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2 / 송한별

연재소설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2​​“오늘은 좀 늦었네.”“네, 죄송합니다.”“서온 씨 또 이렇게 늦으면 나 서운해?”“네, 죄송합니다.”​유행 지난 필로티 빌라 단지를 지나 CJ 공장 부지를 둘러싼 패널을 따라 걸으면 나타나는 카페, 어셈블에 도착한 서온은 사장의 재미없는 농담에 반응하지 않고 얼른 앞치마부터 꺼내 입었다. 서온은 없는 시답잖은 농담에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진짜…… 진짜, 됐어.”​그도 그럴 것이, 꿈에만 그리던 상태창이 정말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상태창을 보고 흥분한 서온은 고등어 무늬 고양이에게 연신 상태창을 외쳐 댔다. 상태창은 〔고양이〕 말고 다른 설명은 한 줄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서온이 외칠 때마다 새롭게 떠올랐다. 서온은 자기에게 삿대질을 해 대는 인간에게 기가 질린 고양이가 눈을 흘기며 자리를 피할 때까지 영창을 반복했다. 그로부터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도 스킬을 습득했다는 흥분은 가실 줄을 몰랐다.서온은 사장이 통창 유리 근처에서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하고는 손가락 끝을 꼬물거리다 슬쩍 속삭였다.​“상태창.”​손끝이 향한 곳에는 포스기가 있었다. 서온은 반투명한 상태창이 떠오르길 기대했으나 시야에 새로 나타나는 것은 없었다. 서온은 고개를 갸웃했다.​“상태창. 상태창. 상태창.”​서온은 막 초능력을 각성한 슈퍼 히어로처럼 손가락 끝을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상태창을 읊었다. 차례대로 유리잔, 커피 그라인더, 제빙기를 가리켰으나 스킬은 발동하지 않았다. 서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스킬을 발동하는 데 조건이 있는 것 같았다. 올바른 대상이 아니라는 안내 메시지 한 줄이라도 나오면 좋을 텐데, 그렇게까지 유저 친화적인 시스템은 아닌 모양이었다.​“망겜 같으니라고.”​서온은 조용히 투덜거리고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어찌 되었든 상태창이다. 남들에게는 없는 치트 스킬이다. 사용 조건이 조금 까다로울지라도 익혀 둘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서온은 짧게 심호흡을 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고양이에게는 상태창이 통했다. 포스기, 유리잔, 커피 그라인더, 제빙기에는 통하지 않았다. 어쩌면 상태창은 살아 있는 생명에게만 통하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가설을 세운 서온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생명체를 쳐다봤다. 오전 타임 아르바이터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지 모르는 사장이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의자를 정성껏 닦고 있었다. 서온은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상태창.”​산책하는 강아지들이 묻혀 놓은 털을 주워 담는 사장의 등허리 쪽에서 가느다란 직선이 한 줄 생겨나더니 위아래로 펼쳐졌다. 상태창이었다. 서온은 추측이 맞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한편 상태창에 나타난 글자에 집중했다.​〔고양이.〕​순간 잘못 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상태창에는 〔고양이〕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서온은 미간에 잔뜩 힘을 주며 눈살을 찌푸렸다.​“사장님이 고양이……?”​짧은 생각들이 서온의 머릿속을 화살처럼 스쳐 지나갔다. 인간이 아니었나? 어쩐지, 장사해서 밥 벌어먹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게으르다 싶었어. 틈만 나면 구석에 짱박혀서 늘어져 있던 데 이유가 있었던 거지.서온의 머릿속에서 생각의 화살이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사이, 청소를 마치고 쓰레기봉투를 갈무리한 사장이 허리를 펴고는 서온을 바라봤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아, 아무것도 아닙냥.”“냥?”​갑작스런 질문에 깜짝 놀란 서온은 혀를 씹는 대신 냥 소리를 내고 말았다. 고양이 생각만 잔뜩 하다 보니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소리였다. 사장은 쓰레기봉투를 든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사장의 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유리창 너머가 드러났다.​“아.”​서온은 한 발 늦게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챘다. 