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된 시로 뒤덮인 도시 2007년이었다. 지역 예술 문화 프로젝트에 선정이 됐다. 팀원들과 리어카에 악기와 스피커를 싣고 자작곡을 부르며 마포구 망원동을 돌아다녔다. 동네 주민들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시장에서 연주를 해 주기도 했다. 사람이 찾지 않는 황량한 폐허, 어째서인지 애들이 하나도 놀러오지 않는 놀이터에서 온종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프로젝트 마지막 날에는 빗물 펌프장 근처에 사는 독거노인들을 초대해서 찾아가는 노래방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음악은 확실히 도시를 뒤덮을 수 있다. 잠시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우리 리어카를 좋아해 줬다. 프로젝트 이름은 구루마 레이블이었다.나는 이제 음악을 만들지 않고, 시를 만드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쏟고 있다. 나는 시가 도시를 덮는 상상을 자주 한다. 시 한 편을 단어 단위로 잘게 쪼개어, 문장 단위로 조금 길게 쪼개어 전통 시장에 붙이는 상상을 한다. 흔히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전시된 시가 구리다는 얘기를 한다. 화장실에 변기 앞에 붙은 인생 격언과 뭐가 다르냐고들 한다. 나는 아주 훌륭한 예술가이고 내 시는 다르다. 하지만 내가 아끼는 내가 쓴 시가 스크린 도어에 붙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무 길거나, 장황하거나, 형식이 특이하여서 바쁜 사람들이 읽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사람들을 버겁게 만들고 싶다. 내가 최근에 쓴 시 <절단면>을 B5 용지로 만 오천 장쯤 뽑아서 국회의원들이 다른 당을 비난하기 위해 걸어 놓은 현수막에 덕지덕지 붙이고 싶다. 특히 국회의원의 얼굴에 붙이고 싶다. 반달리즘의 화신이 되고 싶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대리운전 전단이 뿌려진 길바닥에 내가 쓴 시를 붙이고 싶다. 건물 한 채를 내가 쓴 시로 뒤덮고 싶다.그러나 붙이고 튀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다 떼어야 할 것이다. 붙이고 사진이라도 찍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 그래서 부동산에서 쓰는 360도 카메라를 사고 싶다. 방을 구경할 수 있게 360도로 촬영하는 카메라. 그걸로 내 시로 뒤덮인 도시를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리고 싶다. 당신들 도시가 잠시 시에 점령당했다고. 와서 당신들 도시가 어떻게 <절단면>이 되었는지 구경하라고. 내 홈페이지 주소가 적힌 전단을 뽑아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싶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볼 수 있습니다. CG가 아닙니다. 정말로 시가 잠시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붙였다가 촬영하고 뗐다가 촬영한 콘텐츠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다시 사람들을 초대하러 길에 나서고, 아무도 내 홈페이지에 접속하지 않아 슬퍼하는 내 모습이 너무 잘 상상이 되어서 괴로워하느라 아직 이 프로젝트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카메라도 사지 않았다. 내가 시인이 아니라 유명한 조형 예술가라면 조수를 둘 수 있을 텐데. 그럼 조수보고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시인이고 시인은 조수를 두지 않는다.김승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