은 나의 사(事)여서/ 자소서/ 기억은 기억되지 않는다/ 불빛을 지송(持誦)하다/ 시가 이렇게 쉽게 써지는 아름다운 홀로/ 그 여름의 빗물이 빈 밥그릇에 고여 가는/ 멈추지 않는 키보드 소리가 홀로 영화를 쓴다/ 너의 마침표 속에서 꽃으로 필
2부
다른 나라에서/ 고요의 단락에서/ 닥/ 상자 안과 밖의 어둠은 차이가 없다/ 겨우의 겨울/ Reality/ 시네마가 끝나고 시네마가 다시 시작되는 계절/ 나는 ‘너’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너는 ‘나’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은는이가와 헤어지는 입술들/ 다음 문장은 없다
3부
‘ㄹ’이 사라진 밤/ 기억은 기억되지 않는다/ 스퀴즈/ 녹는다/ ‘ㄹ’이 사라진 밤/ 너에게로 가는 메모/ ‘같은데’라는 말을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일어설 수 없는, 불빛에 걸터앉은 씀으로부터/ 모든 겨울이 지나간 뒤에 홀로 남겨진 의자가 있었다/ 겨울 담요에서 새털이 날리고 달빛 엉클어지는 지붕 위에서 고양이 잠을 청하다
4부
슬픔의 최종본/ 지금 흐르는 눈물은 몇 시 몇 분의 슬픔일까?/ 영/ 기억은 기억되지 않는다/ 하염없는 보케Bokeh들의 내일은 하얗다/ 몇 방울의 물로 너의 강에 닿을/ 가도 가도 먼/ 출처 없는 숲을 거닐다/ 종점/ 다음에 올 지저귐
산문─말의 울음을 듣다
<출판사 리뷰>
“나는 조금 더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무 곁으로 옮겨 가야 할 것 같아”
너에게서 시작되었으나, 너에게서 멀어진,
없음에서 태어나는 말들의 아름다움
2017년 『문학3』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다연 시인의 첫 시집 『나의 숲은 계속된다』가 타이피스트 시인선 004번으로 출간되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자신의 목소리를 탐색해 온 시인은 빈칸과 공백과 빈 바람의 언어를 손에 쥐고 우리에게 에코의 목소리를 건넨다. 상실의 정서를 오랜 시간 궁굴려 온 시인의 문장은 어렵지 않은 시어로 깊은 여운을 남기며 독자들을 나직한 숲의 세계로 초대한다.
모든 오늘을 한 문장에 담기 위해
‘너’를 옮겨 적으면서 나를 비껴가는
무언가 쓰고 싶었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밤일 뿐인데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인데
몸에서 새가 울고 강이 흐른다
나는 조금 더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무 곁으로 옮겨 가야 할 것 같아
―「너는 너의 밤을 중얼거리고 나는 나의 꿈을 웅얼거리고」중에서
시인은 무언가 쓰고 싶은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른다. 책상에 앉아 눈을 감고 그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것은 <시인의 말>에 쓰인 것처럼, 이미 ‘잃어버린 것’이며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며, 나아가 ‘없음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래서 ‘어떤 말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기에 시인은 눈을 감고 “텃밭을 가꾸고 방울토마토를 기다리”는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생각한다. 작은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만으로 시간은 다시 흐를 것이고, 그럼으로써 시인은 자신이 쓰고 싶은 무언가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것, 한때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으로 인해 시인의 시간은 멈추었고 그 잃어버림마저 잃어버렸기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세계, 그 없음에서 태어나는 말들의 머뭇거림 속에서 빈 바람이 분다.
나는 너로부터 쓸 수 없는
그러나 써야 하는 슬픔을 물려받았다
나는 어떤 모종이었기에 어떤 흙에서도 자라지 못했을까? 허구의 잎. 그림자에 안겨 곤한, 몽상으로부터의 광합성.
빛을 받아 자라나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단 하나의 과오
나를 웃게 한 것이 나를 울게 한다는 것. 나를 울게 한 것은 결국 나라는 걸 알 때까지 울고 우는 것.
―「고독은 나의 사(事)여서」중에서
아픔이 아프지 않다고 하기엔 슬픔이 슬프지 않다고 하기엔 너무 아프고 슬퍼서 끝까지 읽을 수 없어 덮어 둔 페이지에서
(…)
차가운 발을 만지면 들리는 속삭임은
춥다는 말일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일 것이다
―「‘ㄹ’이 사라진 밤」중에서
존재의 상실을 통해 무한한 말들의 탄생을 지켜보던 시인은 그 나날들을 기록함으로써 너의 없음에서 발생하는 말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나직한 목소리로, 한 끝의 부산스러움도 없이, 김다연 특유의 배려와 세심함이 돋보이는 문장들로 숲의 형체를 그려 나간다. 그러므로『나의 숲은 계속된다』는 ‘무’의 언어이자 그리움의 언어에서 시작된다. “너로부터 쓸 수 없는, 그러나 써야 하는 슬픔을 물려받은” 김다연에게 이 세계는 나와 너 사이의 거리이며, 변화와 깊은 사이의 스며듦이며, 적요와 소란 사이에서 발생하는 말들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현의 울림을 닮은 그의 시는 ‘무’의 아름다움으로, 무엇보다 아름답게 태어난다.
