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에서 문화기획 시작한 이야기 이런저런 일을 거쳐 영등포 YDP창의예술교육센터, 줄여서 ‘창터’라고 부르는 공간에서 생기는 이야기를 모아 문화예술교육, 전시, 축제 등으로 만들고 있다. 창터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그래픽 디자인과 각종 미술/디자인 강의로 감사하게도 꽤 오랜 기간 프리랜서로 살았다. 어느날 문득 “나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아?” 하는 고민에 빠졌고 상당히 충동적으로 일을 전부 그만뒀다. 곰곰이 내가 좋아하던 걸 되짚어보니 사람들과 다채롭게 연결되는, 문화예술이 있는 현장이었다. 재밌고 엉뚱하고 때로는 느슨하게. 그게 기획이라는 걸 알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아봤다. 당시 내가 만들 수 있는 거라곤 미술 관련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밖에 없었는데 마침 영등포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사를 뽑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따놨던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운 좋게 최종 선정되고 기쁜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처음 맡은 일은 문래동이라는 동네를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기획이었다. 문래동은 철공소가 밀집한 동네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 내내 “지역에 뿌리내리는 기획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란 질문이 둥둥 떠올랐다. 지역이란 단어가 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궁금함을 남겼다. 그다음 주어진 일은 구) 양평2동 주민센터를 ‘청소년을 위한 창의예술교육센터’로 리모델링하는 초기 연구 과정에 함께 하는 거였다. 지역이란 뭔지 궁금했는데, 마침 지역에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니! 창터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창터가 지어질 당시는 코로나가 막 시작하던 시기였다. 기후 변화로 전환되는, 이전과는 다른 시대를 살아갈 청소년이 어떤 예술교육을 경험하면 좋을까?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잇게 하려면 어떤 실험의 장을 만들어야 할까? 영등포 사람들은 어떤 공간을 원할까? 여러 질문이 오고 갔다. 전환 시대에 필요한 ‘마을형 창의예술교육 공간’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사례 연구도 하고 여러 현장을 만나러 다녔다. 청소년 문화예술공간, 전환 마을, (기후 변화에 대응해) 전기가 없는 카페, 지역 주민, 청소년, 예술교육가, 길잡이 교사 등등…. 신기하게도 다들 다르지만, 비슷한 말을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다양한 세대가 드나들면 좋겠다, 가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속 가능하면 좋겠다, 마을이 함께 하면 좋겠다, 가변적인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 연구가 끝나니 창터에서 일어날 일이 궁금해졌다. 직접 보고 연구가 유의미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 궁금함으로 일을 이어 나갔다. 주민센터로 쓰이던 3층짜리 건물을 모든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설계부터 시작했다. 공간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사업 기획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공유 부엌에서 비건 요리 커뮤니티가, 손작업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제작할 수 있는 (재봉, 목공 등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촬영, 음향 장비가 있는 공간에서는 미디어를 활용하는 청소년 프로젝트가 생기기도 했다. 설계가 끝나고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됐다. 현장에 갈 때마다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구상한 것들이 실현되는 모습이 놀라웠다. 2021년, 코로나가 극심한 시기에 ‘YDP창의예술교육센터’가 개관했다. 2024년, 창터는 신기하게도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경계 없이 넘나드는 공간이 됐다. 청소년이 공부하는 옆 테이블에서 동네 주민들이 수다를 떨고 어린이들은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개관할 때 하루에 3명 오던 공간이었는데 이제 수백 명씩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보면 생경하기도 하다. 미처 생각지 못한 일들도 자주 일어나고, 연구 내용이 안 맞아 사업 방향을 바꿀 때도 있지만 이리저리 흔들리는 순간조차 즐겁다. 지역을 탐색하고 문화가 실행되는 새로운 현장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여전히 배우고 있어서 쑥스럽지만, 문화기획자로 불리고 싶어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꾸준히 “저는 문화 기획하는 사람이에요.”라고 소개한다. 재단 소속으로 일하면서 기획자인지 행정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렌즈를 낀다고 생각한다. 기획이 필요할 때는 기획의 렌즈를, 행정이 필요할 때는 행정의 렌즈로 바꿔 낀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이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라고도 생각할 때도 있다. 지역(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인 생각과 취향을 조금 담아 만든 무언가에 의미 있다, 재미있다는 피드백을 듣는 게 요즘의 즐거움이다. 미래에 뭘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지역을 만나고 사람의 경험을 만드는 범주에서 무언가 하지 않을까 싶다. 경험의 조각들이 계속해서 변하고 흘러가고 생성되며 조금씩 흔들리고 나아가 더 멋진 시간에 도착하기를 바라면서. 박현빈영등포 YDP창의예술교육센터(창터)에서 생기는이야기를 모아 문화예술로 잇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