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17년~2020년에 걸쳐 독립문예지 『영향력』에 실렸거나, 혹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읽혔던 저의 초단편소설 7편과 에세이 7편을 묶은 책입니다.
1부는 초단편소설, 2부는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감(五感)으로 오는 기억, 권태와 균열, 어긋남의 예감, 토닥임과 나아감, 탈출, 좋아하는 힘 등에 관한 초단편소설 일곱 편과,
미(美), 여행 속 반짝이는 추억, 찡한 음악, 아련한 다짐 등에 관한 에세이 일곱 편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 안에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는 이야기, 혹은 문장이 반드시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작가 소개>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
읽고 쓰기를 언제나 사랑해 왔고 음악과 미술, 공연, 무용 등 예술 전반에 대해 알수록 더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 보유자. 아무리 현실의 삶에 지쳐도 예술이 내 발목께에서 찰랑대고 있으면 최소한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믿는 사람.
독립문예지 『영향력』에 초단편소설과 에세이가 몇 번 실렸습니다. 그렇게 기웃거리며 내밀었던 글들과, 소수에게만 읽혔던 또 다른 글들을 한데 모아 묶어 보았습니다. 한 발짝이라도 디뎌 보고 걸쳐 보는 것을 장려하며, 세상의 모든 시작을 응원합니다.
<차례>
Ⅰ. 아주 짧은 이야기 : 초단편소설
복숭아 하나 복숭아 둘
메이즈도 한철
한 사람의 욕조
바다 있는 방의 밤
발뺌서사
받고 한입 더
흐, 흐, 하, 하
Ⅱ. 아주 짧은 내 이야기 : 에세이
참 예뻐요
유후인은 온인(溫人) - 온천 명소에서 온천을 안 갔다
찍고 찍힌 자국
난망(難望)
탑승기 No.31 – 누구나 때로는 가라앉지
Need to be in Carpenters – 매번 코끝을 때리는 노래
다시, 극으로
<책 속으로>
“셋.”
책도, 복숭아도, 엄마도, 이젠 그냥 머릿속에만 있다.
“복숭아….”
외할머니도.
“넷.”
아플 땐 이게 최고여, 통조림에서 후욱, 올라오던 복숭아 향.
“복숭아….”
감처럼 밝은 그것은 물컹, 하고 입속에서 돌다가 목구멍으로 미끄러졌었지.
“다섯.”
미열과 함께 끊임없이 콜록댔던 날이었다. 오늘은 열도 없고 기침을 하지도 않지만.
“복숭아….”
두세 조각을 한꺼번에 삼킨 것처럼 목울대가 뻐근하게 아프다.
“여섯.”
누가 한 대 친 것처럼 콧속이 지잉 하고, 험하게 베어 문 것처럼 두 눈이 아찔하다.
- 복숭아 하나 복숭아 둘’, 16쪽 -
잠시 정적. 더는 붙을 수 없을 만큼 붙어 있는 윤을 더욱더 끌어안고 싶지만, 오히려 무서움을 더 안게 될까 봐 나는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넌…… 갖고 ‘싶니?’ 우리 아기?”
순간, 내가 어디선가 목을 매게 된다면 내 유서 역시 ‘욕조가 차다’ 한 줄로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지난밤 허공에 매달려 발버둥 쳤을 그 누군가를 나는 단번에 이해한다.
- 한 사람의 욕조’, 31쪽 -
“안 보여서 그래? 노안?”
“내가 노안이면 저-렇게 밀쳐놔야 보이지.”
할머니는 손을 뻗어 만두 봉투를 팔 하나 길이만큼 밀었다. 하지만 시선이 봉투의 글자에 가 있지는 않았다.
“아, 노안이면 가까운 게 안 보이지, 참.”
“넌 잘 보이지? 공부하면서 눈은 안 상했냐.”
“많이 나빠졌지. 난 먼 게 잘 안 보여, 흐릿하니.”
“성격 나쁜데 눈까지 나빠졌으니 당최 건질 게 없네.”
할머니는 뭐가 재미있는지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해선은 어이가 없어 만두 봉투로 할머니를 가볍게 툭 치며 따라 웃었다.
“난 할머니가 부럽다. 먼 게 잘 보여서.”
“난 가까운 거 잘 보이는 게 더 부럽다.”
- 받고 한입 더’, 58쪽 -
이게 다야. 그해의 막바지 더위도, 쩌렁쩌렁 울리는 댄스곡 사이로 운동장 네 바퀴를 뛰어 낸 경험도 마지막이었던 날. 내 인생에 그런 오래달리기를 할 날이 또 있을까 싶어서 마지막이라고 하긴 했지만, 모르지 뭐. 누가 그렇게 다 뛰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내 맘대로 뛴 거잖아. 언제 또 내가 멋대로 달리면 다시 시작인 거겠지.
- 흐, 흐, 하, 하’, 72쪽 -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 인생과 미래를 생각하면 대책 없이 오싹해져 눈만 말똥말똥 뜨고 누워 있던 새벽, 그래도 다 괜찮을 거라며 자신을 다독이면서 눈 감고 이불에 파묻히던 그 새벽을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여성 보컬이 칠십 년대에 이미 따뜻한 목소리로 읊조린 말이 오랜 시간을 건너 내게 당도했을 때, 완벽한 타인이 주는 그 위로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했다.
- 'need to be in Carpenters’, 125쪽 -
ㆍ제목 : 멋대로 달리면 다시 시작
ㆍ저자 : 김세희
ㆍ분야 : 소설 (소설과 에세이가 함께 있지만 굳이 분류 하자면 소설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ㆍ판형 : 128*188mm (무선제본)
ㆍ쪽수 : 140쪽
ㆍISBN : 없음
ㆍ가격 : 15,000원
ㆍ발행일 : 2023년 7월 15일
멋대로 달리면 다시 시작 / 김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