<본문 속으로>
무언가 쓰고 싶었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밤일 뿐인데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인데
몸에서 새가 울고 강이 흐른다
나는 조금 더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무 곁으로 옮겨 가야 할 것 같아
―「너는 너의 밤을 중얼거리고 나는 나의 꿈을 웅얼거리고」중에서
나는 어떤 모종이었기에 어떤 흙에서도 자라지 못했을까? 허구의 잎. 그림자에 안겨 곤한, 몽상으로부터의 광합성.
빛을 받아 자라나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단 하나의 과오
나를 웃게 한 것이 나를 울게 한다는 것. 나를 울게 한 것은 결국 나라는 걸 알 때까지 울고 우는 것.
―「고독은 나의 사(事)여서」중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살아 있었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죽어 있는 건지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배가 고픈 거일 수도 있다. 빵을 씹다가 종이를 씹다가 이미 부활한 것일 수도 있다.
―「불빛을 지송(持誦)하다」중에서
아픔이 아프지 않다고 하기엔 슬픔이 슬프지 않다고 하기엔 너무 아프고 슬퍼서 끝까지 읽을 수 없어 덮어 둔 페이지에서
(....)
차가운 발을 만지면 들리는 속삭임은
춥다는 말일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일 것이다
―「‘ㄹ’이 사라진 밤」중에서
비가 내리고 있어 기르던 개가 떠나고 그 개의 빈 밥그릇에 빗물이 고이고 있어
눈물이 아닐 때까지 슬픔을 쓴다면 마침내 수증기에 도달하겠지 그러나 쓸 수 없음이 우리의 마지막이어서 그 여름은 너를 다시 시작하고 나는 다시 시작된 여름 속에 있어
―「그 여름의 빗물이 빈 밥그릇에 고여 가는」중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누군가와 밥을 먹고 누군가와 비를 맞다가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서 잠들고 버스에서 일어나 창문에서 덜컹거리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사이드 미러 속으로 사라지는 간판들과 사라져 가면서
더 이상 손을 흔들지 않게 되었지 멀어져 가는 것들에 대해
―「종점」중에서
생각에 음악을 얹지 말자 고조되지 않은 미증유의 하루 위를 허튼 걸음으로 오간다 그 모습이 그립지만 그 모습은 없다
가만히 있어도 잃고 있다 붙잡아도 떠나고 있다 남겨질 이유 없이 남겨져 있다
철새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고요의 단락에서」중에서
모두 어디로 사라졌지? 길고 긴 겨울이었는데 담요 속에 새들은 펄럭거렸는데 나는 둥실 떠올랐는데 그만 털실을 놓쳤는데 길고 긴 꿈이었어?
한 뭉치 두 뭉치 털실을 쫓아 굴러간 늙은 고양이는 말이야
저 구름과 뭉쳐진 것 같아
괜찮아 괜찮아 올 풀린 구름도 뒤엉킨 바람도 괜찮아
―「겨울 담요에서 새털이 날리고 달빛 엉클어지는 지붕 위에서 고양이 잠을 청하다」중에서
그러니 써야 한다. 견딜 수 없음을 견디며, 그냥 쓰는 그 몇 줄의 문장이 나를 이끌고 갈 것처럼. 씀으로써 다가갈 수 없는 너를 향해 다가갈 것처럼.
― 시인의 산문「말의 울음을 듣다」중에서
<추천사>
이 시집에는 ‘나는’으로 시작되는 문장이 많다. 물론 시라는 게 대개 일인칭 문학이지마는. 나는, 구름…… 바람…… 나무…… 안개처럼 “쓸수록 나에게서 멀어진다”(「자소서」)고 말한다. 김다연 시에는 꽉 차거나 밀착된 것보다 조금 비어 있고 조금 미치지 못하는 것이 주는 애틋한 아름다움이 있다. 화자는 세상과 밀착되지 않고 헐렁하다. 헐겁게 끼워져 있는 삶이랄지 생. 그 헐거움에 자유가 있다. 김다연이 구사하는 언어들의 나른하고 민감한 자유. ‘슬픔의 수증기’ 같은 시집이다. ―황인숙(시인)
김다연의 시는 반복을 통해 언어의 외피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그 언어의 속은 이미 ‘너’가 빠져나간 너의 세계. 없음의 세계. ‘나’는 이 텅 빈 세계가 처한 궁지를 디디고 다시 반복으로 도약한다. 같은 수렁으로 다시 떨어진다 하더라도, 되돌아오고 되돌아오며 최초의 너에게서 멀어진다 하더라도. 이 도약과 추락이라는 동어반복의 운동은 없음을 있게 할 수는 없으나, 없음의 둘레를 끝없이 공전한다. 너에게서 네가 빠져나가고서야 네가 되고 마는 역설, 내가 내가 아니게 되고서야 다시 내가 될 수 있다는 역설, 이 이중의 역설 가운데서 우리는 잠시 침묵의 문장으로 만나 우리가 된다. 현실의 비실감과 꿈의 실감이 교차하는 이 몰락한 세계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몰락했으므로 완전하다. 비로소 어둠이 어둠으로 밝아 온다. ―육호수(시인, 문학평론가)
제목: 나의 숲은 계속된다
저자: 김다연
쪽수: 112p
판형: 120*190mm
가격: 12,000원
발행일: 2024년 7월 20일
분야: 시
ISBN: 979-11-986371-7-8
나의 숲은 계속된다 타이피스트 시인선 4 / 김다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