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 오중빈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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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어린 시절부터 제3세계를 두루 여행하며

나눔이 필요한 현장을 온몸으로 경험한 소년의 질문

“써도 사라지지 않는 선물은 무엇일까?”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의 저자이자 여행작가 오소희의 에세이에서 ‘JB’로 불리는 여행의 동반자 오중빈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됐다. 전작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이 열 살 되던 해 엄마와 함께 남미 구석구석을 90일간 여행하며 기록한 그림일기를 엮은 책이었다면, 『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은 지난 17년간 꾸준히 이어진 ‘나눔의 여행’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진화하고 성숙해갔는지를 열일곱 살 청소년의 언어로 솔직하고 꾸밈없이 기록한 일종의 성장 에세이이다.

 

저자는 만 세 살 무렵 엄마와 함께 터키로 떠난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미얀마, 라오스, 시리아, 우간다 등 제3세계 현지인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사람 여행’을 하며 어른 못지않은 단단한 여행 내공을 쌓았다. 이 여행의 기본 원칙은 ‘되도록 많은 현지인을 만나는 것’. 이것은 가장 저렴한 여행 방식과도 일치했기에, 두 모자(母子)는 가장 저렴한 숙소에 묵고, 가장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먹고,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을 타며 여정을 이어갔다. 유명 관광지보다는 마을이나 작은 도시를 배회하며, 함께 어울릴 현지 친구들을 찾아 열나게 뛰어놀고, 다시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 이들의 여행은 시리아의 한 마을에 이르러 커다란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다. 그곳에서 만난 한 현지인 남자가 자신에게 오직 한 장뿐인 아주 소중한 사진(외아들의 돌 사진)을 이 모자에게 선물로 건네려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말과 함께. “당신은 내 친구니까요. 나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친구에게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날의 깨달음은 이내 아름다운 나눔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성찰과 이들이 꾸린 여행 가방이 온전히 자신들을 위한 것들로만 채워진 ‘이기적인 가방’이었다는 반성으로 이어진다. 이윽고 두 모자는 다음 행선지인 미얀마를 가기 전, 풍선과 학용품으로 여행 가방을 가득 채우지만, 준비한 선물이 다 사라지고 나면 다시금 그 한정적인 나눔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경험한다. 선물 때문에 우는 아이가 생겼던 밤, 두 모자는 ‘써서 없어지는 물건 말고, 오래오래 남는 선물’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생각 끝에 이들의 여행에 새롭게 등장한 두 가지 ‘도구’가 있었으니, 하나는 현지 아이들과 온몸으로 뛰어놀 수 있게 해줄 ‘축구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자가 여섯 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악기, ‘바이올린’이었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오래오래 남는 선물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으로 “음악!”을 선언했기에 축구공을 든 반대편 손에 저자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였던 바이올린을 들게 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후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서든 야자수 아래에서든 저자는 어디에서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건네주었다. 때로는 아이들이 있는 기관을 방문하여 바이올린 연주는 물론이고 그곳의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이라는 낯선 악기를 연주해보고 탐색해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꼬마 선생님’의 역할을 하며 자신의 배움을 나누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열일곱 살의 소년은 지금까지 전 세계 30여 개국을 여행했다. 여행의 목적지들을 대체로 세계 최빈국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작은 나눔은 현지에서 언제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페르마타 하티’와의 운명적인 만남과 계속된 교류,

‘나눔’이란 가치는 ‘지속성’이란 토양 아래에서

감동적인 성장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오대양 육대주를 아우르며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향하던 이들의 여정은 2013년, 저자가 열세 살이 되던 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게 된 그해, 어찌된 영문이었는지 저자는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프기 시작한다. 잠시 컨디션이 회복되면 숙소가 있던 발리 우붓의 작은 마을 뉴쿠닝을 쉬엄쉬엄 구석구석 탐색하는 것이 여행의 전부였다. 느리게 반복되던 마을 산책은 저자의 ‘나눔 여행’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간판이었지만, 발리에 도착한 지 2주가 지난 어느 날의 산책에서도 여전히 그대로인 건물(과 간판)에 호기심을 느끼고 한번 들어가기로 하면서, ‘페르마타 하티(Permati Hati)’와 저자의 첫 만남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이루어진다.

 

