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공원 #1 - #2 / 김은산

저녁의 공원 #1 - #2 #1.​저녁이 되면 동네의 개들은 주인의 손에 이끌려 쇼핑몰과 백화점 주변 공원으로 모여든다. 어두워져 가는 공원의 작은 오솔길을 산책하는 것이 동네 개들의 일과이다. 원룸과 빌라, 단독 주택과 아파트에 있던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이면 저녁 산책에 나선다.​해가 지면서 서쪽 하늘은 푸르스름한 은백색을 띠다가 짙은 인디고 핑크빛으로 물든다. 간단히 장 볼 일이 있어 마트에 먼저 들른다. 평일 저녁이라 실내는 한산하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군데군데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은 백화점과 마트, 쇼핑몰이 함께 있어 가족 단위 고객이 많다. 주말과 휴일에는 키즈 카페에 아이들을 데려온 젊은 부부들과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하러 온 사람들로 꽤 번잡한 편이다.​백화점이 들어선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외식하기 위해 종종 들렀고, 이후에도 엄마와 함께 찾았다. 개점 당시에는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몇 년 전인가부터 의자나 벤치 등을 곳곳에 배치해 가능한 공간에 사람들이 머물도록 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평일 오후에는 동네 어르신이 소일 삼아 찾는 곳이 되었다. 벤치나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쉬거나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볼 수 있다. 동네에 있던 은행이 이전한 후로는 무더위와 한파를 피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엄마도 종종 이곳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하셨다.​이 공간을 찾을 때마다 독특한 냄새에 신경이 쓰인다. 탈취제와 디퓨저 중간 정도의 ‘단일한 향’이 유지되고 있는데 불쾌하지는 않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향이 던져주는 ‘비현실감’을 계속 의식하게 된다. 위생과 쾌적함을 위해 의도된 설정이 무엇일지 상상하게 된다. 한산함과 마찰 없는 공유가 이 공간의 시나리오라면 단일한 향은 빈 공간을 채우는 매질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공간에서 삭제된 것은 무엇일까.​냄새의 변화를 통해 포착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 거리감의 변화다. 설을 앞둔 공항시장은 인근 김포와 부천에서 설 준비를 하러 온 사람들까지 몰리면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엄마를 놓칠세라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하지만 북적이는 인파에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누군가의 발에 밟히고, 팔꿈치에 밀리고 밀쳐지며 떠밀려 가는 사이 앞선 사람의 퀘퀘한 겨울옷과 좀약 냄새가 콧등에 박혀 온다. 천막을 씌운 시장 통로 양옆에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에서는 고기 누린내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올라오고, 방앗간에서 방금 뽑은 가래떡에서 피어오르는 뜨끈한 연기가 시끌벅적한 상인들의 목소리와 함께 입김처럼 사방으로 퍼진다.​여전히 내게 사람 사는 동네나 사람이 모이는 공간의 특징은 온갖 ‘이질적인 냄새’들의 조합으로 다가온다. 어울려 산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의 몸을 부비고, 냄새를 맡고, 얼굴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좋든 싫든, 그것이 함께 살아간다는 ‘신체적 감각’이었고, 개인에 따라 편차는 있겠으나 그런 부대낌을 적어도 ‘인간적’이라 용인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맞아 치러야 하는 집단적인 결속의 의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좋은 일에는 궂은 일이 따르기 마련이니. 그러나 또 다른 일상의 ‘부대낌’은 전혀 다른 결론(?)을 유도한다.​​#2.​지난봄 경기도 의왕시에 열리는 워크숍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지하철 9호선 급행 노선을 이용하게 되었다. 워크숍은 저녁에 진행되었고, 집에서 일찍 출발하여 퇴근 시간을 다행히 피할 수 있었다. 그날은 시내에서 다른 일을 마치고 출발하게 되어 때마침 퇴근 시간에 맞춰 강남 방향 지하철 9호선 급행 노선을 타게 되었다.​콩나물 교실과 만원 버스에 시달릴 만큼 시달린 터라 웬만큼은 단련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지하철의 경험은 상상 이상이었다. 내려야 할 역에 퉁겨지듯 겨우 몸이 빠져나와 얼이 빠진 채 개찰구로 걸어가며 머릿속으로는 한가지 생각을 반복했다.​“어떻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거야.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에 사는 거야.”​사실 그것은 ‘생각’이 아니었다. 무의미한 자극에 대한 반복적인 피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지하철역을 빠져나오며 겨우 정신을 차리고‘생각 다운’생각을 해보려 했다. 혹시 모의실험에 참여한 것은 아닐까. 동시간대 서울 지하철 유동 인구 중 9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선발하여 한 열차 공간 안에 밀어 넣고, 밀도와 압력에 따른 인내와 관용의 한계치를 측정하는 실험 같은 것 말이다.​역을 지나칠 때마다 입구 쪽에서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느껴졌다. 그들에겐 나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각자 생업을 걸고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니. 그것은 설날 공항시장에서 겪었던 ‘부대낌’이 아니었다. 인간적인 접촉을 ‘초과한’ 경험이었다. 그 공간에서 우린 각자에게 그저 밀도와 압력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인간다움이나 배려를 고려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이것이 모의실험이라면 실험의 가설 또는 주제어가 궁금해졌다. ‘수도권 과밀화’, ‘도시 팽창과 밀집화’. 하지만 그것은 데이터 해석 자체를 위한 서사일 뿐 데이터를 피부로 감각하는 실존적 경험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퇴근길 9호선 급행열차 안에서 입구로부터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줄곧 생각한 것은, ‘경쟁의 밀도와 그 밀도를 견디기 위한 접촉의 최소화, 압력의 분산을 위한 무감각’이었다. 그것은 데이터로 압축되는 나의 실존을 견디기 위한 방어 자세였고, 일상의 루틴으로 삼을 만한 태도이기도 했다.​그런데 과잉은 늘 결핍을 동반한다. 팽창은 입자 사이의 격렬한 가속을 동반하며 그 과정에서 쏠림과 밀림을 동반한다. 어떤 임계점을 넘은 것일지 모른다. 특이점을 이미 지나쳤는지 모른다. 우리가 연결시키지 못할 뿐.​​김은산공항 근처 소필지 주거지에 살며 장소에 공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home_and_wand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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