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부 구보씨의 일일 “구보씨는 한 지식인이 신경숙의 “외딴 방”에 대해 떠드는 소리를 듣고는 큰숨을 벌컥 들이키고 한숨을 내뱉었다. 소설 속 소녀는 매일같이 열한시 무렵에 찾아오는 우체부를 보며 도시로 떠나는 상상을 하나, 우체부는 속절없이 그 소식만은 전해주지 않는다고. 구보씨는 다른 생각을 해봤다. 시인에게 소식을 전하다 “시인과 우정을 나누는 우체부를 다시 찾아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서글픈 일이지만, 환상과 기대 속에서도, 영화 ‘일 포스티노’의 세계는 끝난 것 같다. 어떤 세계는, 카세트테이프에 대한 추억이나 마찬가지로 나이 든 사람들의 추억으로 남았다. 앞서 적은 소설 속 장면이 해독 불가능한 시기에 접어 든 셈이니까.우체부인 구보씨는 사실 우체부에게 사연이란 일감일 뿐이며, 자신은 그 ‘사연의 내용’을 관장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더 이상 사연을 편지에 담지 않는다. 구보씨는 자신과 동료들의 처지를 떠올렸다. ‘우리에게 세상은 여섯자리 아니면 다섯자리로 모두 표현된다. 우리는 창고에서 품물을 들고 나와 숫자들 사이를 오간다’라며 말이다. 실제로 구보를 비롯한, 우체부들은 주소를 숫자로 부호화한 세계에서 일한다. 모든 건물은 다섯자리 혹은 여섯자리의 ‘우편번호’가 배정되어 있고, 정해진 약속 코드들 사이를 오가며 사연이 담긴 편지와 소포를 옮기는 일이다. 몇해 전 정부당국은 여섯자리 우편번호를 다섯자리 ‘국가기초구역번호’로 이름이 바꿨는데, 얼마 전 도로명 주소를 익히는데 한참 고생한 기억이 있다. 차라리 이런 걸 알아줬으면 싶었다.게다가 구보를 비롯한, 우체부들에게 더 현격한 변화가 있다. “외딴 방”의 시대까지 오갔던 사연을 담은 편지는 거의 없다, 라디오의 사연보내기와 연애편지는 물론. 간혹 군에 간 남자와의 편지, 대개는 뭔가의 명세서, 혹은 정기구독물에 불과하다. 편지가 장사가 안되니, ‘등기’와 ‘소포’로 채운다는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지방엔 직영이 아닌 별정우체국을 들였고, 시설관리를 위한 일종의 하청업체를 만들어서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릴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저 멀리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에서는 우편물이 줄어들자 수익을 내기 위해 KFC의 후라이드 치킨을 배달한다니, 만국의 우체부들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우체국이 금융업과 택배계로 진입하자, 꽤 많은 경쟁자가 생겼다. 덕분에 노동의 내용과 강도가 달라졌다. 편지가 사라졌고, 소포는 박스단위로 커졌달까. 편지(와 전보)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소포는 ‘택배’로 바뀌었다.어떤 명절날이었다. 택배가 평소 두 배는 됐다. 하루 택배 개수가 만개라면, 명절날엔 적어도 1.5배 많으면 2배는 됐다. 이러나 저러나 배정된 ‘건수’를 채워야 했다. 구보씨는 툴툴 대며, 택배를 차에 실었다. “지리산 부각”, “샤인머스켓”, “고창 멜론” 같은 것들이 적혔다. 옆을 지나던 동료 미진에게 “남의 먹을 것 옮기는 딸배 다됐다”는 짖궂은 농담도 던졌다. 그러면서 옆을 둘러봤다. 때가 때인지라 노는 차가 없었고 동료들은 말없이 일만 했다. 우체국장도 일에 나설 정도였다. 군말 없이 일해야 했다. 배달이 시작됐다. 어디나 힘들다. 아파트는 동마다 배달할 게 너무 많아서, 달동네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난코스가 수두룩해서 말이다. 명절엔 어디나 우체부에게 최악의 근무지다. 도로서 만난 미진은 오토바이로 우체국과 배달지 사이를 열 번이나 오갔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구보씨는 또 물었다. “전화번호 틀린 건?” 미진은 답했다. “말도 마, 썅.” 둘은 제 갈길을 갔다.한 시간 일찍 여덟시에 출근했던 구보씨는 여섯시에 우체국에 돌아왔다. 간단히 밥을 먹고, 내일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구보씨가 여덟시가 돼서야 일을 마쳤다. 미진은 그제서야 우체국에 돌아오며 말했다. “아침마다 안전체조를 하면 뭐해. 일이 줄어야 안다치지.” 구보씨는 어색하게 말했다. “그러게.” 구보씨는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하늘이 붉었다. 묘하다고 말할 법도 했지만, 피곤한 그는 냉랭했다. 집 앞에 도착했고, 우체통부터 살폈다. 비어있었다. 잠시 뒤 누군가가 달려왔다. 구보씨는 뒤를 돌아봤다. 우체부였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능숙한 손으로 구보씨 우체통에 고지서를 쑥 넣었다. 헐떡이다가, 다시 서둘러 나갔다. 구보씨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우체통에서 갓 넣어진 고지서를 꺼냈다. 지금은 그저 피로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명절이 끝났다. 이 어설픈 이야기로, 방방의 여러분이 구보씨와 그 동료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길 바란다. 도시의 편리함은 그 자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그 편리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누군가의 손끝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그 지나친 손길을 다시금 돌아보고,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소준철도시사회학 연구자로 여기저기서 좌충우돌하고 있다.http://juncholkimso.me 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