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부터 2025년 4월 4일까지 123일 동안 스친 생각을 써둔 짧은 기록물.
계엄 당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맞닥뜨린 순간부터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틈틈이 써둔 생각들… 작가는 비상식적인 상황 속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섬세한 문장으로 써내려갔습니다.
-
책 속으로
11시 35분. 여의도 도착. 국회 방향으로 걷는데 앞서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왠지 ‘오늘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서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다들 잘 사려나. 죽을 수도 있는데 별생각을 다 한다 싶었다. 국회 방향으로 군용 헬기가 날아갔다. 함께 걷던 사람들 발걸음도 빨라졌다. 묵묵히 사람들 발뒤꿈치를 보며 걸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문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아서 왼편 화단 위로 올라갔다. 내 앞 화단에는 미래 대통령을 꿈꾼다는 유튜버가 누군가와 전화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사람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계엄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함께 목소리를 높이며 SNS 라이브를 켰다. 걱정하는 사람들과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사실을 알고 놀라며 분개하는 사람들. 아직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모르다가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 누가 일상을 무너뜨리는가 중에서
어제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똑딱이 미니등 100개를 나눔했다. 촛불과 응원봉 못 챙겨 오신 분들을 위해 준비했는데 금세 사라졌다. 한편으로는 축제 같았고, 한편으로는 열망 같았다. 이후 집회에서 내가 나눔한 미니등을 종종 볼 때가 있었는데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사이지만, 동지 같았고 친구 같았다.
다시서점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게시물을 정치적이라고 신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치졸하게 굴지 마시고 서점에 오면 따듯한 차 내어드릴 텐데. 이런 일들은 이번뿐만 아니라 왕왕 있었다. '서점이 왜 그렇게 하느냐', '지겹다', '답답하다' 등등. 하지만 그건 대화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느낀 것일 뿐. 어떤 졸렬한 공격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다시서점은 다시서점이 문을 닫는 날까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거다. 계속 괴롭혀도 나는 외롭지 않다.
- 12월 27일 중에서
책제목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쓴이 김경현
페이지 64쪽
판형 105*165mm
재질 (내지) 그린라이트 100g
* 목차 없음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 김경현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