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토박이 혁이의 우리 동네 플렉스 방법혁이의 강서구 플렉스 방법 강서구의 아침은 고요하다. 새벽이 잠을 청하고, 하루가 시작되는 날에는 수명산 지평선에 서서히 아침이 밝아온다. 나의 일과는 변곡점이 많다. 자율적인 업무 특성상 자투리 시간을 생산적으로 할애하려고 한다. 보통 그날 기분과 컨디션, 체력에 따라여정의 경로와 머무는 시간이 제각각이다. 즉, 하루 업무를 제외한 남은 HP를 충전하기 위해 잠시 떠나는 여행이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코 ‘공항동’이다. 아늑하고 순수한 동네다. 마을 어르신들의 여유로움이 나의 현실감을 가라앉히게 한다. 편안하게 걷도록 보폭 속도를 줄인다. 가끔 ‘시골 칼국수’에 들리어 6,000원 칼제비를 시원하게 들이켠다. 평일 낮에 가면 상호에 걸맞게 담백하고 수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가을에 자주 들리곤 했다. 작년 5,000원이었던 가격표 위에 네임펜 궁서체로 ‘6,000원’이 새로 덧붙여 있다. 그 또한 속으로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며 잠시 궁상에 빠진다. 멍때리기 좋은 식당, 이곳은 늘 언제나 나의 또 다른 Lazy Life를 잠시나마 만끽하게해주는 맛집이다. 아니 그저 편안한 공간이었다. 사장님은 스몰토크를 좋아하신다. 한적한 평일 오후 3시에 방문하면 나를 환하게 반겨주신다. 오늘은 어떠했고, 요즈음도 야근하냐며 가끔 내 패션에 대해 논하시기도 했다. 마침 말동무가 필요하셨는지, 아니면 그저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시는지 알 도리는 없다만 마치 푸근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을 보는 듯하다. 어쩌면 난 인복이란 게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이 시골 칼국수의 묘한 매력에빠져든 것일까. 이 또한 의아하다. 그래도 뭐 어떤가. 나만의 동네 플렉스 방법이라면 그걸로 만족한다.다음으로 떠난 곳은 10분 뒤 나오는 ‘다시서점’이다. 공항동에 있는 자그마한 서점이지만 사실 이곳은 정말 나만 알고 싶던 공간이며, 서점이란 의미를 다채롭게 접하게끔 해준다. 그저 독립서점이라 하면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골라 10분간 읽어보는 풍경이 대다수이지만, 다시서점은 그렇지 않았다. 소중한 여러 작가의 책들이 숨을한숨 고르게 쉬고 쌔근쌔근 잠든 곳 같다. 적절한 농도와 습도, 온도, 그리고 사장님의 제스처와 패션가짐, 더군다나 PM님의 산뜻 발랄한 미소, 이 모든 게 합일을 이룰 때 난 이미 앞쪽으로 발을 딛고 있었다. 서점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이 포근하고 아늑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끌려간다. 창문을 두드리면 사장님은 데스크에서 잠시나마 볼일을 보시다 3초간 정적, 그리고 내 눈과 마주칠 때 살짝 멋쩍은 입가 미소를 내비치며 다가오신다. 아, 야구 스냅백 모자는 덤. 마치 다시서점 마스코트이자 정체성 그 자체 시그니처가 나에게 다가온다! 문을 여는 순간 은은한 아날로그 종이 냄새와 산뜻한 디퓨저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의도적으로 사람 애간장 태우게 하려는 마케팅이 아닐까 싶었지만 뭐 그래도 좋다. 이윽고 가운데 정렬된 책을 5초간 쓰윽 훑어보다가 입구 안쪽 벽에 있는 ‘시간이 멈춰진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로 향한다. 사실 이게 내 목적이다. 역으로 사장님께 나만의 마케팅을 보여줄 시간이다. 항상 속으로 생각했다. 디지털시계보다 고풍스런 종시계가 역사성이 있는 것, 시계가 작동하지 않다고 말씀드리면 사장님은 그제야(...?) 다시 시침, 분침을 정렬하시며 작동시켰다. 시간이 멈춰있던 서점이지만 사실 마음만 먹고 고칠 수 있다면 오래되고 쓸모없는 시계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방증하고 싶었다. 