페르마타 하티는 데이 케어(day care) 센터로 양친이 모두 없는 아이나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방과 후부터 저녁까지 머물며 돌봄을 받는 기관이다. 이곳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아유’라는 이름의 중년 여성.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모든 일에 가능성을 열고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임하는 인물이었기에 낯선 이방인었던 두 모자를 기쁘게 맞이하며 고아원 안으로 이끈다. 그 따뜻한 환대에 저자는 여느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그곳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음악 선물을 건네고 음계를 가르쳐주는 등 배움을 나누는 일을 이어갔다. 페르마타 하티의 아이들은 낯선 이방인이 나누어주는 작은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부터다. 인도네시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곳을 잊을 수 없었던 저자는 그해 겨울방학, 다시 페르마타 하티를 방문한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갔던 곳으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배우고 성장하려는 의지가 가득한 아이들과 지식 나눔을 이어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맞이할 때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의 방문이 계속 이어졌고, 그때마다 저자는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나눌 새로운 악기, 새로운 노래, 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들을 준비해갔다. 새로운 배움의 내용들은 가르치는 입장의 편의를 생각한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저자는 발리의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힌두 신들이 등장하는 연극 대본을 직접 써서 준비해간다거나, 발리의 전통 악기와 민속 동요가 아이들의 공연 레퍼토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새로운 배움들이 더해질 때마다 페르마타 하티 아이들의 음악 실력도 놀라우리만치 일취월장했다. 그에 따라 고아원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전자음악 밴드, 합창단, 리코더 연주단, 타악기 연주단, 앙클룽(발리의 전통악기) 연주단, 남녀 댄스팀 등 아이들 저마다가 자신의 역량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소규모 음악 동아리들이 여럿 만들어졌다. 아이들의 실력은 매년 발전하여 페르마타 하티의 전자음악 밴드(암바르 밴드)는 발리의 밴드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했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자선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1년에 한 번씩 의례적인 공연을 하던 페르마타 하티의 아이들은, 이제 그 공연 실력을 널리 인정받아 크리스마스와 신년 무렵이 되면 고아원 인근의 여러 호텔들로부터 정식 공연을 해달라는 러브콜을 잇달아 받게 되었다. 가능성이란 영역을 무한히 확장해오며 발전해나간 페르마타 하티 고아원 아이들의 성장담은 3년여 동안의 지속적인 배움 나눔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학생인 나를 통해서도 큰 발전을 이룬 아이들이라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고아원 아이들이 ‘탤런트 쇼’라는 이름의 대형 공연도 멋지게 성공해내자, 저자는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그곳의 아이들에게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같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한 판단은 또 다른 새로운 질문을 이끌어냈다. 고작 중학교 3학년 학생일 뿐이었던 자신을 통해서도 놀라운 발전을 이룩해낸 아이들이라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궁리한 끝에, 저자가 기획해낸 것은 ‘여행 중에도 봉사를 할 수 있는(Volunteering while Traveling)’ 것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발런트래블링’이라는 봉사 프로그램이었다.

 

발런트래블링은 짧은 휴가 중에 봉사활동만 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하기에는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있는 이들을 페르마타 하티라는, 여러 사람들의 재능 기부가 필요한 공간과 연결해주는 봉사 프로그램이었다.발런트래블링에 대한 기획안이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올라가자, 놀랍게도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이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마다 저자는 발런트래블링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메일로 소통하며 약 세 달 동안 첫 번째 발런트래블링을 준비한다. 그렇게 해서 2016년 12월, 총 50여 명의 봉사자들이 함께 하는 1차 발런트래블링의 막이 오른다. 후원금이나 물품 지원 등 간접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원까지 헤아리면 1차 발런트래블러의 수는 100여 명에 육박했다. 봉사자들의 수만큼이나 준비된 봉사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한국어 수업, 중국어 수업, 악기 연주 수업, 미술 수업, 그림책 만들기 수업 등 다양한 종류의 배움 나눔이 이어졌다.

 

배움 나눔이 어려운 분들은 고아원 아이들을 위한 식재료를 기부해주시거나, 아이들이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데이 트립(day trip)의 비용을 후원해주시는 방식의 기부를 해주시기도 했다. 봉사자 자신의 여행 일정과 능력에 따라 봉사의 내용을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는 맞춤형 봉사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발런트래블링이 가진 장점이다. 나이의 제한 없이 어린아이들도 참여하여 자신의 배움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역시 발런트래블링만의 장점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페르마타 하티를 방문한 봉사자들의 자녀들은 예정된 발런트래블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호텔이나 리조트에 머무르기보다 다시금 페르마타 하티를 찾아와 그곳의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다.

 

1차 발런트래블링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저자는 고등학생이 된다. 학업적인 부담은 한층 더 커졌지만, 지속성을 가지고 이어온 나눔은 멈추지 않았다. 1차 발런트래블링의 성공을 기반으로 2017년 여름, 2차 발런트래블링이 다시 한 번 추진된 것이다. 2차 발런트래블링에서도 인상적인 재능 기부들이 이어졌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장면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페르마타 하티의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제작하여 아이들 모두에게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사해준 일이다. 선의로 똘똘 뭉친 이들의 작은 손길이 모여 삽시간에 적지 않은 금액의 후원금이 모였고, 그 후원금으로 제작된 아이들의 그림책 여분과 엽서를 판매해 얻은 수익은 다시금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위한 수업료로 사용되었다. 선의와 나눔이 불러일으킨 아름다운 선순환이었다.

 

이 책은 ‘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이라는 제목처럼, 한 소년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눠온 열일곱 해의 기록을 촘촘하게 정리해낸 성장담인 동시에 나눔이라는 행위가 지속성을 가졌을 때에 어떠한 기적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감동적인 휴먼다큐멘터리와도 같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봉사가 큰돈이나 엄청난 신념, 대단한 연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의 많고 적음, 금전적인 능력, 재능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저 내가 가진 소중한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작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꾸준히 이어나갈 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 모두가 행복하게 함께 성장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적 분위기에 피로와 고립감을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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