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문화예술지원사업과 나 비행기를 탈 때 마다 생각한다. ‘직업’란에 뭐라고 쓸까. 친구들과 동료들로부터 감사하게도 가장 많이 불리는 호칭은 ‘작가’다. 물론 예술에 가까운 어떤 것을 하는 사람은 다 ‘작가’라고 불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니면 눈에 불을 켜고 각급 문화재단 홈페이지의 각종 예술지원사업 공모를 한 바퀴 도는 게 하루의 주요한 일과이고, 내가 해당되는 어떤 것이 있으면 어떻게 지원금 수혜자가 될 지를 고민하니까 ‘기획자’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어딘가 좀 낯간지럽다. 좋은 기획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 차치하고 ‘그래서 당신이 뭘 기획했는데?’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으니까.나는 아무도 보지 않을 영화글을 쓰고, 혼자 혹은 동료들과 함께 할 지원사업 계획서를 쓰고, 정산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꽤 오래 중학생 대상 국어학원에서 논술강사로 일하면서 나는 내 인생의 직업이 학원강사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적정한 급여, 적정한 휴일, 조금 과한 업무강도. 그야 말로 표준적인 한국 근로자의 삶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날 아침,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날 보고 원래의 전공이었던 비평쓰기를 통해 원고 노동자의 길로 돌아가겠다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모르고 살면 좋았을 단어들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NCAS1, SCAS2, e-나라도움3.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지원사업 공모가 뜨면 올해도 나는 이 사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공허감이 들면서도 느적느적 서류를 준비한다. 이게 아니면 그 어디서 한 달에 120만원씩 꽂힌단 말인가(참고로 이 사업은 ‘참여예술인’과 ‘리더예술인’으로 나뉘는 데 ‘리더예술인’을 하면 20만원 더 받을 수 있다. 물론, 그냥 더 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사업의 공고가 나기 시작하는 연초는 예술인들에게 있어 ‘씨 뿌리는’ 기간이다. 각급 문화재단에서 각종 ‘창작지원공모’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이곳저곳에 서류를 내야 하는 기간이니까. 현재 한국은, 예술가가 신작을 발표하기 위해선 지원기관의 공모서류를 내야 하는 구조다.2018년 예술인파견지원사업4을 인천에 위치한 독립문화공간 ‘듬’에서 함께 했었다. 나는 2017년을 기점으로 예술인복지재단에 가입된, 아직 사회인으로서의 감각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때 참여했던 작가들이 계속 ‘바로 그 지원5’을 언급했다. 나는 이게 무슨 말 인지 몰랐지만 사실 관심도 없었다. 그때 나는 CGV의 예술영화 브랜드인 ‘아트하우스’에서 관객대상 영화해설 프로그램 진행과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더 할 생각이 없으니 다른 작가들이 말하는 ‘바로 그 지원’이 무슨 소린지도 몰랐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2019년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예술지원사업에 지원하게 되었다. 예술인파견지원에 내가 늘 된다는 보장도 없고, 영화글을 발표할 기회는 매우 한정적이다. 나 자신의 능력부족과 겹치면 실제론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 물론, 원고료는 내가 대학을 다녔던 때와 동일하다. 원고료는 물가상승률에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창작실험을 진행할 때 사비를 늘 태울 순 없는 일이었다. 실은 태울 사비도 없는 게 맞겠지만.언젠가부터 나의 하루 일과 마지막은 각급 문화재단의 홈페이지를 순회하는 것이 되었다. 인천지역은 다행이도 광역재단인 ‘인천문화재단’과 기초단위 재단인 ‘연수문화재단’, ‘남동문화재단’, ‘인천중구문화재단’, ‘인천서구문화재단’, ‘부평문화재단’ 등등이 있으므로 이리저리 내가 해당되는 사업들이 제법 있는 편이었다. 또한 ‘청년’을 지원하는 기조가 몇 년째 이어졌고 다행히 아직은 청년구간을 지나는 나로선 더욱 혜택이 있었다. 