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5. 9. 5.(금) 13:00-15:00[장소]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 문화도시 박람회 소행사장 [발제]서울에서 지역문화를 이야기하는 넌센스 ‒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원)서울에서 지역문화를 이야기하는 희망회로 ‒ 성연주(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 [토론]서울의 지역문화 사업의 성과와 과제 ‒ 김영호(강동문화재단 대표)서울의 지역문화와 로컬 비즈니스 생태계 ‒ 나진억(성동문화재단 경영정책실장)서울의 지역문화와 문화예술 네트워크 ‒ 김경현(강서, 다시서점 대표)서울의 지역문화와 문화예술 비즈니스 ‒ 김서현(관악, 문화기획사 아야어여 대표)주최주관 영등포구, 영등포문화재단현장운영 (주)문화디자인자리 - 서울권 지역문화 포럼서울의 지역문화와문화예술 네트워크아무것도 없어서할 수 있는 이야기와할 수 없는 이야기서울 강서구는 조선시대 양천현과 금포현의 경계였고, 1914년 이후에는 김포군 양동면·양서면으로 편제되었으며, 1963년 서울시 확장 때 김포·부천에서 편입되어 처음에는 영등포구 관할이었습니다. 1977년에는 영등포구에서 분리되어 강서구가 신설되었고, 1988년에는 동쪽의 목동·신정·신월동이 분리되어 양천구가 탄생하는 등 행정 경계가 여러 차례 변동되었습니다.당시 강서구는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녹지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논이었으며, 산발적으로 주민들이 거주했습니다. 여의도비행장이 김포비행장으로 기능과 시설을 옮기고, 그 시기 강남으로 인식되던 영등포의 기능이 확장되면서 강서구로 새로운 인구 유입이 시작되었으며, 김포국제공항의 기능 확장과 공장 증가에 더해 이촌향도로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이 비교적 저렴한 지역을 찾아 들어오면서 인구가 늘어났습니다.강서구의 지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정 경계 변화와 주변 생활권의 상호작용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강서는 김포·부천·인천과 공항·물류·통근권이 맞물려 일상 동선과 상업 문화가 교차하고, 영등포·여의도 축과는 방송·금융·서비스업 고용권이 연결되며, 양천과는 분구 이전부터 이어진 주거·교육·상권의 연속성이 유지되었습니다.공간적으로는 한강·경인·올림픽대로가 이동과 교류를 이끌었고, 기능적으로는 김포국제공항과 마곡지구가 이주·관광·혁신산업의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또한 주민들의 생활사 현장과 양천향교, 허가바위 등 지역 기억 자원이 전통·근대·현대의 층위를 이어왔습니다.서울 중심부를 제외하고 뒤늦게 편입된 다수 자치구가 겪는 “지역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고유한 지역문화와 새롭게 만들어가는 지역문화 사이의 단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강서구 또한 마찬가지로,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고 주민들의 일상 문화 접근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주민과 기획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문화예술을 즐길 공간이 거의 없다”라는 점이었으며, 이로 인해 문화적 자존감과 지역 정체성이 약화하였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이 공백을 메운 대표적인 사례가 ‘N개의 서울’ 프로젝트입니다. 강서 N개의 서울은 지역의 예술인, 생활문화 동아리, 청년 기획자들을 연결했고, 연구 모임, 워크숍, 독립출판 마켓, 지역문화 지도 제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했습니다. 청년 기획자 교육과정도 운영해 지역 활동 인력을 길러냈습니다. 사실상 공공이 맡아야 할 중간지원조직의 기능을 민간이 먼저 수행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 네트워크는 제도적, 행정적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불안정했고, 재정 지원도 없어 장기적으로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그 원인은 강서구에 문화재단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서울 25개 구 중 22개 구는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강서구는 아직도 설립 계획조차 없습니다. 문화재단이 없으니 국·시비 보조금을 확보하기 어렵고 장기적인 문화정책을 추진하기 힘듭니다.강서구는 문화재단 대신 문화원을 통해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문화원은 민법상 사단법인일 뿐 공공재단이 아닙니다. 국가나 서울시의 예산을 직접 받을 권한이 없고, 전문 인력이 부족합니다. 결국 위탁 운영과 시설 관리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문화재단의 기능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실제 행정을 보면 문제는 더욱 뚜렷합니다. 강서구의 문화정책은 중장기 전략이 부재하고, 축제와 행사 위주로 예산이 흩어져 있습니다. 예술인 수당은 20년 가까이 동결되어 있었고, 청년주간은 버스킹 공연 하나로 갈음되었습니다. 구립도서관과 박물관, 미술관은 대부분 민간 위탁에 의존하며, 특정 단체 중심의 위탁 구조로 인해 민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강서아트리움 운영의 경우 본예산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공연비를 매년 추경으로 보충하는 악순환이 이어졌으며, 허준축제는 외부 유명 가수 섭외에 수천만 원을 쓰면서도 정작 지역 예술인의 참여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는 지역 예술생태계에 기여하지 못하는 방식이었습니다.따라서 필요한 과제는 분명합니다.