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 역사문화 탐방로드 - 강서양천을 사랑한 사또, 겸재 정선 (1) / 권태운

강서 역사문화 탐방로드 - 강서양천을 사랑한 사또, 겸재 정선 (1) 겸재 정선 사또길 강서양천을 사랑한 사또, 겸재 정선-두 노선비의 아름다운 우정이야기- 인왕산 호랑이, 정선 유란동에서 태어나다. 겸재 정선(1676~1759)은 1676년 1월 3일 한성 북부 순화방에서 정시익과 진사 박자진의 딸인 밀양박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조부 정연 대에는 순화방에 세거하며 여러 명문가와 교유하며 성장했다. 특히 장동 김씨 집안과 밀접히 교유했는데, 정선의 스승 김창흡은 병자호란때 강경파 김상헌의 손자이다. 정선이 14세 되던 1689년에 부친이 사망하자 홀어머니와 8살짜리 동생까지 거느린 소년 가장이 되어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정선은 다행히 이웃에 살던 외할아버지 박자진의 보살핌으로 청년기를 보냈다. 특히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정선은 그림 공부에 힘을 쏟았다. 20세쯤 자신보다 5살 많은 이병연이 충남 예산에서 순화동에 왔는데 학문이 깊고 한시에 능한 인물이었다. 장동 김씨와 친척인 이병연 집안은 한양으로 이주하였다. 이병연은 정선에게 스승의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특히 이병연은 한시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정선의 그림을 한눈에 알아보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처지가 비슷했던 이병연도 그림을 잘 그리는 정선에게 호감을 느끼고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정선은 이병연을 형처럼 선배처럼 따르게 되었는데 함께 낙향한 스승을 찾아가기도 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스승 김창흡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겸재 정선 금강산에 가다 1710년 이병연은 금강산 가는 길목의 금화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711년 늦가을 정선은 같은 동네에 살았던 신태동(1659~1729)의 요청으로 함께 금강산으로 향했다. 겸재 정선은 일찍이 스승 김창흡으로부터 금강산에 관한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뿐 아니라 진경산수를 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다. 그리고 금화현감 이병연과 철원에 은거 중인 스승 김창흡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때 진경산수화풍으로 그린 13점의 그림이 《신묘년풍악도첩》(국립중앙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그때 정선의 나이는 36세였다. 이듬해인 1712년 금화현감 이병연은 다시 정선을 초대하였다. 금강산을 한번 다녀갔으니 자기 가족을 데리고 오라는 핑계였지만 정선이 금강산을 제대로 그려보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이병연의 구상대로 정선은 내금강과 외금강의 진경 21폭을 그려 이병연에게 주었다. 《해악전신첩》이다. 이병연은 《해악전신첩》을 명품으로 만드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중국에서 조선 제일로 칭송한 스승 김창흡뿐만 아니라 시인 조유수, 서화 수장가 이하곤과 신정하 등 당대 유명 인사들에게 돌려 보이며 감상 시를 받아 넣었다. 안타깝지만 그림이 전해지지 않는다. 《해악전신첩》으로 정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너도나도 정선의 그림을 구하려고 안달했다. 당시 정선의 그림값이 집 한 채 값이고, 중국 전문화원 그림의 10배라고 했으니 조선뿐만 아니라 동양 화단의 대단한 한류의 시작이었다. 이병연은 일찍부터 정선의 문인화가로서의 재능과 잠재력을 간파하고, 기회가 왔을 때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고품격 상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병연과 정선은 문인으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다. 겸재 정선 벼슬길에 오르다 정선의 집에는 그림을 부탁하려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덩달아 이병연도 중국에 다녀오는 상인들을 통해 정선의 그림을 주고 필요한 책을 맘껏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그림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된 정선은 1716년 41세에 스승 김창흡의 형인 좌의정 김창집의 천거로 종6품의 관상감 천문학겸교수가 되었다. 1718년 조지서 별제(종6품), 1720년 사헌부 감찰(종6품)을 거쳐 1721년 하양현감(종6품)으로 부임하는데 하양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이다. 하양현감의 5년 임기를 무사히 마칠 정도로 정선은 지방관의 역할도 충실히 했다. 숙종때의 정치적 격변기를 경험한 정선이나 이병연은 매사에 신중해야 했다. 하양현감의 임기를 무사히 마친 정선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1728년 한성부 주부, 1729년 의금부도사(종5품)에 올랐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1731년 인왕산 아래로 이사하여 생활이 더욱 안정되고, 진경산수화의 화풍도 완성해 나갔다. 