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용 시집 [나란한 얼굴] 서평행복을 찾는 과정관찰은 고달프다. 세심하게 지켜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관찰에 염두를 더하면 시가 된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에 한 번 더 눈길을 주며 의미를 찾아내는 일. 사물의 의미가 사라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 전전긍긍하는 일. 시.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관찰하는 일따위를 자신의 업으로 삼는, 시인의 삶이란 무척 고달플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래서 시집을 읽거나 시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그들이 염두하고 있는 생각이 궁금했지만, 직접 묻지는 않았다.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탓이다. 시인의 시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을텐데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뻐하며 아파했을. 마음에 드는 시집을 읽고 나면 눈을 감고 울룩불룩 발자국을 내고 지나간 문장을 떠올린다. 시인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하나가 되는 문장.엄지용 시집 <나란한 **얼굴>**은 깨진 아스팔트 틈에서 꽃향기를 맡아내고, 빙판길에서 녹지 않는 눈을 발견한다. 시집을 꼼꼼하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그가 세상을 묵묵히 바라보며 적어둔 행복을 찾는 과정을 속속들이 찾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나란한 얼굴해가 우리와 나란해지는 시간우리도 마주한 얼굴을나란히 한다나란한 얼굴가지런한 팔과 다리우리가 선 위에 있다면우리는 앞뒤 말고나란히 서기로 한다순서가 없는 얼굴로그 나란한 얼굴들로나란히 서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가 없다. 누가 먼저랄 것 없는, 누가 나중이랄 것도 없는 나란함. ‘순서가 없는 얼굴, 그 나란한 얼굴’은 ‘우리’를 그 어떤 것에도 종속시키거나 굴복시키지 않고 동등한 자세와 태도로 대하게 한다.‘선’이 줄(線)인 지 정당하고 도덕적 기준을 말하는 착함(善)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시인의 의도를 상상하는 것 또한 시집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라고 여겨본다면 ‘선’을 단순히 우리 앞에 그어놓은 줄만으로 생각하지는 않기로 하자.세상에는 최악과 악, 차악, 차선과 선, 최선이 존재한다. 최악과 최선 사이를 오가는 선택 위에 서는 것이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엄지용 시인의 말처럼 앞뒤 순서대로 서는 방법보다 나란히 서기로 하자. 누가 먼저랄 것 없는 우리가 되어.사랑이나 행복을 찾는 방법은 나란히 서는 것처럼 지극히 단순할지도 모른다. 세상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우리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확실함 속에서 누군가 나 대신 확실하게 대답해주길 바라기도 한다. 이미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이미 갖고 있는데도.엄지용 시인은 시집 <나란한 얼굴>에서 사랑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사랑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사랑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 녹지 않을 것만 같은 눈 내린 땅. 눈보다 차가워서 쌓이기만 하는 땅. 땅은 어떻게 빙판길이 되는가. 사랑은 어떻게.빙판길카페에서 아이가 갑자기 크게 웃었고, 옆 테이블 어른은 아이를 오랫동안 째려보았다. 집에 가는 길엔 한 아이가 자기가 먹던 빵을 뜯어 비둘기에게 던져주었고, 그 모습을 본 엄마는 기겁하며 아이를 뜯어말렸다. 눈 내린 땅이 눈보다 차가워서 쌓이기만 한다. 녹지 않을 것이다.빙판길, 전문어른들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녹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언한 시인이 바라본 빙판길을 마주하게 된다. 미끄러운 빙판길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아이와 눈보다 차가워서 쌓이기만 하는 눈 내린 땅을. 하지만 크게 웃기를, 먹던 빵이라도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기를.아이의 웃음과 빵이 ‘녹지 않을 것’이라던 빙판길을 녹이는 봄이 되기를. 봄에도 눈이 오지만, ‘싹이 트고 꽃이 필 때 / 눈도 온다는 것을 / 싹트고 꽃만 피어야 봄이 아닌 것을 / 눈발 날려 잠시 하얘져도 / 그래도 봄은 봄인 것을 (봄눈 중에서)’ 이제 우리, 알기에. 이렇게.행복의 확률‘저 사람 행복해졌으면 좋겠다.’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하나씩 늘리는 것저 사람이 행복하면 내가 좋겠다는 거니까결국 내 행복의 확률을 높이는 일행복의 확률, 전문시인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행복의 확률을 높여가며 그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을 계속 보여준다. 그에게 ‘같이 간다는 것은 (중략) 다른 두 손이 서로를 부둥켜안는 것.(동행 중에서)’이므로. ‘저 사람행복해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행복의 확률을 높이는 일이므로.자정을 넘어 탄 택시에서 서로의 야근을 걱정하다 괜찮다며 내리는 시인에게 굳이 천원을 돌려주며 “세상 짠데 혼자 달아 뭐해요 / 우리 손님도 짜게 살아 짭조름하게 (짭조름 중에서)”라고 말하는 택시기사님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짠 세상에 혼자 단 모습을 보여준다.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서로의 단 인생을 바라는 사람들. ‘깊은 사람 깊은 마음 깊은 사랑 그런 것들을 깊이 가진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는, ’갈수록 진해지고 갈수록 진솔해지고 싶다(하루 중)’라고 말하는 시인의 염원은 이미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싸구려 구두를 신고 걷더라도 현실보다 우리를 믿으며, 엄지용 시인이 알려준 행복을 찾는 과정들이 독자들에게 사랑으로 존재하기를 빌며. 엄지용의 새 시집을 읽는 나란한 얼굴들을 축복하며, 기도하며.김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