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출근하는 친구가 내려둔 커피를 마치고,
두꺼운 패딩을 챙겨 나왔습니다.
퇴근한 친구가 옆에 섰습니다.
뭐를 보고 있냐 묻길래,
뜬 눈으로 눈을 감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공을 하나 그려. 그리곤 땅에 박힌 모난 돌 위에 판자를 올려.
그 위에 공을 굴리는 거야.’
네 친구가 되고 싶기도, 그 친구가 되고 싶기도 해요.
꿍쳐둔 호흡을 네게 불어요,
아직 남은 제 몫의 호흡으로 오늘은 버틸 수 있겠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 후 현재 헤이그를 기반으로 작업과 전시를 해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연극을 전공했던 탓일까요, 작업의 전후 과정에서 역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요.
개념에 초점을 두고 시각 미술을 하면서 과정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을
다양한 친구들과 나눌 수 없는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습니다.
책의 절반은 유럽으로 데려가 독립 서점을 비롯, 여러 독립 출판 페어에 소개할 예정이에요.
국문과 영문 병기로 제작한 연유입니다.
창작자로서 일상과 작업의 경계를 나누거나, 이를 카테고라이징하고 싶지 않아요.
3년 후, 시간을 입은 책들을 다시 모아 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풀거나 모서리가 닳은, 얼룩덜룩 때가 탄 종이들은 그사이 책의 주인이 남겨둔 발자국일까요,
발신인만 존재하는 편지일까요. 어쩌면 우리를 담을 거울이기도 할 테지요.
<작가소개>
진킴박
진킴박(she/her)은 92년, 전주에서 태어나 헤이그와 서울을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25년 1월 기준) 이야기를 기록하고, 생각 더미를 물리적인 실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요.
만둣국 후 커피를 마시며, 차마 대답하지 못했던 2025년 가까운 목표는 현실감각 한 스푼 소화하기입니다.
거창하지요?
<기획의도>
흔들리는 모든 순간을 마주한 진심 어린 고찰과 이에 대한 경의이자,
흔들리지 않았다면 남길 수 없을 아름다운 흔적들에 관한 기록.
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의 노력인 동시에 그럼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흔들리는 존재에 대한 예찬론.
가장 따뜻한 위로와 강력한 연대는 공유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꺼내어 놓는 일기장이다.
이 일기장이 우리의 매니페스토가 되어주길 소망하면서.
<책 속으로>
p.22
시간은 창발한다. 그러므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p.43
‘오른눈으로 한 번, 왼눈으로 한 번, 두 번의 일출을 맞이한 날이었다.’... 촘촘히 얽혀있던 왼눈의 레이어와 오른눈의 레이어는 그렇게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전보다 조금 더 어지러움을 느끼긴 했지만, 두 레이어의 간극은 단순한 시야의 불편함이 아니었다. (<한 꼬집의 시간을 우려내어, 온몸에 흐르도록> 중에서)
p.54
오지 않은 시점은 우리를 유인하여 어딘가로 잡아당기는 것 같지만, 그 곳은 내내 시야의 평행선 위에 있다....처음부터 이곳에 있었으니 우리는 더 작아지거나 커질 일도 없다.
p.65
대상이 되지 못한 주체는 거울상을 마주하고서도 왜곡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p.101
위협을 느낀 복어는 몸을 부풀려 유선형의 몸통을 팽팽한 구로 변형시킨다.... 늘어난 피부로 인해 흉터는 옅어지고, 옅어진 흉터는 약한 껍질이 된다.
p.117
저속의 팽이가 자주 휘청거리는 모습에서, 나는 넘어질 대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그 범위를 확장하는 시도를 읽는다.
p.134
시간이 까마득한 날에는 손톱을 세워 몸 구석구석을 훑는다. 지난 상처가 남긴 딱지가 어디쯤에서 걸리길 기다리면서.
<서지 정보>
제목: 갱생하는 생각들은 부유하는 이물질에 섞여
저자: 진킴박 Gin kimpark
쪽수: 172p
판형: 130*240mm, 마쉬맬로우지 60g, 링 제본
발행일: 2025년 2월 5일
가격: 23,000원
언어: 국-영문 병기
*제품을 구성하는 링은 녹색입니다.
갱생하는 생각들은 부유하는 이물질에 섞여 / 진킴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