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우리는 자연스럽지 못하니 푹신한 소파가 있는 곳이든 큰 가짜 시계가 걸려 있는 곳이든 마찬가지로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한옥 카페에 가서 즐거운 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뭔가?
보잘것없는 우리는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살 만해지는 재미도 많이 보았지만 왜 아름다운 것은 외국이고 한국에 관해서는 냄새날 뿐일까? 우리 것을 좋아하는 촌스러운 사람들을 비웃고, 외국 분위기를 따라하면서 만족해하는 세련된 사람들을 욕하면서 우리는 시들어간다.
그리스 신화보다는 홍길동전을 아는 이 몸은 이미 무언가의 뿌리와 관련이 있다. 초라하고 축축한 뿌리에서 양분을 댈까, 확 뽑아버릴까, 이렇게 전통을 생각하면 마치 처분할 집 한 채가 생긴 듯이 든든하기도 했다. 소유물의 가치를 점검하듯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우리는 사실 본받고도 싶었다.
≪비문≫ 3호의 기획은 ‘뿌리’다. 신새벽은 <문체 수집>에서 그동안 모은 갖가지 구절들을 늘어놓는다. 오늘날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투, 조, 결, 문체에 계보가 있다는 주장이다. 기획 멤버로 합류한 심효섭은<근본없음>에서 화제 속에 종영된<응답하라>시리즈를 들여다본다. 드라마에서 남편 찾기를 빌미로 거슬러 올라간 과거의 공간에 근본이 있는지 논하는 것이다. 정반석은 가히 1호부터 이어지는 고향 3부작의 마무리라 할 <고향이 있나요>를 썼다. 서울 출신이 아니고서야 쓸 수 있는 고향 이야기 그리고 고향 다음의 이야기이다.
이번 호에는 보석 같은 세계문학 두 편이 실려 있다. 루쉰의 유명한 단편<고향>은 이육사의 번역으로 더욱 귀중하며, 독일의 문호 알프레드 되블린의 아름답고 무서운 단편 <무용수와 몸>은 국내 초역이다. 두 소설 뒤에는 각각을 편집하고 옮긴 신새벽과 신동화의 해설을 붙여 같이 읽기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신새벽의 산문<나와 생리주기>는<무용수와 몸>의 반향 속에 있다.
인기리에 연재 중인 백소진의 ‘외국인 노동자의 기고’ 3회는 아시아, 한국에 이어 독일이란 무엇인지 묻기에 이르렀다. 독일 거주 4년째인 외국인 노동자로서 그가 내린 결론은 충격을 선사한다. 더하여 교외에 거주하는 룸펜 임성준은 시론 <팬더와 한국인의 마음>에서 한국에 온 팬더와 한국인을 나란히 놓고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를 진단한다. 끝으로 독자란에서는 2호의 늘어난 분량만큼 길어진 이야기들로 ≪비문≫의 지난 행보를 돌아본다. 공감에도 비공감에도 감사드린다.
겨울 다 지나고 봄에 선보이는 ≪비문≫ 3호는 여전히 시, 소설, 드라마…… 문화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기대고 말지만, 거리를 두고 말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기대로 다시 시작한다.
비문 3호,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