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그리움을 기워 만든 얼굴 『그리고 당신의 애인』
태주의 언어는 차분하고 결이 곱다.
언뜻 수줍어하는 볼우물 같기도 하고, 곁에서 귓가에 조근조근 속삭이는 애인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슬픔으로 물든 눈가가 보이기도 하고,
조그맣고 잔잔한 미소가 걸린 입매를 마주한 것 같기도 하다.
이백 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태주가 자신만의 언어로
잘 다듬어 표현해 낸 각기 다른 감정들이 하나의 그리운 얼굴을 이루며 책장 위로 아른거리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태주는 『그리고 당신의 애인』 작가의 말 페이지에서 자신의 책을
“천오백 개가 넘는 독백들 중에서 비명이 아닌 것과 남들 앞에 내놓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들만
골라냈더니 칠백여 개, / 그것을 이백 페이지 남짓에 공평하게 나누어준다고 치면
페이지 당 차지하는 문장의 개수가 서너 개. / 따지자면 하나의 페이지는
삼십오 퍼센트의 헛소리와 육십오 퍼센트의 권모술수로만 이루어지는군요.”라고 설명하고 있다.
글이든 말이든 상대에 대한 마음을 삼십오 퍼센트만 드러내 보이고 육십오 퍼센트의 마음은
아무 것도 없는 공백인 것처럼 숨겨본 사람들은 태주 작가가 “헛소리와 권모술수를 다듬은 페이지”들에서
그의 비명과 부끄럽고 때로 수줍었던 날들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애인』은 총 3부로 나뉘어 있으며,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과 애틋한 감정들을느낄 수 있는 1부
‘내가 당신보다 일찍 먼 길을 떠나도’, 이별을 겪은 후 지난 사랑을 돌이켜 볼 때의 서글픔이 담긴 2부
‘새벽과 아침의 가운데서’, 삶 속에서 사랑과 사람을 겪으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엮어낸 3부
‘언뜻 나를 떠올려 주기를’이라는 개별의 소제목들은 각 장의 테마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한 개의 문장으로도 결합한다.
우리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어쩌면 가장 사소하고 소박하지만
늘 더 없는 꾸준함을 요하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리뷰>
단지 너의 ‘너’이고 싶었던 나의 노래, ‘그리고 당신의 애인’
살아가면서 길고 짧은 시간 우리 곁에 머무르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과는 종종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늘 예정이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서도 사랑에 빠지는 일만큼이나 내 의지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 또 있을까.
어쩔 수 없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과 나 사이에 말이에요
당신이 그렇게 매정하게 굴어도 나는 당신 근처를 알짱댈 수밖에 없잖아요
_25p 中
『그리고 당신의 애인』은 이러한 사랑의 불가항력을 순순히 인정하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불가항력이란 말 그대로 불가항력이다.
“마음씨 예쁘고 영리한 사람이 어느 날 불쑥 말도 없이 내 삶에 끼어”<166p>들기를 바라도
“누군가 생각나는 자리에 내가 홀로 눈물겹지 않도록 / 그 누구도 너무 사랑하게 되지 않도록”<174p>
조심을 해보아도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사랑에 빠져 난생 처음 느껴보는 생경하고 강렬한 감정에 정신 못 차리고 허덕이는 것도,
꼭 그만큼 아프고 슬퍼서 흉곽이 부서져라 토해지는 울음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도,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순간마다 깨달은 사람들은 아마도
체념에 가까운 인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삼키”<123p>게 되는 이 황홀하고 잔인한 사랑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당신에 대한 진솔한 마음을 껴안고 영원할 것만 같은 날들을
하염없이 흘려보내는 일뿐이라는 것을.
그러느라 하얗게 지새운 밤과 새벽마다 쓸쓸한 방 안에는 온갖 말들이 빼곡히 들이찼다.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으나 타이밍을 놓쳐 묻어만 두었던 말,
언젠가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영영 전할 기회를 잃은 말,
부끄럽고 구차해서 차마 꺼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 숱한 말들이.
