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세상을 향한 솔직함으로 이뤄낸 가장 투명한 상태
신유보에게 빈집은 비어있는 상태보다 비어낸 상태에 가깝다. 비어있든 비어냈든 빈집도 집이 될 수 있고, 솔직한 이야기로 자신을 마음껏 비워낸 사람도 사람일 수 있다. 자신을 텅텅 비워낸 사람을 빈집이라 부를 수 있다면 빈집을 이뤄내기 위해 비워낸 심경은 공명일 테다.
신유보의 공명은 새로운 울음이자 환호이다. 세상을 향한 가장 투명한 고백이자 무구한 솔직함이다. 우리는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봄(look)으로써 느낄 수 있지만, 빈집과 공명은 부재의 상태에서도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이해(see)할 수 있게 돕는다. 채워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할 틈을 내어준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음과 이해할 수 없음, 두 갈래로 나눈다면 비어있음은 언제나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여성, 한 사람, 한 세계를 거듭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신유보
수원에서 태어나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홀로 영국에서 보냈다.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했다.
시 주변을 맴돌며 밥벌이로 영어를 가르친다.
이방인의 감각과 소수자 담론에 관심 있다.
독립출판사 <보라프레스>를 운영하며 『집, 어느 민달팽이의 유랑』 『애정 재단』 『하지가 지나고 장마가 끝나도』 등을 쓰고 만들었다.
<목차>
들어가며
불신으로 맹신하기 ○ 5
1부 아무도 오지 않는, 어두운 빛에 기대어
자주 우는 사람의 마음 ○ 17
꿈의 집 ○ 20
blue print ○ 22
살의 기억 ○ 26
간접 조명등 ○ 28
빈집 ○ 31
일광화상 ○ 33
매일 서글픈 날씨 ○ 35
안아주세요 ○ 38
춤추는 껍질 ○ 40
나와 나 ○ 43
이방인 ○ 46
소진되지 않을 거야 ○ 48
잘 지내? ○ 50
선명하고 자유롭게 ○ 53
시 쓰는 마음 ○ 56
시간이 약이라는 거짓말 ○ 60
빈집 지키기 ○ 63
2부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무용할까
새로운 구축 ○ 69
인테리어 interior ○ 70
관계병자의 마음 ○ 73
이채롭지 않은 시간 ○ 75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 ○ 78
찢잎 ○ 81
비워내는 일 ○ 83
과거에 두고 잠가버린 ○ 86
살의 낭만 ○ 88
수신자표시제한 ○ 90
나의 병 나의 사랑 ○ 93
아이들 ○ 97
걷혀질 용기 ○ 101
빈집과 집 ○ 105
3부 있는 그대로의 사랑
모자라게 완벽한 ○ 109
어떤 낙천 ○ 113
How Do I Say Goodbye ○ 116
글을 쓸 수 없어요 ○ 119
빈 화분에 물 주기 ○ 122
사랑에 빠진 여자의 얼굴 ○ 124
울창함 안으로 ○ 127
사랑 없는 하루 ○ 129
아무리 늘려도 짧은 순간 ○ 133
문우 ○ 136
나가며
일기예보 ○ 139
추천의 글 김연재(극작가)
이튿날의 되풀이: 결벽적으로 실패하기 위하여 ○ 143
<책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은 늘 많다. 할 수 있는 말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진심을 털어 놓는 얼굴에서는 낡은 의자 다리 소리가 난다. 삐걱삐걱. 그 소리를 보고 싶지 않아서 눈을 질끈 감으면 소리 대신 눈물이 떨어진다. 눈물은 자주 진심보다 덜 추하다. 꽤 확신에 차서 말하지만 실은 내가 틀리길 바라고 있다.
「자주 우는 사람의 마음」 중에서
어수선한 구름. 거짓말이라고 비유할 만한 모든 현상을 닮아버린 것 같다. 내가 통과한 사건들. 무뎌지고 납작해진 것처럼 굴지만 결국은 더 예리해진 부분을 숨기다 스스로 다치게 되는 일들.
「매일 서글픈 날씨」 중에서
나는 인간을 싫어하지만 사람은 좋아한다.
이게 얼마나 슬픈 말인지 이해된다면 유감이다.
내게 인간이 본질에 가까운 말이라면 사람은 현상을 닮은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좋다. 변할 수 있고 나아갈 수 있고 흐를 수 있고 반짝일 수 있고 흔들릴 수 있고 뒤돌아 볼 수 있다. 날씨이고 행진이고 눈물이고 주사위고 배웅이다. 그런 것에 고집이나 자기애 따위의 인간스러움이 끼어들 틈은 없다.
「인테리어 interior」 중에서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아무래도 오만이었을까?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느꼈을 때 나는 사뿐히 물러서야 했을까? 우리는 어째서 자신에게도 서로에게도 이토록 무용할까.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타인에게도 진심어린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슬프지만 당연한 사실까지 한꺼번에 밀려온다.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 중에서
과거는 오직 시간의 관점에서 비롯된 한 개념일 뿐,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니까 밀어내고 덮어두고 감춰둔 마음일 뿐. 혹은 역설적으로 나는 과거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하는지도 모른다. 영원이라 믿을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쌓아둔다. 나를 그날로 불러 세우는 것들을 잊지 않는 마음. 어떤 노래, 어떤 향초, 어떤 글귀, 어떤 꽃, 어떤 지하철역…… 전부 기억의 서랍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아무래도 끝나버리는 건 싫으니까. 여전히 슬픈 것이 이제 더는 슬프지 않은 것보다 덜 슬프다.
