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임파스토의 무거움 / 이모르

참을 수 없는 임파스토의 무거움​ 종이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그려져 있었다. 수많은 선과 색이 서로 엉겨 붙은 채로 종이 위를 가득 채웠다. 물감으로 색칠한 그림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물감으로 색을 붙여놓은 듯한 작업이었다. 서로 다른 색의 물감들이 섞이지 않은 채로 층층이 쌓여, 가지각색의 색들이 종이에 덕지덕지 붙어있거나 너덜너덜 걸려있었다.​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물감을 더 쌓을 것인가? 말 것인가? 물감을 더 쌓아 올린다면 의도적인 임파스토(Impasto) 기법이 될 것이다. 임파스토란, 물감을 두껍게 발라서 물감 자체의 두께와 질감을 강조하는 작업이다. 빈센트 반 고흐 작품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고흐는 과감한 붓 터치에 임파스토 기법을 더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주는 인상과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려 했다.​라고 하는데, 나는 고흐가 아니다. 고흐처럼 작업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고흐처럼 광기에 사로잡힌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내 삶이란 커다란 종이 위에는.​임파스토 기법은 회화의 평면성을 탈피하는 작업이다. 마치 조각 작품처럼. 그러나 멋모르고 욕심을 부리다가 물감을 지나치게 쌓아 올리면, 그림을 지탱하는 캔버스 천에 손상이 갈 수 있다. 물감의 무게를 버티지 못할 테니깐. 손상 방지를 위해선 캔버스 천 뒷면에 틀을 덧대는 식의 안정적인 지지체가 필요하다. 화방에 가면 틀에 감싸놓은 캔버스를 종류별로 판매한다. 그 종류가 꽤 다양하다. 나무틀이냐 알루미늄 틀이냐 (十자 모양) 정틀이냐 (一자 모양) 가틀이냐, 틀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 가격도 내구성도 천차만별이다.​임파스토 기법처럼 입체적인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회화작업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내구성 좋은 틀이 필요하다. 틀은 기본적으로 캔버스 천이 변형되지 않도록 장력을 유지하여 작품 보존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틀은 아무렇게나 관리해서도 안 된다. 일례로 내 경우엔 습도 높은 지하공간에 아무렇게나 나무로 된 틀을 방치 해두었다가 망가진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어느 날 보니 틀이 부러져있거나 휘어져 쓸 수가 없었다. 또 어느 날 보니 오랜 기간 지하공간에 방치 해둔,​휘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오랜 기간 마포구 홍대 부근에 있는 지하공간을 운영했다. 그곳은 나 혼자 그림 그리는 작업실이자, 사업자등록이 된 사무실이었다. 그곳은 다 같이 그림을 그리는 모임 공간이자, 그림 그리는 영상을 찍는 유튜브 스튜디오이자, 그림 그리는 이야기와 책을 쓰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여러 가지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었다.​그 공간에서 그렸던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 그 공간에서 기획했던 다양한 콘텐츠와 다양하게 시도했던 사업적인 일, 그 공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 그 공간에서의 다양한 경험들 덕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없이, 수많은 것들은 서로 엉겨 붙은 채로 내 안을 가득 채웠다. 수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수많은 것들을 가지고서, 그림 그리는 사람답게 내 삶을 아름답고 다채롭게 잘 칠해나가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건만,다채로움은커녕, 내 삶의 수많은 것들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로 층층이 쌓여, 덕지덕지 붙어있거나 너덜너덜 걸려있을 뿐. 멋모르고 쌓아 올린 임파스토 작업처럼 엄청난 무게로 내 삶을 짓눌렀다. 지지하는 틀 마저 부러졌는지 어딘가가 아프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후유증이 지속됐다. 물론 요즘 시대에 정신적으로 문제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광기에 사로잡힌 고흐처럼은 살고 싶진 않다니깐?​무게를 줄여야만 했다. 불필요한 것들을 몽땅 버려야 했다. 남아있는 틀마저 몽땅 부러지기 전에.​선택의 갈림길에서 지난 13년간 운영해 오던 마포구 지하공간을 정리하는 것을 택했다. 수많은 짐을 폐기 처분했다. 그 외에 또 수많은 것들을 버리고 지우고 단절했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관계 맺은 사람도 관계 속에 사랑도. 임파스토 기법은 내게 어울리는 작업 방식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강서구로 이사를 왔다. 새롭게 펼쳐진 종이 위에서, 진정 내가 좋아했던 색으로 다시 섬세하게 칠을 해본다.​​이모르작가, 크리에이터​더 이상 많은 사람 접하는 게 힘들어서요. 지난 날, 나는 너무 많이 취해있었어요. 향락적이면서도 몽환적인 홍대 근처에서 운영하던 작업실을 정리하고 강서구로 이사 왔습니다. 조용히 그림 그리면서 그림 가르치고 글도 쓰고 그러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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