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기록하는 방법 - 1화. 잊히지 않는 아카이브를 원합니다. / tolerance

지역을 기록하는 방법1화. 잊히지 않는 아카이브를 원합니다. 1. 잊힌다면, 아카이브가 아니다. 저는 기록관리를 전공하고, 10년째 아카이브 관련한 일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아카이브에 관심 있거나 아카이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그 용례를 찾는 일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문화기관 용어에 견주어 봤을 때 ‘아카이브’는 사람마다 쓰임새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록관리학 범주에서 벗어나 확장된 ‘아카이브’ 쓰임새를 몇 가지로 추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무언가 기록한 결과물백업(back-up)을 목적으로 모아서 저장하는 행위외부로부터 어떤 공통 주제를 가진 자료를 발굴, 수집하는 행위 또는 그 결과물 이전에 컬렉션이나 전시, 큐레이션이라는 용어로 많이 쓰이던 개념적 용어를 아카이브로 대체한 사례도 많이 보이지만, 본래 아카이브가 갖는 정의와는 너무 벗어난 것 같아 그런 사례들은 생략했습니다. 살펴보면, 1번은 모음집이나 인터뷰집같이 정보를 모은 도서, 기록영상(다큐멘터리) 등입니다. 2번은 경험상 예술작가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초안이나 애셋(asset)을 저장해두거나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백업은 복원의 관점, 아카이브는 재연의 관점에서 개념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습니다. (이건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 패스하도록 하겠습니다) 3번의 경우 대체로 ‘아카이브 사업’, ‘아카이빙 사업’, ‘기록화 사업’ 같은 이름으로 지자체, 재단, 문화원 등지가 발주하는 사업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보편적으로 아카이브 하면 생각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업들은 지역 문화나 역사(특히 근현대 미시사) 발굴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2010년을 전후로 국내에서는 로컬리티 기록화, 일상 아카이브, 공동체 아카이빙, 마을 아카이브와 같은 개념이 생겨 일종의 지역 기록화 운동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숱한 사업이 생기고 확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메모리나 증평군 기록관 같은 일부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결과물은 책이나 영상으로 만들어져 제작자가 만족하는 예쁜 품질의 지류에 최소 제본 가능 부수인 300부쯤 맞춰 제본한 후 제작자, 발주처 담당자, 발주처 소관 자료실, 이해관계자에게 전달하고, 누군가 목차를 읽은 다음 휙 전체를 훑어 넘겨본 후 책장에 꽂는 순간 잊힙니다. 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독자 1천 명이 안 되는 지자체 유튜브 계정에 올려둔 기록영상은 매스컴이나 알고리즘을 타지 않는 이상 조회수 100 미만을 기록한 채 월평균 조회수 10 미만을 기록하다 어느 순간 원본 영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로 유튜브 서버에만 남습니다. 포인트를 찾으셨나요? 기록화 사업의 결과물은 대체로 책과 같이 손에 잡히는 뭔가로 만들어지거나 짧은 동영상으로 제작된 다음, 채 1년이 지나지 않아서 잊히는, 즉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아카이브를 위시한 사업이 그 목표를 잘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카이브라는 말 자체가, 영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을 관리하는 장소, 부서 또는 기록 그 자체인데 말입니다. 그냥 모으면, 아카이브가 되는 걸까요? 모아서 예쁜 책을 낼 거면, 왜 컬렉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나요? 좀 새로운 단어라 힙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카이브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아무래도 어떤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에너지를 100% 발산한 후, 아름다운 결과물이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잊힌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 아카이브는 맥락을 가져야 한다. 아카이브의 본질적 특성은 무엇일까요? 아카이브는 기록을 관리하는 기관, 부서, 또는 기록물 덩어리입니다. 이 세 가지 뜻이 한 단어에 들어 있다니 의아할 수 있겠습니다.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유래한 라틴어 arche는 시초, 시작, 정부 기관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정보는 권력이었고,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인 기록은 그래서 정부 기관 서고에 가득 찬 종이로 된 권력 그 자체로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카이브는 단수(archive)일 때 단일 기록물, 복수(archives)일 때는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 됩니다. 친숙한 도서와 기록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기록과 도서는 관리 방식이나 쓰임새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유일본과 복본이라는 점입니다. 도서는 수백 권에서 수만 권까지 복본을 대량 생산합니다. 대체로 판매가 목적이어서 시장 논리에 따라 부수가 정해집니다. 기록은 어떤 의도를 통해 만들어지는 행위의 증거물 같은 개념입니다. 따라서 업무나 활동이 발생하면 그와 동시에 생겨나는 자료이기 때문에, 배포할 목적이 없는 이상 유일본이 됩니다. 두 번째 차이는 의미를 갖는 단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도서는 한 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갖습니다. 