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모던걸 시리즈〉의 소설집 『의심의 소녀』에는 과거 문단에 의미 있는 족적을 디뎠던 여성 작가들의 다섯 작품을 실었다. 이 소설집에 담긴 소설들은 가장 최근 작품인 「가을」을 기준으로 삼아도 80년이 지난 먼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야기들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저마다의 목소리를 가지고 특유의 시선으로 시대를 읽어낸 작가들의 작품은 과거의 독자뿐 아니라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깊은 의미를 남긴다. 어쩌면 각 소설은 과거의 작가가 오늘날에 보낸 편지인지도 모른다.
낡은 도덕관념을 가진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딸, 불우한 가정사 때문에 이름을 숨기고 떠도는 소녀,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오빠마저 잃은 간호사, 죽은 아내의 친구를 만난 남편, 그리고 구시대적 관습과 오롯이 맞닥뜨려야 하는 신세대. 다섯 저자가 시대를 읽음으로써 적어낸 인물들은 어떤 의미를 전달할까.
『의심의 소녀』는 그 편지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더 선명히 전달되기를 바라 소설 원문의 일부를 현대적으로 수정했다. 편지를 펼칠 독자들은 이 글을 통해 반갑고도 낯선 연대의 선물을 발견할 것이다.
<작가정보>
강경애
1906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동맹 휴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이후 1923년 동덕여학교 4학년에 편입하여 1년간 공부하였다. 1931년 단편 소설 「파금」으로 문단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에 장편 소설 『어머니와 딸』도 발표하였다. 이외에도 『인간 문제』, 「지하촌」, 「원고료 이백 원」, 「소금」, 「어둠」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김명순
1896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서울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청춘》의 현상소설에 응모한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칠면조」, 「단실이와 주영이」, 「돌아다 볼 때」, 「동경」, 「옛날의 노래여」 등이 있다.
나혜석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18년 도쿄시립여자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였다. 1914년 『학지광』이라는 잡지에 「이상적 부인」을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표 작품으로는 「회색한 손녀에게」, 「모된 감상기」, 「원한」, 「이혼고백장」, 「현숙」, 「신생활에 들면서」등과 연재 시 「인형의 집」등이 있다.
백신애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과 여학교 강의록으로 공부하였고,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였다.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원에 이어 자인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여성 동우회, 여성 청년 동맹 등에 가입한 것이 탄로 나 해임 당했다. 1929년 조선일보 「나의 어머니」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4년 「꺼래이」를 발표하면서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정현수」, 「정조원」, 「적빈」, 「광인수기」, 「소독부」, 「홍명」등을 썼다.
지하련
본명은 이현욱. 1912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1940년 문학평론가 백철의 추천으로 문장에 결별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해 1936년 카프 출신 문학이론과 임화와 결혼 후 1947년 함께 월북하기 전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결별」, 「가을」, 「산길」, 「광나루」 등이 있다.
<목차>
편집자의 말 4
추천사 6
백신애 나의 어머니 10
강경애 어둠 28
지하련 가을 60
김명순 의심의 소녀 92
나혜석 경희 108
용어해설 163
<추천사>
〈모던걸〉의 저자들은 오늘의 우리가 이 글을 읽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글은 필연 미래를 향해 쓰이고, 모든 독자는 과거의 작가와 만나기 때문에. 그렇기에 우리의 독서는 먼 어제의 모던걸에게 보내는 응답이기도 하다.
근대 문학의 가장 먼 어제로부터 당도해 온 이 글들은 경이롭게도 우리의 오늘을 반영해 내고, 이 글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이런’ 오늘이 만료되고 더 나은 내일이 오기를 바라는 한패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선언이 가능해진다.
〈모던걸〉을 읽음으로써, 우리 또한 모던걸이 된다.
<책 속으로>
P.15 그러나 이제는 으레 해야 할 말도 하기가 죄송스럽고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불평하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몸이 아플 때도 어디 아프다는 말조차 하기 미안해졌다.
병원! 약값! 모두 돈 때문이었다.
- 백신애, 「나의 어머니」 중에서
P.51 바람에 문풍지만 울려도 어머닌가, 옆집에서 무슨 소리만 나도 오누이는 달려나가 어머니, 하고 문을 열면 밖에는 눈만 내렸다. 그녀가 악을 쓰고 어머니를 부르면 오빠는 그녀를 업고 방안을 빙빙 돌면서 훌쩍훌쩍 울던 그날…….
