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린 줄 알았는데 기러기작업실 「이사각」_돛과 닻 작업실에서 작업을 한 지 한달가량 되어간다. 굉장히(사실 그 어떤 형용사로도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좋다. 붓을 잡은 지(정확히는 미술학원 첫 등원) 30년 차, 11번째 작업실, 사업자 6년 차에 마련한 첫 단독 작업실이다. 아.. 단독 작업실이 나를 이렇게 설레게 할 줄이야. (미술 하는 여러분, 작업실은 혼자 쓰는거예요(속삭))디자인 일을 같이하는 지수가 옥탑 작업실보다 편하게 오가는 것도, 좀 더 쾌적하고, 자유롭게 일하는 것도 좋다. 클라이언트들과 미팅 때 그간 모아 놓았던 샘플(을 핑계 대고 수집한)들을 마음껏 펼쳐 놓고 의견을 나누는 것도 좋다.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아무것도 찍지 않았지만, 회화 존과 판화 존이 있기에 언젠가 내 꼭 하리란 마음을 다잡는 것도 좋다. 나는 그동안 돛의 시즌을 보냈다. (나는 돛기라 부른다.) 때로는 몸이, 어떤 때는 마음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한 곳에 자리 잡지 못했다. 둥둥 떠다니며 불안해한다거나, 훨훨 날아가 자유로웠단 의미보다는 대체 내가 무엇인지, 뭘 하고 싶은 것인지 찾아다니던 때였다. 길가메시나 사라사, 슈리처럼 굉장히 긴 모험을 했던 느낌이다. 내가 비교적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던 건 언제 어디서든 기댈 수 있는 닻과 같은 존재들이 있어서다. 그건 가족이기도, 연인이기도, 친구이기도, 동료이기도 했던 것 같은데, 어렵거나 힘든 순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따뜻한 조언을 해서는 아니다. (대체로 나는 그런 순간 혼자 가만히 잔다. 정말 많이 잔다.) 그 기간을 조용하고 안전히 흘려보낼 수 있던 건 그들이 그냥 존재로 든든했다.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돛기를 보내고 내가 누군가에게, 한편으론 내가 나에게 닻이 되는 시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닻기를 보내고 있다.Joo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