“충분히 울었으니 이제 다시 웅크리고 앉아서 풀린 나사를 하나씩”<172p> 조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신의 애인 역시, 어쩌면 당신과 꼭 같은 말들로 당신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근조근 속삭이는 것들은 그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못해서”<174p>
“잘라 나눈 과일의 한쪽같이 한 몸이던 시절은 상상도 할 수 없어서“<69p>
내가 그에게, 혹은 그가 나에게 언어로는 건네지 못했던 말들을 엮어 밤사이 가득 채운 방.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방의 풍경을 조금쯤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너무 슬프거나 지쳐있지는 않은지 늘 경계해야 해
한숨 자고 나면 전부 괜찮아져 있다느니 하는 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니까
_212p 中
“비가 내릴 걸 알아도 미리 우산을 챙기지 않는 사람을 사랑”<91p>하고 싶은 이 기구한 마음을 키운
‘외로움’은 어쩌면 태주가 이 책에서 노래하는 사랑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사람의 마음도 책처럼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아마 불가능에 가까울 테다.
책을 읽듯 애인을 읽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우리의, 그리고 당신의 애인을 이 책 속에서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
천오백 개가 넘는 독백들 중에서 비명이 아닌 것과 남들 앞에 내놓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들만 골라냈더니 칠백여 개, 그것을 이백 페이지 남짓에 공평하게 나누어준다고 치면
페이지 당 차지하는 문장의 개수가 서너 개.
따지자면 하나의 페이지는 삼십오 퍼센트의 헛소리와 육십오 퍼센트의 권모술수로만 이루어지는군요.
저는 할 수 있는 말보다 하지 못한 말이 더 많아서 밤늦게 이런 문장들이나 짜깁고 앉아 있지만,
나와 당신들, 그리고 우리를 거치고 있거나 거쳐 지나갔을 수많은 서로의 사랑들이
매일 밤 미지근하고 좋은 꿈을 꿀 수 있도록 바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좋은 밤 되시라는 말이에요.
제가 당신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식이 당신의 마음에 들었기를 바랍니다.
2018.11 태주
<목차>
1부─ 007
내가 당신보다 일찍 먼 길을 떠나도
2부─ 079
새벽과 아침의 가운데서
3부─ 151
언뜻 나를 떠올려 주기를
끝말─ 214
저자
<책 속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저지르는 일은 쉽다.
뒷감당은 둘이서 하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9p」
내가 너를 만질 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사실 애틋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좁은 품에 어떻게든 너를 가두고 싶었던 건, 꼴에 배려랍시고 눈과 귀를 슬며시 가려주고 싶었던 건,
사실과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떠나서 내가 하는 말만 믿게 만들고 싶었던 건,
여린 네가 의지할 구석이 나 하나뿐이었으면 했던 건, 그래서 네가 더 고립되길 바랐던 건, 그래.
애틋하다고 하면 벌 받지.
내가 그리는 미래에는 언제나 네가 없었다.
네가 먼저 떠날 것 같기도, 내가 먼저 떠나보낼 것 같기도 했다.
—「_31p」
우리가 바라보는 새로운 목적지는
차려주지 않아도 꺼내먹을 수 있는 사이
함부로 손을 넣어 헤집는 짓거리도
눈을 반쯤 감으면 용서되는 사이
스스로를 굶어 죽지 않게 돌보기로 한 만큼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사이
—「_36p」
작년 이맘때는 너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지.
그게 잘 안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건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도 못했던 서로의 손바닥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나는 그게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편지를 쓰고 싶었어.
고심해서 사 들고 온 편지지를 세 장인가 다섯 장 찢어버리고 나서야
내 진심을 최대한 둥글려서 적을 수 있었고
너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여전히 서툰 데가 많았던 편지를 읽었겠지.
나는 이제 그 편지의 내용을 기억할 수도 재현할 수도 없지만,
아직도 네가 그 편지지를 간직하고 있어줬으면 좋겠어.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의지했을 때처럼,
여전히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것들만 받아서 돌아오는 내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너의 답장을 종종 꺼내 읽어보듯이.
—「_45p」
너의 삶은 한없이 기구한 것이었다.
서러웠고 외로웠으며 지독했고 악착같았다.
어떻게 생겨먹은 인생인지 사랑도 그랬다.
—「_94p」
초등학교 시절에 담임 선생님이 일기가 쓰기 싫으면 시를 써오라고 했어
어쩌면 그게 내 불행의 시초였는지도 몰라
글도 아니고 시도 아닌 것들을 적어내도 손바닥을 맞지 않았던 것,
정성스러운 무성의에 익숙해졌던 것, 글자를 많이 적는 게 싫어서
줄이고 줄이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함축을 만들어냈던 것
너무 많은 단문을 용서받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글을 오래 붙잡고
쓸 엄두가 안 나
—「_190p」
있지, 내가 혹시 시커먼 입을 벌린 바다였을까 봐 무서워
—「_200p」
그리고 당신의 애인 / 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