- 강경애, 「어둠」 중에서
P.70 그럴 때면 일종의 퇴폐적인 애착이 생기기도 했지만, 석재는 어쩐지 그러한 감정의 한 꺼풀 밑에 짙은 원색과도 같은, 꽤 섬뜩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석재가 우정 저편의 존재를 무시한 순간이 정예에게서 그러한 것을 본 때였다.
- 지하련, 「가을」 중에서
P.103 사랑을 원해도 얻지 못하고, 자유를 원해도 얻지 못하며, 헤어지자고 해도 듣지 않고, 의심받고 학대당하고……. 집에 갇혀 삶을 비관하던 부인은 결국 병든 몸을 일으켜 평양 별장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길바닥에서 지나치는 무수한 발걸음에 밟히는 이름 없는 작은 풀까지 꽃 피는 사월의 어느 날, 스물네 살의 젊은 부인은 그렇게 단도로 제 몸을 찔렀다.
- 김명순, 「의심의 소녀」 중에서
P.157~158 그렇다. 먹고 죽는 게 전부라면 그건 동물이나 다름이 없다. 더군다나 자기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조상의 재물을 받아 가지고 스스로 뭔가 해보는 건 고사하고, 받은 것도 쓸 줄 몰라 술이나 기생에게 쓸데없이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배 두드리다가 죽는 부자들의 가정에는 별별 비참한 일이 많았다. 거의 짐승과 구별할 수도 없는 일이 많았다. 그런 자는 사람의 가죽을 잠깐 빌려 쓴 것이지, 절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저 댑싸리 그늘 밑에 드러누우려 해도 개가 비웃고 그 자리가 아깝다고 할 것이다.
- 나혜석, 「경희」 중에서
<출판사 서평>
현대어로 쉽게 풀어 쓴 근대 여성 문학 〈모던걸 시리즈〉
100년 전, 고단한 현실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목소리를 글에 담은 여성 작가들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 문단은 여성 작가의 글을 정식 문학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안에서 여성의 문학은, 아니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신음하며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부르짖었죠. 하지만 공고한 남성 중심 문단에서 그 목소리는 비주류가 되었습니다.
100년이 훌쩍 흐른 지금, 그 시절 여성 문학은 여전히 우리의 심연에 잠들어 있습니다. 〈모던걸 시리즈〉를 출간하기 위해 많은 근대 여성 작가의 글을 찾아냈고, 면밀히 살폈습니다. 작품을 선정하면서 현재 출판계의 강력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문학의 본류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모던걸 시리즈〉에 실린 모든 작품은 편집자가 직접 현대어로 번역했습니다. 원문의 뜻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현대의 독자들이 읽는 데 거리감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과감하면서도 새로운 번역을 시도했습니다. 원문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기를 원하는 고전주의적 독자들에게는 이번 시리즈가 과감함을 넘어 함량 미달의 어떤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고귀한 소수의 문학이기보다 어떤 언어로 담기든 다수의 문학이 이 시대 독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믿습니다. 현대의 시선으로 큐레이션하고 현대의 언어로 담아낸 작품들은 분명히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작지만 긴 여운을 선사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모던’한 시대를 살고 있고 ‘지금 여기’의 여성 모두가 모던걸입니다. ‘모던걸’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키워드입니다. ‘모던걸’이라 불렸던 근대 여성들은 유교적 억압에서의 해방과 표현의 자유,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고,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은 그 흔적입니다. 여성들의 억압에 대한 투쟁의 역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들이 거창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첫사랑, 애정하는 것, 다정한 시골 풍경, 보고 싶은 엄마 등 정겹고 익숙한 소재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제조차 여성의 펜 끝으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시대에 탄생한 작품들이기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때의 감정들이 현재와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먼 시간을 뛰어넘어 강한 유대감을 느낍니다. 이 시리즈가 여전히 모던을 꿈꾸는 독자에게 기분 좋은 배부름이 되기를 원합니다.
<서지 정보>
쪽수: 168p
판형: 122*183mm
가격: 12,000원
발행일: 2021년 6월 30일
발행처: 텍스트칼로리
ISBN: 9791188969319
모던걸:의심의 소녀(모던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