어느 해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낸 사업들이 전부 선정되어서 당황스럽게도 바쁜 해를 보낸 적도 있었고, 어느 해에는 어느 것도 되지 못한 채 강제로 안식년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서류를 쓰고 정산 하는 행위. 즉 창작이외의 행정업무는 예술가를 갉아먹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지원사업에 일정 정도 애를 쏟아야 하고 그러면 주업이 창작에 쓸 에너지가 반감되는 악순환은 동시대를 견뎌내는 예술가에게 놓인 딜레마가 아닐까 생각한다.최근 3년간은 ‘학술포럼’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24년 7월 6일, 인천문화재단의 ‘예술창작지원사업’6 지원을 받아 학술포럼 <바디 이슈- 확장되고 심약한>을 진행했다. ‘몸’을 중심으로 아동문학에서 ‘아동’의 신체에 대한 담론, 영화에서 ‘신체강탈물’ 장르에 대한 고찰, ‘바디 포지티브’ (자기 몸 긍정주의) 활동가의 이론, 헬스 트레이너로서 신체단련에 대한 관점 등을 한 자리에 들어보는 취지로 기획한 포럼이었다. 2023년에는 인천문화재단의 ‘청년창작활성화’7사업을 통해 <재난 이후의 삶>이라는 제목의 학술포럼을 진행하였다. 재현매체에서 ‘재난’은 재현가능한 소재인가 아닌가, 재현한다면 윤리적 측면에서는 어떤 관점일 수 있는 가 등을 연구하는 포럼이었다. 2022년에는 ‘시민문화활동지원’8 을 통해 ‘퀴어’와 ‘소수자’를 주제로 한 포럼을 진행했다. 학술포럼은 이른바 ‘선생님’ 급들이 패널로 출연하고 딱딱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것이 국룰이다. 일련의 포럼을 기획한 나와 동료들은 이게 싫었고, 젊은 이론가들이 합당한 금액을 받고 자신의 연구를 발제할 수 있는 포럼을 진행하고 싶었다. 물론,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화예술예산 중 일부를 ‘보조금’의 형식으로 지급받아 진행하는 사업에서 ‘인건비’ 지출은 굉장히 엄격하다. 포럼에 참여하는 패널들의 인건비를 책정한 예산표를 보고 어느 심의위원은 ‘국제포럼 하느냐?’ 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으니까. 지금 현장에서 기획적인 일을 하며 일을 만드는 세대와 심의하는 세대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지원사업을 통해 어떻게든 온몸을 비틀면서 창작물과 이슈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단순히 아이디어의 ‘참신성’과 ‘적절성’, 인천 같은 지역에선 ‘지역성’이라는 목적성에 부합시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가 ‘왜’ 필요한지를 납득시켜야 하는 삼중고에 처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진심으로. 모두의 무운을 빈다.비행기를 탈 때마다 생각한다. ‘직업’란에 뭐라고 쓸까. 몇 년을 인천의 각급 지원사업을 굴러다니며 가끔은 많은 이들과 공명하는, 가끔은 참여자보다 운영팀 인원이 더 많은 그런 부조화스런 사업을 일으키고 마무리 해왔다. 그러니 이젠 부끄럽지만 ‘Artist’라고 적어보려 한다.박지한 1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 지원서의 제출과 정산이 이루어지는 플랫폼2 서울지역의 지원사업의 지원서 제출과 정산이 이루어지는 플랫폼3 보조금 통합 플랫폼. 사용이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4 예술인의 사회적 가치 확장을 위해 다양한 예술직무영역을 개발하고 사회(기업·기관 등)와 협업을 기반한 직무를 제공함으로써 적극적 예술인 복지를 실현하고자 진행하는 사업. 2월초에 공고가 난다.5 2015년부터 2022년 까지 형태를 바꾸어 존속했던 인천문화재단의 예술지원사업. 신진작가들이 예술적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빠르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작가들은 실험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방식6 연초에 공모하는 지원사업. 인천문화재단의 창작관련 사업 중 가장 큰 규모이다7 인천에 위치한 청년창작지원센터 ‘시작공간 일부’에서 진행한 창작지원사업. 2024년 부터는 앞서의 ‘예술창작지원사업’과 통합되었다8 인천 시민들의 문화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지원사업. 최근에는 이름이 ‘시민X’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