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인간이 고래가 되는 상상
『그건, 고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상어가 사람이라면」에서 생겨난 이야기다. 사람이 된 상어가 설계한 세계, 문화가 성립하는 고도로 발달된 세계의 반대편에 김미래가 지은 『그건, 고래』의 세계가 있다. 세계라고 하기에는 질서가 느껴지지 않는, 위도 아래도, 앞도 뒤도 없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고래가 되어 헤엄치고, 어린이가 묻는 대신에 어른이 어린이의 답변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를 유영하는 존재에게 바치는 그림
『그건, 고래』가 글로써 고래 된 인간의 새로운 천성을 다룬다면, 이 작품을 관통하는 그림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푸르뎅뎅하게까지 보이는 잿빛 도시의 아침에서부터 사위가 어두워지고 새로운 해가 암시되는 근교의 새벽까지를 붓은 부지런히 움직여 내보인다. 하루의 안에서 도시에서 자연으로, 작은 강줄기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그림은 『그건, 고래』의 텍스트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한 ‘인간’을 주제로 삼은 그린이 선택의 결과다. 작은 순간의 아름다움을 흘려보내지 않는 삶, 자신의 근원을 간직하는 삶을 꿈꾼 그린이 소망의 결과다. ‘바다’는 생명의 시작점이자 고래가 사는 곳이므로, 도시에서 바다로 나아간다. 장면장면은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공상 속 장소나 한때 있었으나 사라진 추억 속 장소 대신에 지금의 서울을 담는다.
『그건, 고래』는 낱장의 페이지가 엮여 단단한 책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래 기억되는 순간들이 쌓여 한 삶을 단단하게 일군다는 것, 우리는 언제나 되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환기한다.
<작가정보>
김미래
문학 편집자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경력을 끝마칠지는 모르겠습니다.
편집자는 일정한 방침 아래 여러 재료를 그러모아 책을 엮는 사람입니다.
방침을 만들고 따르는 삶에 긍지를 지니는 한편, 방침을 뚫고 나오는 존재의 날카로움에 경이를 느낍니다.
이 책은 그러한 경이에 맺힌 열매입니다.
다안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의 빛을 사랑하며, 돌을 줍고 관찰하는 취미가 있습니다.
그림책 『이디엇』, 『홀리데이』를 지었고, 『저스트 키딩』을 그렸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책, 회화 부문에서 경계 없이 활동합니다.
<책 속으로>
“우리가 고래가 되면 삶은 나아질까?” 어른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훨씬요.”라고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고래가 된 우리들 앞에는 반듯한 육지 대신 눈부시게 엉킨 수중세상이 펼쳐지겠죠. …더는 정돈한다는 핑계로 다른 존재를 못살게 굴 수는 없을 거예요.” - 5-6쪽
쓸모없는 뒷다리는 녹아 사라지고, 지느러미가 된 앞다리로 물살을 가르는 장면을 상상해봐요. 어떤 기분일까요. 커다란 저항이라고 여기던 것을 부스러기만치도 안 느끼며, 턱, 턱, 해치고 가른다니 말예요. - 13쪽
빛과 언어가 미치지 않는 곳은… 숨 막히도록 고요할까요, 아님 그 반대일까요? - 19쪽
먹이사슬 맨 꼭대기에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다른 생물에게 과시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을 수 있다면… …꼭대기 중의 꼭대기, 그중에서도 맨 꼭대기를 두고 이미 꼭대기에 있는 이들끼리 힘겨루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요? - 24-25쪽
배꼽과 젖은 그대로. 귀와 이빨은 감추고서. 드디어 우리는 수면과 나란히 나아갑니다. - 32-35쪽
그건, 고래 / 김미래 (쪽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