유리창 너머에는 장갑을 낀 듯 두 앞발 끝만 흰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상태창은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서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꼬박꼬박 졸고 있는 고양이 머리 위에 동동 떠 있었다. 사장은 이상한 것을 보았다는 듯 서온을 흘겨보며 지나쳐 갔다. 뒤늦게 수치감이 든 서온은 얼굴이 시뻘게졌다.​“이렇게 나온다 이거지…….”​서온이 원망을 담아 노려보았지만 검은 고양이는 양지바른 곳에 따끈따끈하게 늘어져서 꼬리를 한 번 살랑일 뿐이었다.근무 시간이 끝나자 서온은 맑은 얼굴로 웃으며 ‘이제 퇴근하는 거냥?’ 같은 소리를 하는 사장을 무시하고 어셈블을 탈출했다. 그러고는 닥치는 대로 스킬을 난사했다.​“상태창!”​대상은 살아 있는 동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산책 나온 강아지, 낮은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 유리창 너머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집고양이. 서온은 혹시 몰라 부서진 사탕 조각을 물고 가는 개미에게까지 스킬을 시전했다.그렇게 두 시간 동안 서른 번 정도 상태창 스킬을 사용하자 많은 것이 명확해졌다.​“진심이야? 정말로 고양이한테만 통한다고?”​상태창은 오로지 고양이에게만 발동되었다. 다른 대상에게는 아주 작은 반응도 하지 않는 상태창이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얼룩무늬 고양이, 새끼 고양이, 엄마 고양이, 얼굴 큰 고양이, 꼬리 짧은 고양이에게는 잘도 떠올랐다. 게다가 신경 쓰이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고양이.〕〔노란 고양이.〕〔흰 고양이. 코에 검은 얼룩이 있다.〕​처음에는 단호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했던 상태창의 문구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태창을 더 많이, 더 자주 확인할수록 상태창의 문구가 상세해졌다. 상태창 스킬에 숙련도 시스템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현실에서 스킬작 노가다를 시키네. 진짜 망겜인가 봐.”​기가 막힌 노릇이었지만 서온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친구가 없는 서온은 여태껏 다양한 게임을 해 왔다. 온라인 게임이 요구하는 무자비한 반복 노동이라면 익숙했다. 상태창 스킬을 온전하게 완성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말을 하지 않아도 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고양이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그 뒤로 서온은 궁산 자락부터 등촌동 뒷골목까지, 동네를 쏘다니며 고양이를 찾았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어셈블에서 일하는 시간만 빼고는 종일 고양이를 쫓아다닐 정도로 서온은 숙련도 노가다에 열중했다.안타깝게도 노력에 비해 성과는 시원치 않았다. 한 번도 동네 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탓에 서온은 밤이 늦을 때까지 엉뚱한 장소를 들쑤시기 일쑤였다. 고양이를 몇 마리나 만났나 체크하는 서온의 6공 다이어리에는 숫자가 좀처럼 늘어나질 않았다.​“저기요. 애들한테 캔 사료 그렇게 막 주시면 안 돼요.”​서울식물원 습지원 입구에 있는 다리 밑에서 간신히 고양이를 발견해 음식으로 관심을 끌려는 서온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어느 중년 여자였다. 한심해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는 않는, 아주 먼 거리감을 숨기려 들지 않는 태도였다. 여자는 고양이 사료가 가득 든 에코백을 어깨에 매고 있었다.​“네, 네에……?”​갑작스럽게 지적을 받은 서온은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섰다. 도망칠까 사료를 물고 튈까 고민하던 노란 고양이는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자 조금 더 긴장했다.​“이게 뭐, 잘못됐나요?”​스킬작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서온은 고양이 사료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얼른 고양이를 찾아서 숙련도를 올릴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상태창 숙련도가 올라가자 서온은 마음이 불편해졌다.​〔삼색 고양이. 한 살 반. 수컷. 배가 고픕니다.〕〔흰색 고양이. 장모종. 한 살. 암컷. 사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굶주린 고양이가 너무 많았다. 몰랐으면 모를까, 고양이들이 굶고 다닌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정도로 서온은 냉정한 성격이 못 되었다. 결국 서온은 생활비를 아낀 돈으로 사료를 샀다. 