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정한 인사는 고마웠어요. / 주성희

안녕, 다정한 인사는 고마웠어요.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데 아무리 봐도 도무지 정이 안 들던 동네가 있었다. 어두운 밤 듬성듬성 심긴 가로등은 무섭고 낮에는 각종 공사장 소음이 가득하던 골목길. 주차 차단기 키 하나도 그냥 주지 않으려는 동대표와 기싸움을 하던 이사 첫날. 처음 강서구에 살겠다고 들어왔을 때의 첫인상은 낯설고 무섭고 빨리 떠나야 할 결심을 안겨주었다. 여긴 빨리 떠나야 할 곳이었다. 출퇴근에 용이한, 언젠가 계약이 끝나면 홀가분하게 없던 것처럼 사라질 수 있는 동네가 바로 여기라고 생각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 전 잠깐 들렀다 얼른 사라지면 그만이었다. 언제든 없어질 수 있으니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지내야겠다고, 그런 거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 주변 모든 존재들을 무시하면 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간단하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된다. 몇 초간의 정적이면 충분했다. 나와 우리 집의 존재감을 지우는 것은 그렇게 간편했다. 정적을 지켜가며 들어온 집은 고요했다. 아무리 소일거리를 해도 집에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코로나까지 불어와 나는 실직까지 당했다. 시간이 더욱 많아지고 우리는 더욱 외로워졌다. 사랑스러운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렇게 우리 집에 강아지가 들어왔다. 강아지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내향형 집돌이 집순이 부부가 하루에 두 번 이상 꼬박꼬박 산책을 나가야했다. 커다란 개를 데리고 다니니 모든 관심이 쏠렸다. 절대 말을 섞을 일 없을 것 같던 다양한 사람들이 개를 보고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존재를 숨길 수 없어졌다. 언제든 사라질 결심으로 없는 것처럼 겉돌던 우리는 강아지의 목줄에 이끌려 동네 사람이 되었다. 매일 산책을 나가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별것 없는 날씨 이야기를 하거나 강아지를 쓰다듬어주고 금방 헤어진다. 하루의 짧은 인사가 모여 5년이 되었다. 긴 시간동안 우리는 서서히 강서구에 정이 들어버렸다. 처음엔 궁산을 열심히 올랐다. 작은 산인데도 강아지와 함께 오르다 보면 금방 숨이 차올랐다. 한겨울에 땀을 흘리며 올라간 궁산 공터에서 개는 열심히 놀았다. 어느 정도 산책이 익숙해지자 서울식물원이 개장했다. 식물원을 하루에 두 번씩 걸었다. 양천향교역에서 식물원 잔디광장까지 왕복하면 3.5km가 나온다. 스마트워치는 산책하는 내 몸을 인지하고 자동으로 걷기 운동을 하는 중이라고 메시지가 떴다. 열심히 걷다 보니 단골 카페도 생겼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던 첫날 이후 뺀질나게 드나드는 중이다. 이젠 내가 가지 않아도 강아지가 스스로 앞장서 걷는다. 자신의 산책 루틴에 이 카페가 빠지면 안된다며 몸에 힘을 주어 끌어당긴다. 후다닥 달려간 카페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강아지는 간식을 얻어먹는다. 그렇게 조금씩 정이 쌓였다. 인사의 힘은 대단하다. 한밤 중 드문드문 심긴 가로등의 불빛이 무섭지 않고 동네에 생긴 작은 변화도 알아챌 수 있게 된다. 오늘은 어떤 시비가 걸릴지 불안한 걱정보다 어떤 이웃을 만날지 약간의 설렘이 생긴다. ‘ 이제 우리는 익숙한 공원을 걷고 익숙한 걸음으로 단골 카페로 향한다. 기억력이 좋은 개는 자신을 한 번이라도 쓰다듬어 준 사람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단 한번 만난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반가움을 표시하며 꼬리를 흔든다. 자신의 존재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천진난만한 강아지 덕분에 인간인 우리의 존재도 드러났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문제다. 우리는 여기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순리에 따라 우리와 개는 오늘 떠난다. 사람이야 헤어짐을 알고 인사를 건넨다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환경이 바뀔 개는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안쓰럽기만 하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강서구 곳곳 단골 카페와 이웃들을 만나며 열심히 인사를 할 예정이다. 어색했던 첫 인사가 아쉬운 헤어짐의 인사가 된다. 안녕, 다정한 인사는 고마웠어요. 덕분에 우리의 일상이 더욱 즐겁고 행복했어요. 주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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