「How Do I Say Goodbye」 중에서
고민하다 일기예보를 확인했는데 이번주 내내 소나기 소식이 있다. 어째서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일이 무슨 소용인지 싶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지만 정작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따금 남몰래 까먹는 사탕의 껍질처럼 바스락거리는 기억을 꺼내면 어차피 전부 과거다. 우리가 저장하려고 한 것은 장면이다. 분위기, 냄새, 표정, 기분. 과거를 불러오고 싶어서 기억을 하고 미래로 가고 싶어서 상상을 하는데, 그 모든 것을 해내는 현재의 순간에 시간으로 분할된 나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것은 기쁜 일이다. 모든 나는 지금 나와 있는 것이니까.
비가 그쳐있다.
「아무리 늘려도 짧은 시간」 중에서
<추천의 글>
김연재(극작가) ― 이튿날의 되풀이: 결벽적으로 실패하기 위하여
사랑한다는 것―그것은 한 사람을 신이 그에게 의도했던 대로, 즉 그의 부모가 만들어 내는 데 실패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그것은 한 사람을 그의 부모가 만들어 낸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이 식는다는 것―그것은 그 사람 대신에 테이블이, 의자가 보이는 것이다.*
비가 온 다음 날을 상상해 보라. 어제는 밤새도록 천둥번개가 쳤다.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반짝인다. 출근하는 사람들, 학교 가는 아이들, 우산이 없는 기쁨. 흙탕물이 넘치던 곳에는 차갑고 투명한 물이 흐르고 있다. 어제와 다른 물이지만 어제만큼 위협적인 물이다. 유보는 이 물살을 쓴다. 폭풍의 생존자로서 폭풍을 다시 산다. 온전히 돌이킬 수도 가뿐히 나아갈 수도 없는 잔해 속에서 그녀는 말 그대로 선택을 유보한다. 대신에 어제와 다른 어느 하루를 반복한다. 반복의 이유는 단 하나다. 낫지 않기 위해서. 낫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자신의 삶과 글쓰기 그리고 이 세계를 대하는 윤리다. 그녀는 쓴다. “아무리 괴로워도 아프지 않고 싶지 않다”고.
시인은 언어를 한번 상실했다가 다시 한번 간절하게 되찾는 사람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언어가 우주를 분절한 결과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은 언어로 분절되기 이전의 우주를 향한다. 어떤 디딤대도 없는 무한의 흐름. 거기를 엿본다면 누구든지 말을 잃고 광기로 얼어붙을 것이다. 나는 내 친구 유보의 지독한 우울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러나 시인은 실어와 광기의 찰나에 언어를 붙잡는다. 텅 빈 우주를 모험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않았을 언어를. 나는 시인 유보의 글을 이렇게 읽는다. 유보가 빈집의 유령인 까닭은 언어로 분절되지 않는 저 아득한 우주로 여행을 떠났다가 귀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령은 죽음의 다음날에 기거한다. 이튿날. 죽음으로부터 한 발짝 걸어 나온 이 막연한 하루가 그녀를 쓰게 한다. 이 하루가 그녀를 낫게 한다.
유보는 결벽적으로 실패한다. 삶에, 사랑에, 글쓰기에. 나는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좀 찰싹 때리고 싶었다. 이렇게 지독하리만치 자신을 파고들어야 하냐고, 상처의 딱지를 떼어내야만 하냐고, 아직도 처음처럼 아프냐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었다. 이토록 큰 사랑을 가진 사람이 왜 작은 의심 하나에도 벌벌 떠냐고, 어떻게 이리도 여자일 수가 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앞뒤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게는 어떤 ‘척’을 하지 않음으로써 지키고 있는 세상에 대한 예의가 있다”고 그녀가 썼듯, 이 책을 엮고 있는 투명한 힘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세상을 향한 커다란 솔직함이다. 나는 유보라는 사람으로부터 솔직함이 커다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동시에 그것은 너무나 취약하여 언제든 훼손되거나 배신당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배웠다. 이것은 ‘언니’만이 알려줄 수 있는 삶의 비밀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삶의 마땅함으로부터 배신당한 어느 날에 이 책을 펼치면 좋겠다. 아무 페이지를 열어 거기에서 계속 얼굴을 씻고 있는 이의 몸짓을 느낀다면 좋겠다. 먼저 슬픈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책갈피 없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순차적으로 읽는 대신 문장들을 길어낸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앞도 뒤도 없이 헤엄치면 좋겠다. 그렇게 계속 책을 펼치다 보면 이 책이 꼭 당신 자신이 쓴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올 텐데, 그때 비로소 당신은 다 울고 난 이의 깨끗한 얼굴로 깊고 편안한 잠에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잠에는 반드시 끝이 있을 것이다.
*마리아 투마킨,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서제인 옮김, 을유문화사, 2023, 371쪽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일기 중에서.
제 목 : 빈집과 공명
지은이 : 신유보
출판사 : 출판사 결
발행일 : 2024년 10월 21일
분 야 : 국내산문
시리즈 : 산문과 결
쪽 수 : 152쪽
판 형 : 130*190mm 무선제본
값 : 15,000원
ISBN : 979-11-979322-9-8 (03800)
빈집과 공명 / 신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