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3 / 송한별

연재소설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3 다음 날 오전. 서온은 삼거리에서 낯이 익은 고양이와 마주쳤다. “안녕, 삼치야.” 이름을 부르자 낮은 담장에 엎드려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고양이가 쩌억, 하품을 했다. 서온은 이제 그것이 고양이 나름대로의 대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도저 같은 캣맘의 주입식 교육의 효과는 대단해서 서온은 고양이들의 간단한 몸짓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들 이름도 함께 배웠는데, 동네 대장 격이라는 이 고양이가 삼치가 된 것은 고등어 무늬라서 고등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뻔하다는 알 듯 말 듯한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서온이 스킬을 발동하자 꾸벅꾸벅 조는 삼치의 머리 위로 상태창이 떠올랐다. 〔삼치. 수컷. 세 살. 중성화됨.〕〔졸립니다.〕 늦은 시간까지 강행군을 한 보람이 있었다. 상태창은 이제 제법 상세한 정보까지 알려 줬다. 이대로 차근차근 숙련도를 높이면 언젠가는 캣맘들보다 고양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렇게까지 고양이를 잘 알아서 어디다 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으니, 서온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고양이들에 대해 배우는 건 그리 싫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꽤 재미있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고양이 이름은 그 고양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짓는 것이 관례라는 것이 그랬다. 그래서 고양이 이름은 다소 통일성이 없었고, 그중에는 제법 독특한 것도 있었다. “안녕, 제빵사야.” 서온은 어셈블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고양이에게 인사했다. 검은 바탕에 두 앞다리에만 하얀 얼룩이 있는 고양이가 꼬리를 짧게 흔들어 대꾸했다. 사장이 고양이였나 하고 착각하게 만든 고양이, 제빵사는 사람이 익숙한 듯 대수롭지 않게 서온을 대했다. 서온은 그 고양이가 흰 장갑을 신은 것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으나 처음 제빵사를 발견한 사람은 빵 반죽을 하느라 양손이 밀가루로 하얗게 물든 모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엉뚱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맛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 외에도 고양이들에게는 유자, 나초, 코점이, 똘빡이, 할머니 같은 다양한 이름들이 있었다. 서온이 가만 서서 쳐다보자 제빵사가 서온의 다리에 옆구리를 슥 문질렀다. 〔제빵사는 놀고 싶습니다.〕 제빵사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강력하게 의사 표현을 했으나 서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돼. 일할 시간이야. 가서 혼자 놀아.” 서온은 짐짓 단호한 투로 말해 보았으나 제빵사는 알아듣지 못하고 몸을 틀어 다시 한 번 옆구리를 비볐다. 고양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건 좋은데 고양이가 알아듣게끔 말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은 단점 아닌 단점이었다. 서온은 제빵사도 알아듣게끔 다리로 슥 몸을 밀어내며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 제빵사는 못마땅하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마지못해 물러났다. “짜증 내는 것도 귀여워. 열받아.” 서온은 툴툴거리면서 유리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고양이들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정시 출근을 지킬 수 있었다. 서온은 틈만 나면 맥 빠지는 말장난을 걸어오는 사장을 외면해 가며 열심히 일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 탓에 졸리기는 했으나 커피를 냅다 들이부으면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출근 전에 시들시들한 뇌를 카페인에 절이려고 들이닥치는 직장인들을 상대하다 보면 바빠서 정신이 없기도 했다. 그러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출근길 웨이브가 끝나고 난 뒤, 긴장이 탁 풀어졌을 때였다. “어, 뭐야!”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려던 손님이 깜짝 놀라 비명을 빽 내질렀다. 서온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제빵사였다. 밖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제빵사가 손님이 밀어 연 문틈 사이로 고개를 들이민 것이다. 손님이 무신경하게 들어섰으면 제빵사의 야심찬 계획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손님은 마침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갑자기 고양이가 달려들자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문을 콱 닫아 버렸다. “손님? 괜찮으세요?” 사정을 잘 모르는 사장이 고개를 기웃거리면서 손님을 챙겼다. 서온은 침을 꼴딱 삼켰다. 다행히 문에 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빵사는 절묘한 타이밍에 몸을 뒤로 뺐다. 조금만 늦었으면 가느다란 목이 유리문 사이에 끼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되었으면……. 서온은 그다음 일을 상상하다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불쑥 먹은 것을 죄다 토할 것만 같았다. 가까운 중고차 매매 단지의 이름이 들어간 조끼를 걸친 손님이 시뻘게진 얼굴에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사장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아니, 무슨 고양이가 막 드나들어요? 여기서 키우는 거예요?” “저희 집 애는 아닌데, 아이고, 놀라셨겠어요. 물이라도 한 잔 드릴까요?”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짐승 새끼 들어오지 않게 관리 좀 잘해 주세요. 더럽게, 씨.” 