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한 뼘 - 우리는 종종 잊는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 서울수집

강서구 한 뼘우리는 종종 잊는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는 평소 길을 걷다 마주하는 것들의 과거를 쉽게 알 수 없다. 그냥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을 통해 사라진 풍경을 재발견하고, 잊힌 기억을 되새길 수 있다.“여기 예전에 사람들이 살았어요.” 과거의 한순간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를 맞이한 곳에서 ‘사람들이 살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속으로 ‘여긴 공원인데, 여긴 하천인데, 여긴 건물인데’ 되뇌며 흔적을 찾다 보면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고서야 평범한 사람들의 ‘터’는 더더군다나 알 수 없다. 누군가 알려주거나 기록되지 않으면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된다. 가끔 동네 지명이나 오래된 가게 상호, 도로명 주소로 남아 있지만 관련하여 아는 것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과거를 되짚는 이유는 ‘터’에 대한 이해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지역·도시가 변하면서 무엇이 형성되고 소멸하였는가를 탐구하는 행위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과정과 경험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지역·도시의 지금을 짚어 볼 수 있다. #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엔, 초록마을로와 봉제산 근린공원 내게 산은 자연의 푸름을 전하는 멋있고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특히,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둘레길이나 산책로로 이용되며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 가까이에 있어 익숙한 동네 뒷산의 경우가 그렇다. 동네 뒷산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본 곳에는 모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사당동, 방배동, 봉천동, 개포동, 신림동…….등등. 신경 안 쓰고 그냥 지나치면 잘 모르는데, 알고 보면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에 ‘왜 여기서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강서구에 위치한 봉제산 근린공원. 커다란 나무와 꽃이 곳곳에 심겨 있다. 물이 흐르고,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벤치도 설치되어 있고, 놀이터와 생태도서관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 사람이 살았었다. 그것도 40년 동안이나. 당시 기사자료를 찾아보면 무허가 판자촌이긴 했지만, ‘초록마을’이라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관광회사에서는 연탄을 기증하고 배달 봉사활동도 진행했다. 대학생들도 와서 벽화를 그렸다. 하지만 그 마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초록마을로’라고 하는 도로명으로만 남았다. 구청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니 해당 도로명은 2010년에 지정되었고, 일대에 있던 초록마을에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그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초록마을로의 초록마을은 당시 판자촌이었던 초록마을임을 추정할 뿐 확답을 받을 순 없었다. 초록마을은 언제부터 형성이 되었던 것일까? 언제부터, 누가 초록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일까? 40년 동안 있다가 왜 갑자기 철거한 것일까? 마을은 사라졌는데, ‘초록마을로’라는 이름은 왜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물론, 국공유지에 무단으로 허가받지 않은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것은 불법이다. 그걸 알지만 경제적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무허가 집이라도 지어서 살았던 것일 테다. 그렇게 살아가던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허상이나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러한 과정은 강서구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 속에 무한히 반복되어 온 역사이자 사건이자 현상이었다. 또한 동네 뒷산뿐만 아니라 천변, 고가다리 아래서도 종종 목격된다. 광주의 성매매 집결지 인근 광주천에는 1920년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하지만 일제의 도시개발계획으로 ‘학강정 갱생지구’를 만들어 이주하게 했다. “학동과 방림동을 나누는 광주천, 지금은 천변 도로가 생긴 자리에 '없는' 사람들이 집을짓고 살았다. 땅 없는 사람들과 전쟁에 끌려갔다가 몸뚱이 하나만 보전해서 온 외지인들이모여 살던 곳. 그들 중에는 황해도에서 온 이들도 3000명가량 되었다니 학동은 하나로 통칭할수 없는 몸들의 결집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 데서나 모여 살았던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역사가학동에 남겨져 있다. 1920년대에도 광주천변에 몸들이 모여 있었다. 광주가 일제의'대광주 건설계획’에 의해 근대화되기 직전, 직강화 공사가 시행되어 넓어진 천변 부지에 사람들이모여 직접 땅을 다지고 판자를 끌고 와 토막집을 지었다. 어디서 어떻게 살지 아무 미래도계획할 수 없었던 그들을 '궁민‘이라 불렀다. 장마철이면 강물이 불어나서 몇 명이 물에 쓸러가도 갈 곳 없어 광주천과 무른 땅을 뭉개며 살아가는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이다. 범람마저 쫓아내지 못한 그들을 내보낸 건 학동의 첫 재개발 공사였다. 직강화 공사와 더불어개발된 하천부지를 민간에 팔아 상업지와 주택지를 건설할 계획이었던일제의 광주부는 궁민들을 한겨울에 쫓아내고 토막집들을 부수어 버렸다.1932년의 '궁민가옥 철훼 사건'이다. 도시를건설한다는 계획 아래 계획되지 않은 몸들을 눈앞에서 치워 버린 폭력 사태가 도시화 과정에서일어난 것이다. 한겨울에 거리에 나앉게 되어 꼼짝없이 얼어 죽을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그들을구제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생겨 지역과 중앙 언론에 알려진다. 그 결과 일제는 다른 부지로궁민들을 이주시켰지만, 그 숫자는 겨우 30호에 그친다. 이후 1936년 일제는 '학강정 갱생지구'라는 이름의 구역을 만들고 궁민들을 계획적으로 이주시켰다. 학동 팔거리는 그런 갱생지구들 중 하나였다. 집들은 틈을 모르고 벽을 맞대고 있었고, 옆집은 물론 앞집의 동태도 파악할만큼 골목이 좁았다. 서로 통제하고 감시하도록 계획되어 흡사 판옵티콘 같은 수용 공간이었다.그런 공간에서나마 사람들은 누가 굶지는 않는지 자연스레 서로 안부를 확인하며 살아갔다.”<이미지와 함께 걷기> 김서라, p96~97 서울 목동개발 이전에 안양천 일대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목동은 절대농지로 지정되어 있었고, 안양천이 가까이에 있어 침수되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화곡동·신정동·신월동이 먼저 개발되어 주택단지가 조성된 것이다. 안양천을 따라서는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어 뚝방 동네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1988년 올림픽을 대비하여 안양천이 정비되고, 목동이 개발되면서 그 흔적은 완벽히 사라졌다.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일부 세대는 경기도 시흥으로 이주하여 정일우 신부의 도움을 받아 목화연립이라는 건물을 짓고 살아갔다. #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공원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가족도 보이고, 벤치에 앉아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사람도 보이고, 운동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이 순간이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현재의 아름다움과 평화를 위해서 과거의 무언가는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두 가지가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인가?국공유지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아간 것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그런데도 왜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아갔는가?’하는 지점에서는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깨끗하고 멀끔해진 도시경관 속 얼마나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생겨났는가?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 사라진 것들은 진짜 사라진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저 눈에 잘 안 보일 뿐 산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서울수집바라는 이상보다 가까운 현실을 조명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서울을 수집하고 탐구하는 도시기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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