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고 싶었던 나의 캐릭터처럼 글을 쓰게 된 이후로 글을 쓰거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글로 먼저 만나게 된 사람도 있고, 만난 뒤에 글을 읽게 된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이 쓴 글을 읽거나 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과 글은 닮아 있는 것 같다. 닮아 있어서 나도 그 글을 좋아하게 된다. 닮다라는 말에는 ‘어떠한 것을 본떠 그와 같아지다’라는 뜻이 있다. 그와 같아진다는 말은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같아서 좋다. 노력하면 같아질 수 있다는 것처럼. 같아진다면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 같은 것들을. 그런 생각을 하다가 시에서 ‘같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사람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 같다.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장면으로 각자의 기억을 갖게 되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가 비슷해 보이는 것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이 아닐까. 얼마 전에는 메모장을 정리했다. 메모장에는 로봇 강아지 장례식 사진이 있었다. 나에게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위한 일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일 같다. 죽은 사람을 한곳에 묻어두고 잊지 않으려는 노력 같다. 그곳에 찾아가면 그 사람은 늘 그곳에 있으니까. 보고 싶을 때 보러 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 로봇 강아지 장례식은 더는 수리할 수 없는 로봇 강아지들의 합동 장례식이었다. 로봇 강아지의 목에 걸린 위패에는 주인의 이름과 로봇 강아지들이 생산된 곳이 적혀 있었다. 로봇 강아지는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더는 수리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된 로봇 강아지들. 주인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슬퍼했을 것이다.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된 로봇 강아지들은 어딘가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놀고 있겠지. 로봇 강아지를 기르던 주인들이 이렇게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와 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만든 무언가가 아닐까. 그것은 내가 만든 인형일 수도 있고, 내가 만든 옷일 수도 있고, 내가 만든 게임 속 캐릭터일 수도 있다. 게임 속 캐릭터는 또 다른 나인 것 같다. 내가 될 수 없는 모습이 될 수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안내해 주는 안내자처럼. 나는 캐릭터를 믿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게임을 할 때마다 그곳에서 불리게 될 이름을 정하고, 얼굴을 만들고, 옷을 입히는 일은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가끔은 내가 만든 캐릭터처럼 나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한다. 그때도 나는 나의 어떤 면을 좋아하고, 어떤 면은 싫어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땠을까. 그저 나는 누군가 찍어준 사진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뿐이다. 나보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분명 내가 지내온 시간인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겠지. 어떤 면은 부럽고, 어떤 면은 부끄럽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기억나는 일들과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일들. 기억나는 일들은 나의 일 같지만, 기억나지 않는 일들은 다른 사람의 일 같다. 영영 사라져 버린 일 같다.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로 생각해 낸다는 뜻은 생각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말 같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일처럼 어떤 기억은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잊으려고 하는 일. 기억하고 싶은 일들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일.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 가끔은 내가 너무 싫다가도 너무 좋아지기도 한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의 캐릭터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싫어하지는 않는 나의 모습들처럼. 차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