첫째, 민간 네트워크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강서 N개의 서울’과 같은 실험은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공공은 이를 정책 파트너로 인정해 예산·공간·교육 지원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둘째, 문화재단 설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문화재단은 단순히 예산 집행 조직이 아니라 국·시비를 확보하고 장기 전략을 세우며, 행정과 예술인, 주민을 연결하는 중간지원조직입니다.셋째, 민주적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합니다. 특정 단체 위탁 구조에서 벗어나 주민·예술인·청년 기획자가 함께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해야 합니다.넷째, 중장기 문화전략이 필요합니다. 생활권 내 도서관·공연장·예술교육 공간 같은 인프라를 확충해 주민들이 다른 구로 이동하지 않고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지역 예술인의 활동 기반을 보장해 예술인 유출을 막아야 합니다.다섯째, 문화원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재단이 설립되기 전이라도 민간 네트워크와 협력해 지역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합니다.결론적으로, 강서구 문화는 “서울의 서쪽 관문”이라는 경계 이동의 역사와 김포·부천·인천·양천·영등포와 맞물린 생활권의 중첩 속에서 형성된 다층적 정체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문화재단도 없고 장기 전략도 없이 민간 위탁에 의존하는 행정이 이어진다면 강서는 언제까지나 서울의 변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은 이미 움직였으나, 민간의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공공이 응답해야 합니다.강서구는 민간 네트워크를 자산으로 인정하고, 문화재단을 설립하며, 민주적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민들이 자기 생활권 안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강서구 사례는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재단이 없는 지역의 지역문화 전반의 문제를 비추는 거울이며, 공공이 기본적인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지역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지역에서 사업을 담당한 PM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기획자와 예술가들이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써 네트워크를 만들어도 사업이 끝나면 그 즉시 끊어지고, 재정과 제도의 뒷받침이 없어 버틸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가들이 떠나고, 주민들마저 “이곳에서는 문화적으로 숨 쉴 공간이 없다”고 느끼며 떠나고 싶어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실제로 1억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사업이 사라지자, 2018년 생활문화 거버넌스 25 사업으로 시작해 2024년까지 이어졌던 ‘N개의 서울’ 강서구 네트워크가 완전히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 사실은 강서구가 얼마나 불안정한 문화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다시 말해 지금까지 제가 할 수 있었던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준비하신 발제와 토론처럼, 문화재단이 있는 지역에서는 가능한 심도 있는 논의를 강서구에서는 애초에 시작할 수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쉽습니다. 아마도 기초 문화재단이 없는 지역의 기획자라면 저와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을 것입니다.물론 문화재단이 생겨도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는 비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없는 게 낫다’라는 말도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더 뼈아픈 문제는 문화재단의 유무 자체가 아니라, 논의를 시작할 제도적 기반조차 없다는 현실입니다. 제도와 구조가 없어 논의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은 결국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이번 달 마지막 주에는 강서구 생활예술동아리가 자발적으로 모여 강서구민회관에서 전시와 공연을 엽니다. 이 행사는 동아리 회원들이 쌈짓돈을 모아 마련했고, 지난해 총괄을 맡았던 이예울 PM이 시간을 들여 디자인과 팀별 조율을 도우며 함께 준비했습니다. 사실상 예산 없이 치루는 첫해이자 마지막 해가 될지도 모릅니다.다른 자치구의 재단 직원분들께 이 소식을 전했을 때 “그게 바로 N개의 서울의 취지 아니었나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직 강서구에서는 N개의 서울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남은 미련 때문에 붙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이번 토론을 준비하면서 지난 4년간의 활동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희가 한 모든 일은 결국 “강서구에 문화재단이 생길 것”을 전제로, 훗날 재단이 설립되었을 때 참고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는 과정이었습니다. 저희가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기록이 부디 헛되지 않고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다시서점,김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