사장이 싹싹하게 굴어도 손님은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크게 놀란 서온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질 못했다. 다리가 벌벌 떨려서 카운터를 짚은 손을 떼면 금방이라도 넘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서온의 귀에 더럽다, 는 말 한 마디가 쿡 날아와 꽂혔다. “……쟤는 죽을 뻔……했는데요…….” 서온은 자기도 모르게 툭 말을 내뱉었다.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카페 안에 다른 사람이 없는 탓에 소리는 서온이 의도한 것보다 더 크게 울렸다. 그때까지도 욕지거리를 씹어 대던 손님이 인상을 찌푸치며 서온을 쳐다봤다. “뭐요?” “쟤는, 저 고양이는. 문에 머리가 껴서, 죽을 뻔, 했다고요.” 서온은 더듬거리며 떨면서도 끝까지 말을 내놓았다. 서온은 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에 취약했다. 누군가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게 싫었고,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긴장했다. 그래서 아예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고, 커뮤증이라는 그리 달갑지 않은 딱지가 붙어도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말하기보다는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하는 게 편하고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편한 상황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째서인지 서온은 떠오르는 말들을 있는 그대로 풀어놓았다.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아도 되잖아요. 쟤도 놀랐을 텐데, 쟤는 죽을 뻔했으니까, 정말로 깜짝 놀랐을 텐데. 더러운 것 취급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서온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말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자꾸만 열기가 차올라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졌고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뒤로는 엉망진창이었다. 손님은 뭐 이딴 가게가 다 있냐며 진절머리를 내며 나가 버렸고, 사장은 허둥지둥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서온은 가슴이 뻐근하게 아플 때까지 쌕쌕 가쁜 숨을 내쉬었다. 사장은 좀처럼 진정하질 못하는 서온을 택시에 태워 조기 퇴근시켰다. 서온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울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펑펑 울었다. 진이 쭉 빠질 때까지 울고 난 뒤, 서온은 핸드폰으로 길고양이의 삶에 대해 찾아봤다. 서온은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3~5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매일 백여 마리의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는다는 것을, 아직도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을 법적으로 처벌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 상태창은 알려 주지 않는, 알고 싶지 않지만 꼭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 -냠냠이맘: 슬슬 장마철이네요. 애덜 비 피할 집 돌아봐야겠지요?-빵만듦: 밥그릇도 높은 곳으로 옮겨야겠습니다.-빵만듦: 문제 있는 냥냥이는 없죠??-구리개구리: 삼색이-구리개구리: 요즘 안 보이던데요-구리개구리: 그 왜-구리개구리: 한 달쯤 된 새끼-구리개구리: 델꼬데리던 애-냠냠이맘: 죠안나?-구리개구리: 넹ㅇㅇ-빵만듦: 저도 못 봤습니다.-냠냠이맘: 어디 갔지??-인간시러고냥조아: 엊그제 차에 치인 거 봤어요.-인간시러고냥조아: 올림픽대로 쪽에서요.-구리개구리: 엥-냠냠이맘: 차에요??-인간시러고냥좋아: 죽었어요...-냠냠이맘: 아.........-구리개구리: 어떡해ㅠㅠㅠ-빵만듦: 새끼는 보셨나요?-인간시러고냥좋아: 제가 봤을 때는 없었어요.-냠냠이맘: 엄마도 없는데 어딜 갔나... 큰일이네요...-구리개구리: 진짜요ㅠㅠ... 단톡방에 새로운 메시지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장마철 대비 이야기가 나오던 톡방은 어느새 양손을 하나로 모아 기도하는 이모티콘으로 가득해졌다. 서온은 퀭한 눈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꾹,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제빵사가 크게 다칠 뻔했던 그날 이후 서온은 고양이들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길고양이 배식소에 사료와 물이 떨어지지 않게끔 관리만 하고 단톡방 소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전처럼 스킬 숙련도를 올리겠다고 고양이를 쫓아다니지도 않았다. 출근길에 삼치를 만나도 상태창을 켜지 않았다. 삼치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도시는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살아가기에는 너무 좁았다. 오로지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라는 공간은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 가혹했다. 그나마 고양이는 쥐나 비둘기와 함께 새로운 터전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숫하게 죽어 나갔다. 서온은 그런 것들을 하나도 모르고 마음 편하게 상태창이나 외쳐 댔던 게 부끄러웠다. 더 많이 알게 되었다며 즐거워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이제는 상태창을 보는 게 두려웠다. 고양이가 뭘 잘못 먹고 죽어 가고 있다는 메시지가 뜨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온은 자기 한 사람 몫의 삶을 지탱하기에도 벅찼다. 감당할 수 없는 불행과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고양이를 상대로도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워지고 말았다. 송한별장르 소설 작가 겸 편집자.돈과 명예, 재미 중에서는 아무래도 재미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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