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알아버렸다 강서구 작업실에서 홀로 조용히 작업을 한다. 향락적이면서도 몽환적인 홍대 근처,아니 시끄럽고도 시끄러운 홍대 근처를 벗어난 뒤로 수많은 인간관계에서도 벗어났다. 실은 벗겨 버린 거지. 때 밀 듯이 ‘스윽~스윽~’ 처음에는 굵직굵직한 때가 밀려 나올 때마다 어찌나 상쾌하던지. 그 맛에 손에 힘을 더 주어 ‘슥슥~’ 밀고 또 밀고. 왠지 모르게 깔끔해지는 피부를 보면서 ‘쓱쓱~’ 밀고 또 밀고. 괜스레 매끄러운 피부가 만족스럽기도 해서 ‘쑤욱~쑤욱’ 약간의 각질과 먼지도 허용하지 않는 외로운 피부 상태가 마음에 들어서 ‘쑥쑥!!’ 이젠 더 이상 나올 때도 없는듯한 외로운 피부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피?’ 코피가 났다. 강서구로 이사를 왔고, 가을이 된 뒤로 세 번의 코피를 흘렸다. 처음두 번의 코피는 어쩌다 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통 그렇다. 기억들이 쉽게머릿속을 떠나버린다. 나이를 먹은 거지. 나 말고 기억이. 나이 먹었으면 기억도 어딘가로 독립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아, 무튼 마지막 코피는 며칠 전에 발견했다.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세면실로 가서 씻으려고 거울을 봤는데, 코피가 내 콧속을 떠나려던 것이다. 보란 듯이 ‘어? 깼어? 몰래 나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네. 그럼, 나 나간다?’ 그리고는 ‘쪼르륵~’ 어이없었다. 매일 같이 운동도 열심히 해, 먹을 것도 건강하게 잘 챙겨 먹어, 술도잘 안 마셔, 잠도 잘 자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죽을병? 걸린 건가?싶었던 거지. 근데 또 마침, 콧등에는 피딱지가 생겨 있었다. 그게 말이지. 얼마 전 콧등에 여드름인지 뭔지를 짜낸 뒤로 피가 났고 지혈이 잘 안됐다. 피가 좀 멎었다 싶으면 피가났다. 코에 약간만 힘을 주면 콧등에 다시 피가 흘렀다. 또 피가 좀 멎었다 싶었는데 잠자다 일어나면 코 옆에 피가 흐른 채로 굳어있었다. 거울에 비친 콧구멍 속에서 떠나려는 코피와 동시에 콧등에 찰싹 달라붙어 떠나지않는 피딱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참으로 가지가지 하는구나. 어떤 피는 일부러 흘리고, 어떤 피는 어쩌다 흐른다. 어떤 건 일부러 떠났고 어떤 건 어쩌다 떠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자발적 고립이냐? 강박적 고립일까? 코피가 내 코를 떠나려했던 건, 대체 무슨 이유일까? 코 옆에 피딱지는, 언제 흘렀다가 언제 굳은 것일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강서구로 이사 온 지도 벌써 6개월이 됐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그 적막함 속에서, 혼자 조용히 책 읽고 작업하는 그 고요한 맛도 알아버렸다. 그런데, ‘알아’ ‘버렸어’ 인 걸까? 그렇다면, 알았으면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게 ‘알아버렸어.’ 아닐까? 이모르작가, 크리에이터더 이상 많은 사람 접하는 게 힘들어서요. 지난 날, 나는 너무 많이 취해있었어요.향락적이면서 몽환적인 홍대 근처에 운영하던 작업실을 정리하고 강서구로 이사왔습니다.조용히 그림 그리면서 그림 가르치고 글도 쓰고 그러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