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 이스트씨네 서점지기 오승희

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올해는 나와 남편이 서울에서 강릉 정동진으로 이주한 지 어느덧 5년 차가 되는 해다. 정동진은 일출로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정동진은 90년대 어디쯤, 조금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은 바다마을이다. 이곳에서 영화 서점을 운영하며 매일 해가 뜨는 아침 시간에 맞춰 서점을 열고 있다. 처음으로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리려 했을 때 고민해야 할 것은 굉장히 다양했다. 먼저 서점을 운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이어야 했고, 자연과 가까이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리고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우리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위치, 또 지역 안에 ‘독립예술영화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했다. 그곳이 바로 강릉 정동진이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정동진리 마을. 서울에서 기차로 이동이 가능하고, 정동진리 마을에서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강릉 시내에 있는 독립예술영화관 ‘신영극장’에 갈 수 있다. 정동진은 강릉의 유명 관광지이지만, 지역 내에서 문화 공간은 단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았다. 책과 영화를 매개로 머무를 수 있는 역이자 광장으로서 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5년간 독립서점을 운영했던 노하우도 있었고, 평소 좋아하던 ‘영화’를 전문으로 내세워 서점의 정체성도 비교적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정동진의 아름다운 일출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 큐레이션 서점, 동해(East Sea)의 ‘이스트’와 영화(Cinema)의 ‘씨네’를 합친 이스트씨네. 이것이 이스트씨네의 첫 시작이었다. 1년 사계절 동안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서점을 열다 보니 이제는 그 누구보다 계절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있게 됐다. 여름이 오면 몇 달간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 오픈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나마 겨울에는 아침 7시까지 늦잠을 잘 수 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겨울잠을 잘 자두는 걸로 부족한 여름잠을 대신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미라클 모닝을 지키며 일출 시간에 맞춰 서점을 열게 된 이유에는 정동진이 해돋이 명소이기 때문도 있었지만, 저녁 늦게까지 서점을 운영했던 지난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저녁 늦게까지 손님을 기다리고, 식사도 제때 챙겨 먹지 못했던 서울의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동진에서의 아침을 선택했다.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하기 위한 또 다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안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찾아야 했다. 그래서 서점 공간에 카페를 더했고, 2층 공간에 북스테이도 시작하게 되었다. 이스트씨네 아침 오픈의 첫 시작은, 매일 같은 위치에서 서점 외관의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날의 날짜, 오픈 시간과 날씨를 서점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리면서 서점 오픈을 알린다. 어떤 날은 붉은빛이기도 또 어떤 날은 푸른빛이기도 한 정동진의 하늘과 바다, 서점의 풍경을 올리면서 매일의 안부를 알린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시작한다. 한 공간에서 24시간을 함께하는 부부 자영업자이다 보니 분업은 더 명확해야 했고, 각자의 공간도 필요했다. 빵과 음료를 맡고 있는 짝꿍은 전날부터 빵 반죽을 준비하고 쉬는 날에도 발효종을 키워가며 매일 아침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 일주일에 3-4명씩 방문하는 스테이의 청소, 세탁을 담당하며 매일 꾸준히 반복해야 하는 일들을 성실하게 해내고 있다. 반면 나는 기본적인 서점일 외에도 외부적인 홍보나 마케팅, 디자인, 새로운 영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이스트씨네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며 찾아오는 손님들을 응대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서로의 성향을 고려해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찾아 만들어낸 분업이다. 서점업을 한 지 10년 차에 만들어낸 우리만의 성과이기도 하다. 각자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해내면서 우리는 원하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 왔다. 점심 브레이크타임을 지키면서 밥을 챙겨 먹고, 이른 기상 시간을 고려해 저녁 시간의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휴무일을 지키면서 밀린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기도 하고, 목공이나 풋살 같은 취미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우리의 삶을 단편적으로 바라본다면 여유롭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기는 삶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내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 가게는 당신이랑 많이 닮았어요.”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어느새 단골손님이 되어버린 손님은 주인공 사치에에게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치에는 조금은 부끄럽지만, 흐뭇한 미소를 짓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라는 사치에 이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오니기리를 꾸준히 만들고 또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식들을 선보였던 이유는, 어쩌면 식당이라는 공간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우리도, 우리와 닮은 이스트씨네에서 새로운 아침 해를 함께 맞이할 누군가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공간에 담아,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로운 순간을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다행히도 지금 강릉 정동진에서 생활은, ‘행복’이란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한다. 봄이 되면 강릉새벽농산물시장에서 사 온 제철 식재료로 밥상을 준비하고, 강릉의 대축제인 단오제 시즌에는 신주를 나눠 마시며 강릉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준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에는 강릉해파랑길을 걸으며 강릉의 풍경들을 잔뜩 마주하기도 하면서, 바다를 바라보며 지역의 로스터리 원두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는 일상은 아주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은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 지역을 떠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만큼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정동진의 삶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스트씨네 서점지기 오승희]10년 정도 편집디자인 일을 하다가 ‘영화치료’ 공부를 시작하면서 삶 속에서 영화를 더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독립서점 운영, 치유 프로그램 운영 매니저, 문화기획자 등 경험했던 다양한 일을 바탕으로 이스트씨네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eastcine@naver.com인스타그램 @eastcine_bookshop트위터 @eastcine_books블로그 https://blog.naver.com/east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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