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공원 #5. 이제 사람들의 얼굴을 거의 구분할 수 없다. 어둠 속에서 개와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곁을 지나간다. 나는 어둠 속으로 좀 더 나아가본다.물론 이것은 조금 다른 어둠이다. 최근 강서구는 대표적인 전세 사기 피해 지역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고있다. 뉴스에서는 화곡동 일대에 밀집한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의 피해가 크다며 상대적으로 싼 임대료와 집값이청년층의 수요와 ‘무자본 갭투자’에 나선 투기범들을 끌어들였다고 분석했다. 서울 외곽 지역이라 집값과 임대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지하철 5, 9호선으로 서울 중심과 강남으로 연결되어 교통이 원활한 점이2,30대 인구가 유입되는 요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문제의 한 측면만을 말하는 듯했다. 결국 모든 것을 ‘부동산’의 문제로 이끄는, 그렇게 낯익은 무감함으로 결론짓게 만드는판에 박힌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전세비 상승 등의 요인으로 강서구의 인구는 30대를 중심으로 인근 김포시로 유출되는 현상또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강서구는 청년들의 내부 이주의 중간기착지인 셈이다. 1960년대 중반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이주한 이후 60여 년이흐름 지금도, 서울로 이주의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그것을 ‘수도권 인구집중과 과밀화, 개발 압력에 따른 도시 팽창’이라는 틀에 박힌 분석으로대치하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청년들의 내부 이주와 그들의 실존적인조건과 서사는 드러나지 않는다.수도권에 집중된 자원과 일자리 때문에 학업과 직업을 위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삶의 위기, 정착할 도시에서 안정된 주거 공간도 확보하지 못하는, 그래서 미래를 유예해야 하는 정주의 위기, 자신의 나라에 의해 뒤로 밀려나는 것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존재의 위기말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저출생의 문제를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바라보고, 이를 해소하는 중장기 방안을 제시한 보고서를 발표했다.1)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마주한 문제에 대한 ‘명명’부터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단지 부동산 투기나 집값 상승이 아니라 ‘이주의 위기’이며,이주의 위기가 일상화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말해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정말로 매일매일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그 실체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야 1인 가구, 2,30대 인구, 독거노인 비율이 높은 강서구의 인구분포가 단지 통계상 의미 있는 수치만이 아니라 실존적인 삶의 의미로다가올 수 있을 것같다. 또한 지금의 서울을 만든 이주의 역사를 간직한,현재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주의 위기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강서구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 특이성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저녁의 공원 #6. 어둠속에서산책하며사람들은개들에게이끌려서로를어둠속에서익힌다.사람들은그들이그렇게어울리고있다는것을알지못할것이다.어쩌면개들만이그만남을이해하고,알아들었을지도모른다.그래서사람들은개를곁에두려는지 모른다.연결의 감각을 모두 잃기 전에,다른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개들이야말로,비인간적인 존재야말로 연결이 약해진 인간들을 연결로이끈다. 약한 연결. 그 말 앞에서 잠시 나는 멈추어 선다. 내가 매일 도서관에 가고, 동네의 과자점을 찾고, 마트에 가며 동네와 연결되는 방식. 그 연결이 강서구에 다시 돌아와 나의 일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약하지만 그 연결 속에서 느꼈던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자료조사 때문에 일주일 내내 도서관에 갈 일이 있었다. 동네에서 비교적 장서를 갖추고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은 버스를 타고 가는 공공도서관이었다. 찾고 있는 자료가 그곳밖에 없었다. 강서구에 돌아와 알게 된사실 중에 하나는 공공도서관의 장서가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 기간이어서 좌석을 한 칸씩 띄어서 앉게 되었고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도서관 주변에 임대 아파트가 있어서 도서관 이용객 중에는근처에 사시는 노인들이 많았고, 몇몇 분은 출근처럼 매일 오시는 분도있었다. 그런 분들의 얼굴은 익힐 수 있었다. 할머니도 그런 분 중 하나였다. 무더운 여름날 주말이 가까운 오후였다. 할머니가 직원과 싱갱이를 벌였다. 답답하셔서 마스크를 빼놓고 있다가 제재를 받은 것이다. 그 날따라 날은 무더웠고, 할머니는 답답하셨는지 마스크를 다시 벗어놓았고,여자 직원이 다가와 마스크를 쓰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말을 듣지 않았다. “왜 나만 뭐라고 해요”, 라며 반감 어린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직원도 지지 않고, 응대했다. “계속 그러시면 도서관 출입이 어려우세요.”주변에서도 무슨 일인지 돌아보며 시선이 모아졌다. 할머니는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못 이기는 척 마스크를 끼었다. 그러고는 잠시 바깥으로 나가셨다. 시간은 지나갔고, 5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칠 그 시간이면 도서관에 계신 노인들에게는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기 신호음을 크게 해놓는 분들이 많아 다 듣게 된다. 가족이거나 지인들이 저녁 시간에맞춰 안부를 전하는 모양이다. 도서관에 다니는 동안 할머니에게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는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의 뒷모습이 크게 다가왔다. 나도 집에가려고 잠시 화장실에 갔다. 다시 열람실에 들어가려 할 때 할머니가 전화를 받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곁으로 다가가 통화소리를 들었다.자식의 전화인 것 같았다. 안부를 묻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 같았다. 그순간 이상하게 안도감을 느꼈다. 할머니에게 누군가 전화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어쩌면 그날 일도 그 때문인지 몰랐다. 할머니의 외로움과 직원에게 드러낸 짜증 너머의 공허함. 약한 연결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마음을 좀 쓰는일이고, 기억하는 일이다. 마주하게 된 얼굴과 말을 가능한 잊지 않으려한다. 그날 오후의 할머니를. 할머니의 뒷모습을.이제 산책을 마치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신호등의 불이 파란불로 바뀌었고, 난 집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마주 오는 방향에서 장애를 가진 청년을 휠체어에 태워 밀고 오는 어르신이 다가온다. 막연히 청년은 그분의 아들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분이 매일 저녁, 같은 시간 저녁 산책을 나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가 매일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을 난 지켜본다. 그분의 존재를 이 글에 남기는 일로 그를 둘러싼 우호적인 환경의 일부로 나자신을 위치 지으려 한다. 1) 한국은행,‘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 원인·영향·대책' 중장기 심층 연구, 2024. 김은산공항 근처 소필지 주거지에 살며 장소에 공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home_and_wande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