조지 오웰이 쓴 유명한 소설 <1984>는 전체주의 독재 속 디스토피아를 경고함으로써 독자에게 교훈을 주는, 그 자체로 사회적 영향을 주는 책입니다. 반면에 기록은 한 건으로 큰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결정적 한 건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기록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건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서 의미가 있는 그런 부류의 기록은 수사 기록이나 역사 기록 정도입니다. 대부분이 모여 있어야 의미를 갖는 경우입니다. 국가지정기록물로 관리하고 있는 <도산 안창호 관련 미주 국민회 기록물>은 몇 건이나 될까요? 무려 17,000건입니다. 사실 이런 개념은 생각보다 이해하기 쉽습니다. 내가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매일 오늘의 주제를 정하고, 보름 전 먹은 것, 어제 즐거웠던 것, 오늘 반성한 것을 차곡차곡 기록해 봅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눈을 감고 대충 아무 권을 뽑아서 펼치면, 2024년 8월 18일 먹은 음식이 나옵니다.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미시생활사를 연구하는 누군가에게는, 100년 뒤에야 큰 의미를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나의 10년 전 의식의 흐름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10년간 나는 어떻게 성장해 온 것인지… 내 일기 속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할 때 비로소 내 삶이 변화해 온 의미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은 하루치 일기가 아닌 몇 권이라는 덩어리 속에 숨겨진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 맥락은 예를 들면, 강서구에 이사 온 내가 지역 청년 활동을 하며 지역을 인식하는 시각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평소 메타인지 훈련을 통해 건강한 정신을 갖고 싶은 내가 매일 어떤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해결했는지와 같은 과정을 일기에 기록함으로써 결국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자 했던 나의 다짐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전체적인 흐름입니다. 이런 맥락을 잘 ‘스토리텔링’ 하면, 그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서사(narrative)입니다. 그러므로 아카이브에서는 맥락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몇 권이나 되는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고 맥락을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잊어버리기도 쉬우니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생깁니다. 그래서 일기 한 장마다 일종의 정보를 정리해 놓습니다. 날짜, 날씨, 작성한 시각, 그날 기분, 일기 제목, 일기의 주제 등…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에 이런 정보를 쓰는 칸이 다 있었음을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정보 항목들을 메타데이터라고 하고, 모아 놓았을 때 기록의 맥락을 파악하는 주요 데이터로 씁니다. 요즘 아카이브는 모두 디지털 관리가 기본이기 때문에, 저런 정보만 잘 확보해 놓으면 원하는 주제에 해당하는 일기만을 검색해 볼 수 있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랜 기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에서 축적되어 그 덩어리만의 맥락이 생겨날 때야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서사가 만들어집니다. 3. 레드오션인 아카이브 사업을 낭중지추로 만들기 다시 요즘의 아카이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10년대 이후 지역 아카이브 사업 붐이 일어나면서 그야말로 아카이브 전성시대입니다. 이런 가운데 잊히지 않고 남겨지는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지역의 플레이어가 써먹을 수 있는 아카이브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기간 성과로서 아카이브를 전면에 내세운 사업은 많습니다. 시민 기록 기증전시, 일회성 수집 프로젝트, 교양 수준에서의 아카이브 교육, 아카이빙 북 출판, 홈페이지 사업 등, 아카이브의 ‘collective’ 면모를 강조한 사업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아카이브의 본질은 오랜 시간 쌓여 자신만의 서사를 표현하는 저장소입니다. 단기간에 만들어진 결과물은 일회성 콘텐츠로 소비되며, 이때 모인 유무형 자산은 담당자의 컴퓨터나 누군가의 책장에 꽂히거나 보도자료 같은 일부 정보의 조각들만이 남기 일쑤입니다. 조직 내에서 아카이브가 고유 업무로 정착되면, 이런 ‘아카이브’ 사업의 결과물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결국 조직이나 그 지역만의 대체 불가능한 고유 가치를 지닌 아카이브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산 투입, 중장기 전략의 변경, 아카이브 고도화 등 변곡점을 통해 성장세는 가파르거나 완곡해질 수 있지만, 꾸준한 성장이 담보된다면 아카이브의 가치는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아카이브 사업은 다른 지역에서 흔하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여타 ‘아카이브’ 사업과는 근본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지역의 장기적 지적 자산 보존소로서, 매년 새로운 주제를 발굴해 그와 관련한 기록을 모아 낼 것이니까요.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적 투자를 고민해야 할 시기입니다. tolerance아카이브 기획자라는 멀고도 험한 길 위에서 도 닦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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