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 있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 / 이숙희

책방이 있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 부산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직장 다니다 결혼하고 미국에 몇 년 살다 김포에 정착하기까지, 참 많이도 옮겨 다녔다. ‘지역’에 대한 이렇다 할 고민이나 가치관, 인상적인 경험을 차곡차곡 쌓기 어려웠다.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해결했고 학교와 직장, 가족, 교회가 인간관계의 전부였다. 얼마 안 있어 (더 나은) 다른 지역으로 옮길 거라는 계획과 기대 때문이기도 했고, 설령 내가 사는 지역에 조금 관심이 생겨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다. 지금의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김포에 이만큼의 애정을 갖게 된 건 책방 덕분이다. 시작은 무척 이기적이었다. 당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직접 마음에 드는 책을 선택하고 사는 경험을 할 만한 곳이 가까이에 없었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일산, 파주, 인천, 서울의 어린이도서관과 대형서점, 작은 책방을 찾아다니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디 나뿐이었겠나. 비슷한 마음을 가진 아이 엄마들이 많이 있었기에, 자영업을 해본 적도 없고 서점 운영에 대해 조언을 구할 선배나 동료 하나 없이 무턱대고 문을 연 허름하고 작은 책방은 지역에서 환대와 사랑을 받으며 자리를 잡아갔다. 아이들을 환영하는 곳, 종류가 많지는 않더라도 래핑된 책들이 아닌 직접 펼쳐 보고 선택할 수 있는 책들이 있는 곳, 아이들을 위한 책뿐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책도 추천받을 수 있는 곳,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고 독서모임도 할 수 있는 곳, 좋은 사람과 책과의 만남을 통해 꿈을 찾고 키울 수 있는 곳. 오래된 주택가 골목 열두 평 공간에서 아이들도 자라고 어른들도 자랐다.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오가며 인사하고 같이 책을 읽고 책을 추천하고 정보를 주고받고 때론 친구가 되고 때론 동료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골손님들이 다른 동네에 책방을 여는 일도 생기고, 마을공동체를 만들거나, 아이 학교와 직장에서 독서모임을 만드는 일이 이어졌다. 그곳에서도 아이들과 어른들이 자라고 꿈을 키우며 새로운 독서모임과 일자리와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꿈틀책방은 어느덧 한자리에서 10년 차를 향해 가고 있다. 돌아보면 ‘김포에서 책방하길 잘했다’ 생각하게 만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을 하나 말하라면 2020년 12월 31일을 꼽고 싶다. 코로나가 세상을 두려움 속에 가두었고, 아이들은 학교도 도서관도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집안에만 있어야 했던 그해의 마지막 날. 퇴근 준비를 하는데 손님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오더니 카드를 내밀며 20만 원을 결제해달라고 했다. 책값을 미리 결제해 놓고 책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그분도 그러려니 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책값을 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책을 읽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 한 명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 달려온 것이었다. “얼마 되지 않지만 한 달에 한 번 아이가 책방에 와서 갖고 싶은 책을 사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괜찮으시다면 사장님이나 다른 어른이 책을 읽어줄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이런저런 비영리단체에 후원금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사는 동네의 아이들에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고민하던 그분은 꿈틀책방이 생각났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큰돈이었고 어깨가 무거워지는 돈이었다. 혹여 내가 가벼이 사용할까 싶어 조심스러웠고, 귀한 뜻이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참을 고민했다. 지역에서 작은 공간을 운영하며 배운 게 하나 있는데, ‘혼자 다 잘 할 수 없다’는 거다. 책방 실무, 가령 책 주문과 청소와 회계 같은 거야 당연히 혼자 책임지고 살피지만, 책방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은 가능한 선에서 단골손님들과 공유하고 때론 도움을 요청하고 때론 협업을 제안하기도 한다.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 서로의 존재를 늘 귀하게 여기고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선순환을 일으켜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매일 책방 문을 열고 닫는 여러 해 동안 경험했다. 책방 손님이자 사회복지사인 분에게,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가에게 2020년 마지막 날 책방에 뿌려진 씨앗을 함께 가꿔보자고 제안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연결하고 후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일은 김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 활동을 하는 것은 ‘어’린이도서연구회 김포지회에서, 후원금을 모아 한 달에 한 번 책방에 오는 아이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원하는 책을 선물하는 것은 ‘꿈’틀책방에서 하기로 했다. 그렇게 ‘복어꿈’의 탄생했고, 동참해주시는 여러 후원자들이 생겨나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그전엔 한 번도 책방에 온 적이 없었지만 복어꿈 덕분에 3년 동안 매달 책방에 와서 책을 읽고 갖고 싶은 책을 선물 받은 두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고, 그 자리를 다른 아이들이 채워 현재 초등학교 여섯 명의 아이들이 복어꿈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듯 ‘내가 사는 동네의 아이 한 명에게 일 년 동안 한 권의 책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4년 동안 여덟 명의 아이에게 매달 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책을 읽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는 변화를 불러 왔다.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이 흘러서 눈덩이 굴러가듯 커지고 좋은 만남과 좋은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일.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참여할 기회를 만드는 일. 나의 작은 참여가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직접 지켜보는 일. 이런 경험을 하나둘 쌓아가며 책방지기와 손님들은 지역에 대한, 동네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고 있다. 책방이 있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숙희꿈틀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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