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아버지와의 작별 이후 나를 지켜낸 일상의 단단한 기록
《무화과와 리슬링》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 《나의 수무월》
글을 쓸 때마다 깨닫는다. 내 삶을 가능케 한 건 곁의 사람들이란 사실을. 한 뼘도 되지 않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 밭을 일구고 씨앗을 심어 초원을 펼쳐낸 이들 덕분에 초록의 동산을 맘껏 뛰놀고 뒹굴었다.
내 생애 첫 농사꾼은 아버지다. 나의 아버지. 그의 직업은 농부고, 24절기의 흐름에 따라 매일을 살았다. 하루를, 한 절기를, 한 계절을, 한 해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초등학생 때 방학 숙제로 24절기를 조사해 간 적이 있다. 친구들은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청명, 하지, 한로 따위의 절기보다는 멋진 그림이나 화려한 작품이 인기였다. 구석 자리에 앉아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은 내 숙제를 정독했다. 조금 쓸쓸했지만 괜찮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문장으로 써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던 게. 내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레 체화된 날씨의 변화와 절기의 연결에 대해 찾아보고 글로 써내고자 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농사꾼이던 아버지의 품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아이가 태어났다. 밭일을 나가던 당신 모습이 선하다. 씨앗과 모종을 심고 결실을 볼 때까지 맹렬한 여름을 보낸 당신처럼 책상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수무월(水無月). 물이 없는 달. 그러나 물의 달인.
무수한 날들 속에서 마주한 일상의 장면과 순간의 기록을 담았다.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르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려 한다. 낮과 밤이 끊임없이 흐르는 동안 바라본 풍경들이 하나의 시절이 되어 지나간다. 슬픔 없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 부디 그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만든 가장 찬란한 수무월을 선사한다. 나의 수무월이 흘러가고 있다.
<작가정보>
오종길
일인 출판사 시절을 운영한다.
소설집 《지구과학을 사랑해》 《뒤로하고 안아줘》 《저크 오프》,
산문집 《무화과와 리슬링》,
에세이 《DIVE》 《겨울을 버티는 방》을 출간했다.
<목차>
여는 글
소망 그리고 소만 / 목련 / 음력 2월 28일 / 춘분과 충분 / 시월의 결혼식 / 무제 / 가물치 / 한낮의 카페 / 밤 산책 / 삶은 이상하게 흐른다 / 뒷산 오르기 / 후암동 은행나무 / 손수건 / 무제 / 일월 어느 밤 / 무제 / 깊은 밤을 날아서 / 아무도 오르지 않는 산의 정상에서 / 24.08.28 13:17 / 연필로 쓰는 문장 / 봄밤의 통화 / 자명한 소리 / 입춘의 밤 / 27% / 우수의 밤 / 술친구 / 겨울 고립 여행 / 여름 낭만 / 호주에서 쓴 일기 / 구미와 긴지 / 연착 / 꿈의 사마귀 / 눈사람 / 12월 6일 오후 8:00 메모 / 8월 20일 일기 / 영춘화 / 엄마에게 / 메모들 / 불빛을 좀 더 어둡게 해줘요 / 정동진영화제 / 꿈 / 가을밤에 문득 / 번아웃과 함께 살아가기 / 다시 작아질 수 있을까 / 봄의 마지막 절기 / 모형처럼 / 겨울밤 편지 / 작은 이야기 / 침묵과 우정 / 2월에서 3월로 / 책방에서 / 경칩에 일어난 일 / 메모장에 적어둔 단어들 / 제주에서 찍은 사진 / 천 번의 밤 / 참외의 맛 / 알아채기 / 책방지기의 저녁 / 사랑스런 젊은 그대 / 해방촌과 후암동 사이 / 모르는 게 많아서 좋아요 / 해방촌의 나날 / 무제 / 대파를 손질하다가 / 비 내리는 카페에 앉아 / 아버지와 찍은 사진 / 화요 두 병을 마시고 집으로 가는 길에 / 4/4 오전 5:39 메모 / 작은 놀이 / 나른한 열기
닫는 글
<책 속으로>
목련이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지금 목련이 환하게 피어 당신이 그립습니다. 나의 아버지.
당신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해 봄 목련을 보지 못했겠지요.
어찌나 환히 피어있던지.
어느 소설에서는 그 광경을 주책스럽다 말했고,
어느 날 일기에는 요망하다고 적어둔 것처럼 목련은 볼 때마다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오래 들여다보게 됩니다.
매해 놓치지 않고 목련이 피고 지는 장면을 마주하겠습니다.
-16p 〈목련〉
<서지 정보>
제목: 나의 수무월
저자: 오종길
쪽수: 204p
판형: 120*170mm
가격: 15,000원
발행처: 시절
발행일: 2025년 6월 27일
ISBN: 9791198853158
나의 수무월 / 오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