여유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병연이 지방관으로 파견되었을 때도 서로의 안부를 늘 확인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문수학했던 인물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였다. 1730년경 덕양산 기슭에 있는 귀래정을 방문하여 <귀래정>(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그림을 남겼다. 김광옥이 지은 귀래정은 종손 김시민(1681~1747)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김시민은 일찍이 스승 김창흡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바 있으며, 정선의 든든한 후원자 이병연과 이종사촌 간이다. 젊어서부터 이곳을 자주 방문했던 이병연은 정선과 함께 오기도 했다. 또한 강 건너에는 궁산(관산) 기슭에 소악루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이유(1675~1757)가 있었다. 이유의 초대로 소악루를 방문하여 시 짓기 모임을 하곤 했는데 자연스럽게 문인화가인 정선의 그림에 대한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1733년 58세 정선은 청하현감으로 발령받았다. 청하는 지금의 경북 포항이다. 이병연은 당시 포항에서 가까운 삼척에 부사로 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당연히 만남을 도모하였다. 1734년, 장소는 무릉계곡이다. 무릉계곡 용추폭포에서 이병연과 정선은 서로의 우정을 변치 말자고 약속하며 바위에 이름을 새겼고, 정선은 이병연에게 삼척의 <죽서루>와 <추암>을 그려주었다. 무릉계곡도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1735년 정선은 모친상을 당하여 한양으로 돌아와 인왕산 계곡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이병연은 1736년 삼척부사 임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정선은 벌써 60세가 되었다. 이병연은 65세로 당시 기준으로 고령의 노인이었다. 두 노인은 틈틈이 만나서 젊은 날을 회상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하였다. 겸재 정선, 양천고을 사또가 되다. 정선은 이병연과 오가던 한강하류의 명승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 한강을 자유롭게 다닐 방법은 한강의 길목, 양천현의 현령이 되는 것이었다. 정선은 <육상궁>을 그려 영조 임금의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위안하기도 했다. 육상궁은 영조 임금의 생모를 모신 사당이다. 드디어 1740년 정선은 양천현령(종5품)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비록 한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지만 시와 그림을 바꾸어보기로 약속하였다. 이병연은 아래와 같이 시를 남겼다. 겸재 정선이 양천의 진경을 그리고, 사천 이병연이 시를 지은 10점의 명작을 남겼다. 시화환상간 나의 시와 자네의 그림을 서로 바꿔 봄에경중을 어찌 말로 할 것이며 값으로 논할 수 있겠는가.시는 마음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둘러 나오니누가 쉽고 어려운지 알 수가 없네. 我詩君畵換相看(아시군화환상간) 輕重何言論價間(경중하언논가간)詩出肝腸畵揮手(시출간장서휘수) 不知誰易更誰難(부지수이갱수난) 정선은 양천현의 동헌에 앉아 고을을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병연과 함께 자주 왔었던 양천고을에 자신이 사또가 되어 오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더구나 양천 고을에는 이유가 동복현감을 지내고 돌아와 소악루를 지키고 있고, 강 건너 덕양산 귀래정에는 동문수학한 김시민이 있었다. 양천현의 사또가 된 겸재 정선은 지난날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양천이나 행주나루 일대는 정선에게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다.양천은 김포평야가 시작되는 기름진 농토와 고기잡이를 할 수 있는 한강이 있어 마을 살림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강가에 소금 창고도 있고,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라 예로부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마을이었다. “양천 사또는 울면서 왔다가 울면서 간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큰 기대하지 않고 왔다가 떠날 때는 순한 백성들과 편안했던 임기를 마치고 떠나려니 아쉽다는 뜻이다. 양천현에는 종5품의 현령을 파견하였는데 그만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였음을 말해준다.​​‥ 권태운종해역사문화연구소 소장(현)종해문화진흥원 이사장(전)길위의인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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