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 - 도시의 숨결을 찾다 /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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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골목길 풍경과 닮았다. 

현대사회라는 추운 겨울을 어렵게 나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정미 넘치는 봄 햇볕을 쬐어준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_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의 발견과 공유

 

월간토마토는 2007년부터 ‘공간, 사람 그리고 기록…’이라는 테마로 문화예술 잡지 《월간 토마토》를 발간했다. 잡지를 통해 도시민과 소통하며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의 모습을 상상해왔다. 그동안 만나온 도시민의 자취를 모아 지역출판을 시작한다. 일상적 감동이 넘치는 도시마을을 만들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고, 도시민의 삶과 가치를 담은 사회적 콘텐츠로 소통하려 한다. 

이 책은 도시민들의 공간과 그들의 이야기를 월간토마토 기자들이 취재한 일상 르포르타주이다. 문화의 불모와 같은 지역에서 일상적 재미와 감동을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월간 토마토》를 창간한 이용원 대표. 그의 공간과 사람을 보는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글과 사진이 ‘도시살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또한 젊은 기자들의 생동감 넘치는 글과 사진들은 시간의 흔적들을 새로운 의미로 바라보게 만든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말대로 이용원 대표를 비롯한 월간토마토의 기자들은 이 책 속 주인공들과 어느새 닮아 있고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공간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 있다.

수직적,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도시민은 익명성에 매몰되며 소비의 주체로만 취급당한다. ‘효율과 합리’가 비교 우위에 놓인다. 《월간 토마토》가 10년 가까이 도시 구석구석을 다니며 도시민을 만나고,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사진에 담아내는 과정은 숨은 가치를 다시 호명하는 행위이다. 도시민의 삶과 공간의 이야기를 모아낸 이 책은 시대가 어려울수록, 상대적 박탈감과 경쟁의 불안에 시달리는 이 사회에서 ‘숨결’과 ‘온기’를 복원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이야기를 생성하고 이야기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전파하는 일련의 행위는 본능적이다. 당대 삶의 지혜를 후대에 전하는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식이다. ‘이야기’를 공유하며 우리가 지녀야 할 중요한 가치에 관해 합의하고 선대의 지혜를 흡수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유대와 연대를 구체적인 ‘무엇’으로 인식할 수 있다. 도시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근원에는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현재 우리 삶의 태도가 놓여 있다. 자본과 법, 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함이다. 이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라져버린 이야기를 복원해야 한다. 이야기가 품은 숨결을 공유해야 한다. (「책머리에―성긴 삶을 채워줄, 숨결 간직한 이야기」_이용원, 9쪽)

 

공간 속에 깃들어 있는 오래된 숨, 

그리고 팃검불을 걷어낸 고운 삶의 결 

 

이 책 속의 사람들은 질그릇처럼 투박하고 무명이지만 가만히 뒷자리에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알고 보면 그 묵묵함이 우리를 키워왔고 이 사회를 이루는 힘의 원천이다. 주목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 속에서 서서히 스러져가겠지만, 이들을 이곳에 다시 불러내는 순간, 그들은 이 삭막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려움을 어떻게 견디는지 가르쳐준다. 그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은 화려한 것에서 오지 않는다. 정성과 인내로 오랫동안 팃검불을 걷어내고 가꾸어온 삶의 고운 결이 진정한 생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대창이용원, 세일주조장, 성심양복점…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김삿갓 다방, 동화극장…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도시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공간들의 의미를 물었다. 중앙시장, 대흥동 공영주차장, 보링공업사, 고물상…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한 컷들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 이 모두가 삭막한 도시를 물들이는 따뜻한 숨결들이다. 

6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대창이용원의 이종완 이발사, 하루 종일 차들이 오가는 공영주차장의 작은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이희탁 씨,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신탄진 거지다리의 넝마주이의 삶, 다친 손목이 회복되기도 전에 깁스를 깨고 칼을 갈러 나가는 칼갈이 김덕호 씨, 이들은 평범하지만 그들의 삶은 제각각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들의 임시숙소로 옛 모습을 잃어가는 만화방, 단관극장으로 한때 호황을 누렸으나 현재는 성인전용극장으로 전락한 동화극장 등 사라져가지만 소중한 기억을 담은 공간들이 이 도시에서 이야기와 온기를 품고 여전히 남아 있다. 

