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문화빨대의 문화예술 생활 / 김수홍

B급 문화빨대의 문화예술 생활 내 별명은 B급 문화빨대다. 제주살이할 때 만난 어느 시인이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 주변을 빨대 꼽았다는 듯 서성거리는 나를 보고 문화빨대라고 불렀다. 그런데 막귀인 나는 클래식 공연보다 인디가수의 거리나 카페 공연이 더 좋은 사람이다. 게다가 고전으로 불리는 어려운 책이나 난해한 현대미술 등을 만나면 그저 난감할 뿐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 즉흥적으로 쉽게 다가오는 B급 감성의 문화예술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즐기기만 할 뿐, 고급 문화예술에 대한 지식과 경험 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B급을 문화빨대 앞에 붙여 B급 문화빨대가 내 별명이 된 것이다. 문화예술과는 거의 담을 쌓은 채 분주하게 살던 서울을 떠나 제주로 가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대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이 좋았다. 차츰 제주살이에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어떤 갈망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잘 몰랐던, 그래서 내 일상에서 늘 뒷전이던 문화예술에 대한 궁금증 말이다. 그때까지 읽은 책이 별로 없다 보니 도서관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이 수두룩했다. 일단 독서 모임과 인문학 공부 모임에 가입했다. 내 목소리가 하모니와 어우러지는 느낌이 궁금해서 합창단에도 들었다. 시간이 되는 대로 각종 문화예술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전시회나 공연 등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살아오면서 스스로 몰랐던 나의 색다른 모습, 그러니까 내가 문화예술적인 어떤 것과 만나 무언가를 느끼는 그 순간을 무척 재미있어하고 즐긴다는 것을 일게 된 것이다. 주로 관객의 입장으로 문화예술 생활을 하다 보니 슬슬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어설프고 수준이 낮을지라도 직접 창작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런데 살아왔던 삶이 문화예술과 전혀 다른 분야였다 보니 창작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악기 그림 연기 사진 영상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글쓰기를 먼저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히 그 무렵 참여했던 한라도서관의 프로그램이 동화를 쓰고 문집을 내기였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낸 동화 문집에는 나의 첫 예술창작 결과물인 <타이어의 첫사랑>과 <고백>이 실렸다. 행운은 이어져 시를 공부하고 쓰는 모임을 알게 되었다. 시인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던 내가 그렇게 시를 읽고 쓰게 되었다. 그것은 편하게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낭만을 즐기는 아지트 같은 장소로 조천리에 만든 공간 이름을 ‘시골책방’ 또는 ‘시(가 있는) 골(목) 책방’이라 이름 지은 이유가 되었다. 시가 있는 골목 책방은 시의 은유와 골목의 고즈넉함과 책이 지닌 넓은 폭이 좋아 조천리라는 제주 시골의 삼거리 골목에 마련한 공간이었다. 조천리에 살던 사진작가들이 앞장서 만든 동네 모임에 참여해 비수기에 비어있던 해녀 창고에서 조천리 동네사진전을 몇 차례 가졌다. 조천리 토박이 주민들과는 함께 <조천리 용천수 지킴이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조천리, 용천수와 푸른 하늘의 마을>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와 <마을소개 핸드북>을 공동제작 했다. 그렇게 내가 사는 마을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그 마을에서 문화하고 예술하는 로컬(Local)적인 문화빨대이기도 했다. 제주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꾸준히 올린 내 SNS를 본 한 독립출판사의 제안으로 <명랑다크한 주인장의 시가 있는 골목책방>이라는 에세이집을 출판했던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인생 사건이었다. 마치 그 인생 사건이 내 삶의 중요한 여정에 마침표를 찍어준 듯, 나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오랜 제주살이를 끝내고 3여 년 전에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온 나는 이전에 서울 살았을 때의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내려놓을 것은 어느 정도 내려놓고는,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제공하는 문화 예술적인 인프라를 시간과 능력이 되는 만큼 즐기려고 여러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이벤트에 참여했다. 제주살이 막판에 시민극단 형식으로 무대에 서고 희곡집을 낸 기억이 좋았기에 <선유낭만>이라는 희곡 낭독모임을 3년째 하고 있다. 영등포문화재단의 도움으로 희곡낭독모임 구성원들과 함께 선유낭(독과의) 만(남)이라는 스마트폰 영화를 만들어본 것도 재미있었다. 요즘은 올 연말 홍대클럽공연을 꿈꾸며 예술단체 <아토>에서 젬베를 배우고 있다. 영등포 마을기록단에 참여해서 문래예술창작촌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작업도 흥미진진하게 진행 중이다. 이 글을 쓰기 직전인 9월 13일 저녁에 양천문화재단의 지원사업으로 공연집단 <강철무지개>가 만든 입체낭독극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에 참여한 것은 정말 이색적이고 멋진 경험이었다. 양귀자 작가의 원작을 강철무지개의 김윤주 대표가 각색한 이 작품에 올여름 내가 대학로에서 관람했던 연극 <가족 같네>에 출연한 대학로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선 것이다. 내가 연기한 홍 선생에 대한 인물 표현이 자연스럽고 창의적이라는 연출가와 배우들의 칭찬을 듣고는 쑥스러워 “나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진 A급이 아니고 그저 이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B급이기에 편안하게 연기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다. 나는 예술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적도 없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 진지한 고민과 부단한 노력을 시도하지 않은 일반인일 뿐이다. 다만 뒤늦게 나이가 들어가던 중에 만난 문화예술 생활을 내가 재미있어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슬기로운 노후생활을 위해 선택했을 뿐이다. 얼마 전 본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에서 야쿠쇼 쇼지는 나뭇잎 사이로 순간적으로 비치는 햇살을 사진으로 찍고, 취향 저격하는 올드팝을 듣고, 색깔이 뚜렷한 문고판 책을 읽으며 노후의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나가려고 분투 중이었다. 그렇게 사람들 각자가 좋아해서 선택한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내가 지리멸렬하게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에서 조도 B로 문화하고 예술을 하면서 간신히 그리고 희미하게 반짝거리듯. 김수홍다정한 개인주의자와 무심한 이기주의자 사이어디쯤을 여전히 배회 중인 초로의 아저씨가 내 자화상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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