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섣부른 이해가 주는 상처에 대해
혹은 오해가 불러오는 완벽한 이해에 대해
그리고 우리 서로에 대해
이해 理解 명사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오해 誤解 명사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앎.
또는 그런 해석이나 이해.
<작가정보>
손준수
식물 연구원.
따뜻한 봄에 태어난 사람.
봄에 태어나 따뜻한 사람.
〈82.7〉, 〈자음과 모음과 마음들〉, 〈즉석 시집〉, 〈오늘 엽서를〉, 〈아니오, 카테터는 안되요〉 등
이해이
영화가 삶을 바꾸지는 못해도, 세계관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평론을 짓는다.
지독한 사랑 영화처돌이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믿지 않는다.
책과 독립영화를 아끼고 한국문화를 연구한다.
임발
일상의 소설화, 소설의 일상화를 꿈꾸며
자신과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소설로 기록합니다.
〈도망친 곳에서 만난 소설〉, 〈부끄러움이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당신의 인생 어딘가〉, 〈선택은 망설이다가〉 등
조혜림
음악 콘텐츠 기획자.
위로하는 자와 위로받는 자의 마음이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흠모한다.
마음을 받기만 하던 사람이 마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기적을 꿈꾼다.
〈음악의 쓰임〉 등
<목차>
이헤이 〈모르는 사람을 봤어〉 010
조혜림 〈스칼〉 050
임발 〈그러니까 이제는〉 120
손준수 〈초록이 머무는 날들에〉 168
편집자의 말
맺음말
<책 속으로>
〈모르는 사람을 봤어 中〉
육 년 가까이 다녔던 회사를 그만둔 것은 작년 봄의 일이다.
사직서를 내기 전날 밤에도 나는 퇴근 후 파랑을 만났다.
집 앞 꼬치구이 가게에서 부장 욕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이야기의 결론은 늘 같았다.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작가가 되면 부장 욕부터 쓸 거야. 사내 정치 이야기를 써야지. 편입도 하고 싶어. 그렇지만 확신도 없는데 일을 그만두고 진학해 글을 쓰는 건 정말 미친 짓 같아. 내후년이면 나도 서른인데. 모두가 어딘가에 제 자리를 찾아 머무르기 시작하는데, 나만 뭔가를 향해 걷는다는 건미친 짓이잖아. 확신도 없는 일에 뛰어들었다가, 등단을 못하고, 결국은 변변찮은 직업도 없이, 평생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삶을 살면 어떡하지. 나는 사대보험이 없는 삶이 정말 두려워. 사대보험이랑 거리가먼 내 꿈이 너무 좋아서 지겹고 싫어. 내가 말하자 늘 묵묵히 듣기만 하던 파랑이 그날따라 이렇게 말했다.
“좋아서 싫은 게 뭐야? 그런 말이 있나?”
〈파스칼 中〉
윤희는 헤르메스의 요청에 따라 어떤 아이디를 만들까 잠시 고민하다 ‘파스칼’이란 이름의 아이디를만들었다.
문과인 윤희는 아예 자신과 다른 사람 같은 아이디를 만들고 싶었고,
어디서 주워 들었던 수학자의 이름 ‘파스칼’을 차용해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로피탈’과 같은 수학 관련 닉네임들을 헤르메스가 매칭시켰으나 윤희는 당황한 나머지 ‘거절’을 내뱉었다. 5번 정도 여러 아이디가 매칭됐으나 윤희는 첫 채팅의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거절’ 혹은 ‘나가기’를 연거푸 말했다. 그러다 잠들기 전 마지막에 매칭된 상대는 ‘HYEIN’이란 아이디의 유저였다.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이제는 中〉
“내가 어떤 일 하는지 지금도 잘 모르지?”
일 년을 만났으면서도 네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난 잘 몰랐다. 그때 넌 어떤 센터에서 일한다고 했다. 네가 어떤 말을 하면 그걸 듣고도 난 특별하게 호기심의 가지를 키우지 않았다. 네가 얘기해 주는 만큼만 겨우 들었을 뿐이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다. 어차피 너도 자세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지않냐며 대뜸 물었다. 난 사생활을 캐묻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급하게 둘러댔다. 그러나 실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게 더 정확한 이유였다. 너를 사랑하면서도 너의 세계를 몰랐다.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도 모든 걸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나의 가치관이었다.
〈초록이 머무는 날들에 中〉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건조한 표정으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슥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샴푸대에 눕자마자 얼른 두 눈을 감은 그의 얼굴 위에 나리는 수건을 올렸다. 물을 틀어 온도를 확인할 때 머릿속에 다시 전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는 좀 투명인간 같아.”
샴푸를 듬뿍 넣고 두피 마사지를 할 때에도 여전히 목소리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너는 좀 투명인간 같아.”
그 순간,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굵고 낮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전 남자친구의 음성을 산산조각 낸 후 그녀의 고막을 부드럽게 울렸다.
“위로가 좀 필요하십니까?”
<출판사 서평>
4명의 작가가 쓴 너와 나 그리고 우리에 대한 소설집
페이지스 9집 - 이해라는 오해에 관하여
페이지스의 아홉 번째 이야기‘이해라는 오해에 관하여’는 오해와 이해에 관한 소설집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으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일부러 의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의도치 않은 말이나 행동에 의해서요. 의도와는 다른 해석이 오해라는 상처를 만들고,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했던 시도는 자주 엉뚱한 결말에 도달합니다.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만큼 오만한 말이 있을까요?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누군가를 완벽히 이해했다는 착각은 때론 완전한 오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다른 오답을 내릴지라도 타자와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딛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답을 쓰는 만큼 타인과 세상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걸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요.
용기를 내어 오해와 이해에 대해 쓴 네 작가의 소설들을 담았습니다.
소설이 작가의 실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에 실리는 소설들은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서지 정보>
제목: 페이지스 9집 이해라는 오해에 관하여
저자: 이해이, 손준수, 임발, 조혜림
쪽수: 276p
판형: 120*180mm
가격: 15,000원
장르: 소설
발행일: 2025년 6월 26일
발행처: 77페이지
ISBN: 979-11-914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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