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좋아하기 어떤 사람이 한 동네에서 머무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고소한 원두 냄새를 풍기는 카페, 좋아하는 산책로, 안전한 거리, 마음 둘 수 있는 단골 가게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늘 그것이 끈질긴 땅이라고 생각해 왔다. 흙은 눅눅한 데다 습기가 가득해서 늘 물기를 머금 고 있는 것만 같은 땅. 흙의 생태적 변동과 온도에 민감하지 않은 땅은 그다지 아름답진 않다. 그 자리에 나는 식물은 늘 그 자리에 똑같이 자라나는 것이다. 나는 방화동에 왔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나무는 내가 방화동에 와서 제일 먼저 본 것이다. 집 앞에 있는,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지 모르는 나무를 관찰하는 것은 나에게 곧 익숙한 일이 되었다. 방화 3동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것인데, 그 나무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 땅에서 나와 저 나무가 만난 것을 생각한다. 나(혹은 나무)는 방화동에 살고 있다. 나(혹은 나무)는 방화동에 살았다. 나(혹은 나무)는 방화동에 살 것이다. 이것은 지나간 현재와 다가올 현재에 해당한다. 방화동은 서울의 끄트머리에 있는 구에 속해있는 동네인데, 어렸을 적 부터 쭉 살아왔던 친구들이 많은 곳이다. 그러니까 한번 발을 들이면 떠나가기 어려울 만큼 매력이 있는 동네라는 이야기다. 나 역시 여덟 살 무렵 방화동으로 이사 왔다. 나의 키와 둘레보다 훨씬 커다란 나무를 보았을 때 이 동네에 대한 모든 첫인상이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둘레가 두꺼운 나무가 꽤 있는 곳, 대로변보다 샛길을 찾게 되고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낯선 곳에 가기를 망설이게 되지 않는 곳, 두 팔로 안을 수 없을 만큼 거대 한 시간이 숨어져 있는 시간을 품고 있는 곳. 이것은 앞서 얘기한 끈질긴 속성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무언가 끈질기게 한 경험이 많지 않다. 늘 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 들은 여기저기 많이 분포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한 번씩은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정수정(가명)은 나와 달랐다. 정수정은 나와 어릴 적부터 방화동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단 한 명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정수정과 첫 만남은 그녀가 잃어버렸던 강아지를 함께 찾았던 기억부터 시작된다. 당시 정수정과 함께 살던 강아지는 짧은 흰 털을 가지고 주둥이 가 길쭉했던 아이였는데, 한창 뛰어놀고 싶어 하는 나이(인간으로 치면 6-7 살 정도 되었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방화 3동에 있는 근린공원에서 언니와 놀고 있었고 정수정은 홀로 울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언니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정수정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고 이내 우리는 함께 강아지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정수정이 핸드폰 사진으로 보여준 강아지는 아 무것도 모르는 채 해맑게 혀를 내밀고 미소 짓고 있었다. 정수정은 강아지를 찾았다. 정수정이 아니라 정수정의 어머니가 아파트 단지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있던 할머니들에게서 찾았다며 연락을 해 온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정수정과 자연스레 친해졌고(언니는 우리와 나이 차이가 꽤 났으므로 같이 어울려 다니는 일이 줄었다) 가끔은 정수정의 강아지도 만나게 되었다. 정수정의 강아지 도도(가명)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모를 만큼 커다란 눈망울을 재빠르게 깜빡거리는 애였다. 도도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무언가의 냄새를 맡으며 뛰어다니고 있을 것 이다. 정수정의 끈질김은 익숙한 것에 있다. 이것이 나와 다른 점이다. 정수정 은 익숙한 길로 산책하는 과정을 즐긴다. 똑같은 것에서 안정감은 물론이고 변화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길을 잃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사실 방화동에서 길을 잃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방화동에서 이십여 년 넘게 살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나의 산책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한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벗어남은 어쩐지 끈질김과는 다른 것이어서 나는 나를 끈질김의 부류와 다르다고 생각해 왔다. 그때 정수정이 나에게 해 주었던 말이 있다. 늘 좋아하기 때문이야. 정수정은 나에게 늘 좋아하기 때 문에 벗어나도 문제가 없고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올 힘이 생기는 거라고 말했다. 간혹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자리에 늘 똑같이 자라나는 식물 같은 정수정, 색다른 길을 찾아도 꼭 이어지는 길과 같은 정수정, 민감하진 않지 만 그만큼 포용력이 강한 정수정. 나의 끈질긴 땅은 정수정과도 닮았다. 그 리고 그것이 방화동과도 같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정수정이 살고 있는 방화동과 우리가 만난 동네에서 여전히 같은 길로만 산책을 하는 정수정을, 더 이상 새로운 길을 찾지 못했지만 그것에서도 만족감을 느끼게 된 나를. 그 모든 것을 우리는 끈질기게 좋아하고 있다. 정서현방화동 거주. 게으르게 사는 것에 관심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