새로운 손님들이 다시서점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 하나는 바로 편안함과 아늑함도 있지만, 그 외 골동품의 아우라가 적절히 믹싱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꾸준히 가는 디지털 사회, 반대로 다시서점은 아날로그를 회상하게해준다. 시계가 멈춰도, 다시서점의 내부는 마치 이세계에 온듯하다. 그런 몽롱한 감성을 느껴보니 다시 오게 된다. 반전의 미학이란다. 평범한 독립서점의 큰 실수는 책 판매에만 집중하는 것, 그 반대로 인테리어와 부속 굿즈, 소소한 오브젝트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정체성을 잃는 점이다. 다시서점은 그런 게 없다. 그저 편안하게 쓰윽 훑어봐도 여러 오브젝트와 책들이 오묘하게 조합되는 구성이 좋다. 아, 또 한 가지 ‘애채’의 분위기는 마치 게스트하우스 포틀럭 파티를 연상케 하는 공간감이 있다. 그날 어떠한 사연이 있었는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내뱉을 수 있는 공간, 단골러들만 알고 싶은 곳, 거대한 프롬프트 TV로 갖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5-6명이 소소하게 간담회를 하는 동네 커피집 느낌. 그리고 지역에 대해 진실적인 토론을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과도하게 몰입되는 시점에 주스와 과자로 배를 달래며 피드백을 나눈다. 안정과 긴장의 교차점에서 잠시나마 일상을 읊는다. 난 그런 게 참 좋다. 단골러는 오늘도 푹 쉬다 갑니다- 잠시 머물 수 있는 곳....마지막으로 나만의 플렉스 장소는 바로 ‘공항동 막걸리촌’일대이다. 가는 내내 90년대 쌍방울 상호가 있는 마트 직판장과 허름한 마을 동네 목욕탕을 눈에 안주 삼아 걷는다. 큰길 횡단보도를 건너면 일명 ‘막걸리촌’ 거리가 시작된다. 특이한 점은 막걸리촌 뒤편 오솔길을 끼고 가면 나무 전봇대를 구경할 수 있다. 한자명이 적힌 구옥을 보는 재미도 있다. 잠시 뒤편 길을 한 바퀴 돌고 ‘허술한 집’에 들어선다. 이곳 사장님은 허름하고 낡고 쓸모없어진 옛 구옥을 막걸리 노포집으로 활용하여 지금도 장사를 하고 계신다. 낮은 층에서 파전의 기름 냄새가 잔잔히 퍼지며, 테이블 곳곳에서는 인근 항공사 젊은 직원들이 편안한 사복을 입은 채로 그들만의 입담을 펼치고 있다. 작년보다 천원 더 오른 포천 찹쌀막걸리 주전자 사발로 나 또한 동네 친구들, 혹은 발산에서 함께하는 기획사 직원들과 삶의 회고를 그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 사장님의 포스는 여전하시다.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날에는 자주 오라고 나무라시고, 오히려 장마철인 7월, 8월에 자주 찾아뵈면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거냐, 막걸리 주전자가 그리워서 온 거냐.”라며 안부 인사를 공유한다. 사실 발산과 마곡이 직장인들의 밤 문화가 즐비하여 회식할 때 마음이 눅눅해지고 온전히 하루를 버티는 느낌이지만, 공항동의 막걸리 노포집 분위기는 그날 수고한 나를 위한 힐링 목욕제 역할을 해준다. 적당히 취기 있는 말투로 다시 한번 말을 이어간다. “사장님의 모둠전은 역시 맛깔나네요. 김포공항 일대가 개발되어도 이 구역만큼은 재개발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힝” 그러면 또 핀잔을 주신다. “재개발이 뉘 집 개 이름이냐. 나도 먹고살아야지.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야. 현실이 정해주지.” 사실 맞는 말이다. 어쩌면 이 글은 재개발 분위기로 추억 속으로 묻힐 공항동 이야기를 대신 전달해주고 싶었던 내 욕심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난 공항동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을지도 모른다.갓혁행사 축제 기획자이자 레트로를 지향하는 예술가입니다.평범한 시각보다는 다채로운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강서구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