서온이 즉석 밥과 가격이 비슷한 습식 캔을 쳐다보자 여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에코백을 뒤지기 시작했다.​“사료를 캔째로 주면 애들이 뚜껑 절단면에 다칠 수도 있어요. 잘못하면 상처도 깊게 나고. 그런 캔 사료는 그릇에 덜어서 줘야 안전해요.”“아…… 그렇구나…….”​여자는 서온에게 가방에서 꺼낸 플라스틱 밥그릇과 수저 한 벌을 내밀었다. 서온은 뻣뻣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여자가 내민 물건들을 받아 들었다.​“앞으로는 그거 써요.”“네, 네에.”“사료는 저기 내려놓고 이쪽으로 와요.”​서온은 순순히 여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두 인간이 밥그릇을 두고 멀찌감치 떨어지자 귀를 쫑긋 세우고 경계하던 고양이가 슬금슬금 다가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서온은 여자에게 들리지 않게 소리를 죽여 상태창을 영창했다. 상태창에는 굶주렸다는 내용이 사라지고 〔맛있게 식사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다. 서온은 미소를 지었다.팔짱을 끼고 고양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가 툭 물었다.​“그쪽이죠? 요즘 고양이들 쫓아다닌다는 사람이.”“어…… 네?”“딱 보니까 그쪽인데. 캣맘들 사이에 소문 쫙 돌았어요.”​여자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서온은 애매하게 대답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숨길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잘 모르는 곳에서 소문이 돌았다니까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서온은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왜요? 뭐 하려고 애들 쫓아다녀요? 해코지하려는 건 아닌 거 같은데.”“무슨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요…….”서온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씹다가 슬쩍 여자의 얼굴을 훔쳐봤다.“저기…… 고양이들한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나요?”“어휴, 못돼 처먹은 인간 말종들이 얼마나 많은데!”​여자는 목소리를 높여 가며 말종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밥그릇 엎어 버리는 건 예삿일이고, 멀쩡한 밥통에 담배꽁초 지지는 정신 나간 놈들도 있다니까. 이상한 약 탄 밥 먹이다 붙잡힌 놈도 있고. 그런 놈들은 싹 다 잡아다 똑같이 해 줘야 해. 담뱃재 비빈 밥을 하루 세 끼 처먹여야 한다고. 크흠, 아무튼. 그쪽은 뭐, 그런 타입 같지는 않긴 한데.”“하하…… 그런, 가요?”​웃음은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서온이 알고 있는 유일한 처신이었다. 그나마도 제대로 하지 못해 웃음소리가 뚝뚝 끊겼지만 여자는 그 점을 오히려 좋게 평가했다. 여자는 게걸음으로 슬금슬금 서온에게 다가갔다.​“그쪽도 고양이 좋아해?”“그렇, 죠?”“막 찾아다니면서 밥 챙겨 줄 정도로?”“말하자면 그런 셈, 이죠?”​서온은 눈앞에 닥쳐 온, 낯선 사람과의 스몰 토크라는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되는 대로 대답을 주워섬겼다. 서온은 갑작스럽게 얼굴에 열이 올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는 것이 늦었고, 그사이에 여자는 결론을 내렸다.​“이 동네 고양이들, 내가 싹 다 알려 줄게.”“네, 네에?”“그러잖아도 성지아파트 쪽에 몇 마리가 새로 자리를 잡았거든. 자기는 그쪽 중심으로 밥 주면 되겠다.”“밥을요? 제가요?”“응응, 그치. 밥 주기 좋은 곳이 어딘지 알려 줄게. 조심해야 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부터 한 바퀴 싹 돌아보면…… 그래, 세 시간쯤이면 되겠다.”“세 시간이나요?”​지금까지의 대화로 한 달어치의 사회성을 몰아서 써 버린 서온은 하얗게 얼굴이 질렸으나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온은 스스로의 커뮤증을 원망하며 동네 고양이 배식 투어에 끌려가고 말았다.결국 서온은 네 시간하고도 반 동안 이어진 대장정을 마치고, 동네 캣맘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도 끌려 들어간 다음에야 간신히 귀가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하고 눈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운 내향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하루였다.​‥ 다음 달에 이어서​​송한별장르 소설 작가 겸 편집자. 돈과 명예, 재미 중에서는 아무래도 재미인 편​https://www.instagram.com/missing_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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