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컴플렉스, 트라우마, 이 소설의 키워드다.
컴플렉스 : complex [kmpleks, kmpleks|kmpleks] 2 【정신분석】 콤플렉스, 복합; 《구어》 (어떤 것에 대한) 고정 관념, 과도의 혐오[공포] ((about))
트라우마 : trauma [traum, tr-|tr-, trau-] n. (pl. ~s, ~ta [-t]) 【병리】 외상(外傷); 외상성 장애(traumatism); 【정신의학】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
어느 대학 재학생 가운데 75%가 신체적인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당신은 어떤 상처를 가지고 계신지? 그리고 그 상처는 대개 남들과 아주 조금 다른 겉모습 때문은 아닌지?
껍데기 : 조개나 게, 거북이처럼 단단한 걸 말해요. (p. 285)
껍질 : 내용물과 완전히 엉겨 있죠. 사과나 배, 고양이와 개, 그리고 사람처럼 (p.286)
살아있는 사람을 석고로 뜨는 일, 즉 껍질을 떼어내 껍데기로 만드는 일, 결국 그 껍데기 속의 텅 빈 공간을 응시하는 일, 바로 라이프 캐스팅은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는 장운형을 둘러싼 세 사람, 좀더 자세히 보면 장운형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상처를 드러내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처를 담담하게 바라보기를, 그 상처를 나와 '완전히 섞인 껍질'로서 인정하기를 요구한다.
<목차>
프롤로그
그녀의 차가운 손―序
1부 손가락
외삼촌/미소/침묵/진실/용기/내 웃음/그의 손가락
2부 성스러운 손
슬픈 얼굴/아름답다는 것/계시/외계인/괴물/추운 입술/관(棺)/그녀의 눈/시간/흉터/비밀/증거/토끼의 눈/잔해/러닝 머신/행복/사랑/웃음 소리/침묵/연극/뭉개어진 얼굴
3부 가장 무도회
입술/거울 속의 여자/악몽/모형의 집/목소리/진짜와 가짜/더러움/천국/멀지 않은 눈/데드마스크/재회/따뜻한 손/막(膜)/당의정/피로/껍데기와 껍질/껍질 벗기/네가 원하는 것/가면 뒤의 얼굴/내 손가락
에필로그
작가의 말
<작가정보>
한강
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는 올해 영미판 출간에 대한 호평 기사가 뉴욕타임스 등 여러 언론에 소개되고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인간의 폭력성과 존엄에 질문을 던지는 한강 작품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만해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해외 번역 판권도 20개국에 팔리며 한국문학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2023년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2024년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네가 날 뜨고 싶다고 했을 때, 마치 내 가죽을 벗겨내고 싶다는 말처럼 들렸지. 네가 만든 껍데기들…… 지루하고 야비하더군. 그런데도 내가 허락한 건 왜 였을까? 아마도 난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내 껍데기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는 걸.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껍데기라면, 그게 껍데기인들 무슨 상관이겠어?
그래, 어쩌면……어쩌면 말이야. 이 양파 껍질들이 전부인지도 모르겠어. 끝까지 벗겨낸다 해도 하무것도 남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 네가 혼란을 느꼈다면, 진짜 나를 알고 싶었다면, 이제 알아둬. 내 화장, 내 몸놀림, 내 표정…… 그래, 네가 뜨고 싶어했던 내 얼굴 그게 나야.
--- pp.301~302
장혜숙에게 잠시 눈인사라도 하고 가리라 생각하며 나는 돌아섰다. 방학을 맞아 숙제하려 나온 중학생들의 한 떼가 우르르 출입구 쪽으로 몰려나가는 사이, 문득 나는 한 쌍의 키 큰 남녀를 발견했다. 그들은 그다지 전시에 관심이 없는 듯, 실내의 중앙을 유영하듯 어슬렁거리며 사위를 둘러보고는 어깨를 나란히하고 걸어나갔다. 유리문을 열기 전에 여자가 뒤를 돌아보더니 팔을 들어 무엇인가를 가리켰고, 남자는 우렁우렁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 p.326
<출판사 리뷰>
슬픈 아름다움을 지닌 작가 한강의 두번째 장편소설
당신의 뼈까지 투시하는 서늘한 사랑!
어느 조각가가 만난 두 명의 여자는 너무 뚱뚱하거나 혹은 너무 차갑다
그녀들의 인체를 작품화하면서 낯설고도 묘한 그리움이 다가온다. ‘삶은 상처’라는 실존적 명제를 1990년대의 그 어떤 소설들보다 강렬하게 부각시킨 작가 한강이 4년 만에 두번째 장편소설을 펴낸다. 삶의 고단함과 속깊은 상처의 쓰라림을 작품 속에 아로새겨온 작가는 더욱 깊고 넓어진 작품세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작가 한강은 이번 장편소설에서 ‘라이프캐스팅’(인체를 직접 석고로 떠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를 화자로 등장시킨다. 그 조각가가 바라보는 두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라이프캐스팅 작품과 어우러지며 다소 낯설고도 묘한 흥미를 자아낸다. 이 소설에서 화자인 조각가와 두 여주인공은 사실 액자 안의 이야기이며, 액자 밖에는 ‘나’라는 작가가 또 존재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어, 액자 바깥의 인물이 액자 안의 인물을 들여다보고, 그 액자 안의 인물은 또 다른 두 주인공 여성(비만으로 고민하는 여대생 L, 지나치게 차가운 손을 지닌 인테리어 디자이너 E)을 들여다보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소설이 전개되면서, 주인공들의 진실이 조심스레 드러난다. 더불어, 액자 속 화자인 조각가 장운형이 두 여주인공을 대상으로 라이프캐스팅을 만들어가면서, 그녀들 육체의 껍데기가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삶의 은밀한 비밀과 슬픔들을 어루만지게 된다.
“진실. 응시. 연민. 이 소설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깊숙이, 끈질기게 응시함으로써 마침내 발견하게 되는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에는 체온이 배어 있을 거라고. 나는 사랑하고 싶었다. 그것은 응시와 연민만으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송두리째 눈과 몸을, 시간과 공간을,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하는 세계다.”
― 한강
작가는 소설 속에서 나오는 “멋진 몸매는 흥미롭지 않다. 평범하고 불균형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벗겨놓고 보면 낯설게 보이리라 짐작되는 몸이 내 마음을 끌었다”라는 조각가의 독백처럼, 늘씬하고 멋진 삶의 화려함보다 일그러지고 어긋난 삶의 균열을 응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소설 속의 주인공 조각가는 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조각난 인체의 껍데기들 가운데 곤혹스러운 듯 서 있곤 한다. 거의 중성적일 만큼 밋밋한 가슴, 아름다운 어깨의 선을 가진 상체의 뒷부분, 제왕절개한 자국이 드러난 아랫배, 납작하게 처진 엉덩이들이, 저마다 찢어지고 기워진 형태로 흩어져 있는 인체 작품 속에서 진실을 발견해간다. 작가는 시종일관 서늘한 시선으로 거짓 웃음과 육체의 탈 속에 가리워진 삶의 생채기들을 더듬으며, 더욱 완숙해진 문장으로 아픈 진실들에 다가서고 있다.
그대의 차가운 손 /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