 

■ 요약 및 발췌

 

“나무 전신주는 처마를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검은 칠은 세월에 흘러내리고 씻겼지만 온몸으로 빨아들인 먹색은 화선지 위에 엷은 먹빛처럼 은은하다. 볕이 잘 닿지 않는 둥근 전신주 한쪽 면에는 녹색 이끼가 피어올랐다.”  (「손끝은 아직 무디어지지 않았다-대창이용원 이종완 씨」_18쪽)

 

대창이용원 이종완 씨는 60년 동안 이발을 해왔다. 골목 한쪽에 자리한 대창이용원의 간판은 이가 맞지 않은 채 마감이 벌어졌고 오랜 세월 동안 한자리에 서 있어 여기저기 빈틈을 보인다. 그 빈틈이 묘한 이완감을 준다. 그 공간 안에서 이종완 씨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단골손님을 기다린다. 까만 염색약에 물든 플라스틱 물 조리개, 1960년대에 만든 흰색 타일 세면대, 면도 거품 솔, 빗과 가위 그 어느 것 하나 시간이 묻어 있지 않은 게 없다. 

 

“세일주조장의 발효실은 마당 안쪽 깊숙한 곳에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달큰하고 구수하고 아릿한 누룩향이 훅 끼친다. 발효실 안에는 가슴께까지 오는 커다란 옹기 여남은 개가 각자 맡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옛날에는 북적북적 재밌었지-세일주조장 박환서 씨」_47쪽)

 

세일주조장은 밀가루를 원료로 막걸리를 만든다. 본래 금산에 있던 양조장을 196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고 세일주조장 박환서 씨는 열아홉 살부터 지금까지 양조장 운영을 맡아왔다. 가양주 문화가 살아 있던 시절, 동네마다 양조장이 있었고 그 맛도 조금씩 달랐다. 지금도 여전히 전통 누룩을 사용해 오랫동안 발효시켜 만드는 전통 막걸리. 막걸리가 익는 시간만큼 ‘세일주조장’ 나무 현판에도 세월의 더께가 앉아 있다. 3대를 이어오는 시간이 그 속에 깃들어 있다.

 

“12남매였는데 그중 셋만 남았다. 배곯다 죽은 이도 있고, 먹고살려고 누군가 따라간 이도 있고, 아파서 죽은 이도 있고, 다양한 이유로 세상을 떠나고 곁을 떠났다. 누구의 죽음보다도 어머니의 죽음이 아직도 가슴에 멍울로 남았다. 가여운 어머니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시절이 그랬다.” (「비틀거리던 때는 지나고 매일 비슷한 시간이 흐른다-중앙키 정봉래 씨」_55쪽)

 

여든다섯, 중앙키 정봉래 씨는 열쇠 집을 한 지 60년 가까이 되었다. 허리 밑으로 마비가 와서 걷기조차 힘든데도 일을 놓지 못한다. 한 평 남짓한 컨테이너지만 이곳에서 일을 하며 자식을 키웠고 어머니 묻을 땅을 샀다. 정봉래 씨는 어려웠던 이야기 하려면 끝이 없다고 손을 내젓지만 그 작은 공간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남다르게 보인다. 도시의 심상한 풍경 속에 무심히 지나치지만 알고 보면 다들 그렇게 살아온 내력이 애틋하다.

 

“쇳가루 많이 날리는 작업장에서 하루 종일 붙어 있지만 그렇게 고되거나 어렵지는 않다. 어느새 내 몸이 쇳덩이가 된 모양이다. 워낙 험하게 살아와 그런지 인내하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 (「용접봉 불꽃에 번지는 실루엣-용접기술자 한신남 씨」_86쪽)

 

용접기술자 한신남 씨는 ‘쇠사랑’이라는 간판을 걸고 작업한 지 6년 정도 되었다. 한신남 씨의 손은 그가 다루는 단단한 쇠붙이처럼 거칠다. 그 손은 지난 시절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토바고에서 돈을 벌어 한국에 돌아와 목공장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도를 맞았다. 일본으로 들어가 무역회사에 취직해 자리 잡았다. 그런데 비자를 내어준 회사가 망하면서 불법체류자로 걸려드는 불운이 찾아온다. 그는 매번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쇳덩이가 된 모양이라고. 인내하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고. 

 

“깁스한 지 4일째 되던 날 깁스를 그냥 깨버렸어요. 대신 볼링 할 때 손목에 차는 보호대를 끼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 거죠. 그렇게 겨우 자리 잡은 거예요. (…) 어떤 일이든 미치니까 안 되는 게 없는 것 같더라고요.”(「내 직업은 칼갈이입니다-칼갈이 김덕호 씨」_98~100쪽)

 

칼갈이 김덕호 씨는 관리직만 30년 넘게 하며 회사 생활을 오래했다. 쉰하나에 회사를 그만둔 이후부터 살길이 막막했다. 온갖 일을 다 해 보다가 쉰다섯에 칼갈이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비 오던 어느 날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고 일을 하지 못할 때 가장 난감했다는 김덕호 씨는 깁스를 도중에 깨버리고 일을 나갔다. 그만큼 그에겐 간절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네온사인이 번뜩이는 한쪽, 백열전구 불빛에 의지해 차 안에서 칼을 간다. 

 

“성심양복점의 쇼케이스는 34년 동안 햇빛을 견딘 만큼 빛이 바랬다. 그러나 ‘성심양복점’이라는 파란색 다섯 글자는 갓 색을 입힌 듯 여전히 또렷하다.” (「내가 만들어도 100프로 만족은 없어-성심양복점 장무식 씨」_104쪽)

 

성심양복점 장무식 씨는 열여덟 살 때부터 양복점에서 일하며 기술을 배웠다. 1981년 성심양복점을 시작했다. 손님이 많던 시절, 혼자 제일 많이 옷을 만들 때는 한 달에 스물여덟 벌도 만든 적이 있지만 시절이 변하고 기성복이 흔해지면서 양복을 맞추는 이들이 드물어졌다. 수선을 많이 해도 자신의 본업은 맞춤복이라는 장무식 씨. 그에게서는 한 사람, 한 사람, 제각각 다른 몸의 특성에 맞추어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짓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나온다.

 

“정갈한 곡물을 펼쳐 놓은 ‘인동상회’는 무척 좁다. 가게 한쪽에는 사각형 기둥도 떡 하니 박혀 있다. 칸을 쪼개고 쪼갠 한 평 남짓한 공간이다. 그 좁은 공간에 한 사람의 인생 전부가 고스란히 담겼다. 함부로 넘나들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산중 작은 암자를 만났다-인동상회 임달순 씨」_129쪽)

 

인동상회 임달순 씨는 40년 넘게 출근한 인동상회에 오늘도 출근한다. 인동상회가 자리한 인동시장은 큰 곡물시장이었다. 일찍이 혼자가 된 할머니는 아들과 둘이 살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고, 젊은 새댁이 왜 장사를 해,라고 누군가 묻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무섭고 서러워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 여든셋이 된 임달순 씨는 제법 잘 그 시절을 이겨냈다. 어려움을 이기고 버텨낸다는 것, 거기에 덧입혀진 시간은 아플수록 결이 곱다. 팃검불을 일일이 걷어내듯 그렇게 지켜온 인생이다.

 

“점점 어둠이 짙어가는 시장 골목 안에서 받은 느낌 중 하나는 ‘결핍’이었다. 그것은 사람이라는 가장 크고 중요한 구성요소 말고 다른 것이 빠진 자리였다. 한참 공간 속에 머문 끝에 그것이 ‘냄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 꺼진 시장이 살아 있다-중앙시장」_163쪽)

 

불 꺼진 시장의 풍경은 의외로 담담하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대부분 점포가 문을 닫았다. 80세가 넘은 꽃게굴상회 주인 할머니는 뒷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고, 회색빛 고양이 한 마리가 그 뒤에 얼쩡거린다. 고양이 역시 불 꺼진 시장의 주인공 중의 하나이다. 긴장감이 가득한 몸짓이다. 순대골목은 아직 장사가 한창이다. 다양한 이름의 간판들은 제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다. 시장 골목 교차로 위의 티브이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어둠이 짙어가는 골목에는 냄새조차 흔적이 없다. 낮의 풍경이 익숙한 시장, 한밤의 풍경은 비현실적이며 색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1965년, 조그만 하천 다리 밑에 넝마주이들이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다리를 망골다리 대신 ‘거지다리’라고 불렀다. 10여 년 후, 먹고살 길을 찾아 넝마주이들이 거지다리를 떠났다.” (「넝마주이가 살던 다리-신탄진 거지다리」_182쪽)

 

덕암천이 흐르던 곳에 거지다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거지다리는 없다. 아직도 사람들은 약국이 있는 사거리를 거지다리라고 부른다. 거지다리는 없지만 이야기는 남았다. 택시 기사에게 물어 ‘김천식’이라는 제건대 우두머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천식 씨는 ‘돼지’라고 불렀던 문용남 씨와 연을 맺어 넝마주이들을 함께 관리하며 폐지사업을 했다. 신탄진 수영장에서 돗자리 깔아 주고 돈을 받은 적도 있다. 재건대 대전서부지대가 해체된 건 1980년대 중반.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넝마주이’들이 지금은 사라진 거지다리에서 그렇게 살았다. 

 

“무궁화 백화점 외관에 덕지덕지 붙은 간판을 보면, 어린 시절 장롱에 마구잡이로 붙여놓았던 스티커가 떠오른다. 스티커만 손에 쥐여주면 엄마가 허락한 공간(주로 장롱문)에 다 붙여놓곤 했다. 뗄 수도 없이 더덕더덕 붙였던 스티커와 무궁화 백화점의 간판은 많이 닮아 있었다.” (「간판 말고도 있다-무궁화 백화점」_186쪽)

 

1980년에 설립한 무궁화 백화점은 당시 대전에서 가장 큰 복합쇼핑몰이었다. 경매로 넘어간 이후 현재는 각 점포마다 주인이 다르다. 다닥다닥한 간판이 말해주듯 여러 점포가 들어서 있다. 무궁화 카바레, 노래방, 헬스장, 아리랑 우표사. 박선규 할아버지는 우표사를 20년 정도 운영했다. 엽전 모으기를 시작으로 우표, 동전, 문서 등을 모으는 것을 취미로 즐기게 되었다. 영업이 안돼서 힘들다는 노래방 아저씨, 댄스홀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낡고 허름해진 건물이지만 그 안에도 각각의 사연이 빼곡한 간판처럼 들어차 있다.

 

“번화가 변두리에 있는 오래된 만화방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낡은 카운터 한쪽에는 손때 묻은 시간표 뭉치가 있었다.” (「다방 커피 한잔 잡술래요?-만화방」_208쪽)

 

어릴 적 아이들은 제 앞에 산처럼 쌓아놓은 만화책을 맛있게도 읽어치웠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던 만화방은 아늑했다. 어릴 적 기억에 기대어 만화방을 찾았다. 만화방은 조용하다. 인터넷이 발달해 사람들은 예전만큼 만화방을 찾지 않는다. 그렇지만 철제 책장 가득 만화책이 꽂혀 있고 소파와 난로가 놓인 만화방은 유년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익숙한 공간이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그래도 거기 여전히 만화방은 존재하고 있었다.

 

“저마다 기억의 차이가 있는지라 정확히 언제 처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구는 6·25전쟁 직후라 하고, 누구는 60년 전후란다. 주인도 수차례 바뀌어, 생길 당시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라는 것엔 이견이 없었다.” (「마담, 여기 모닝커피 한 잔-김삿갓 다방」_212쪽)

 

대전역 길 건너 김삿갓 다방, 좁은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벽에 커다란 삿갓 두 개가 걸려 있다. 이름도 나이도 묻지 말라는 노신사는 이곳에 나오는 게 소일거리라고 한다. 문학전문잡지 미래문학 대표라는 장춘득 할아버지는 1959년 중도일보 취재부 기자로 일하던 시절부터 이곳에 드나들었다. 당시 김삿갓 다방은 샹들리에가 있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라면 역사고 문화라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김삿갓 다방 역시 역사를 담고 있다.

 

“지역 태생형 극장들이 대기업의 대형화된 멀티플렉스에 밀려 하나둘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사이, 동화극장은 성격을 달리해 그 명맥만을 유지해오고 있다.” (「영화관으로서의 자존심과 현실 사이에서-동화극장」_231쪽)

 

단관극장은 사람들에게 추억과 사랑의 감정이 깃든 곳이다. 단관극장인 동화극장은 동구 인동 대전천변 가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성인용 비디오 영화만을 틀어주는 곳이지만, 한때는 건물 하나가 좌석을 꽉 채운 영화관이었다. 손 글씨로 쓰인 ‘관람자 준수사항’, 벽 한쪽에 모아서 걸어놓은 열일곱 개 남짓한 시계가 모두 똑같이 현재를 달리고 있었다. 지금의 모습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영화관의 오래된 물건들이 보여준다.

 

“나라도 개인도 감당하지 못하는 가난 구제를 길가에 버려진 폐지가 한다. 자꾸 만들고, 자꾸 써야 가난을 감당할 폐지가, 폐품이 나온다.” (「도시가 버린 것이 모두 그곳에 있다-고물상」_255쪽)

 

200평 남짓한 고물상 벽을 따라 고물 더미가 둘러싸고 있다. 종이, 고철, 비철 등으로 분류했다. 입구 쪽에는 컨테이너가 있고, 고물상 주인이 모아놓은 옛날 공중전화, 마이크, 오줌싸개 머리에 쓰던 키, 벌통 등 도시가 잊어버린 물건이 가득하다. 이곳에 오는 노인들은 운동 삼아 일한다고 하지만 나름의 어려운 사정들을 숨기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고, 버려진 것 말고도 버려질 것으로 가득한 도시. 기자는 취재 끝에 중얼거린다, “이 도시가 나도 버리기 전에 가야 할 곳을 찾아야겠다.”라고. 끊임없이 쓰레기를 양산해내는 소비사회의 단면이 고물상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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