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1 / 송한별

연재소설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상태창과 고양이의 눈인사 #1​새벽 다섯 시. 아침이라기에는 다소 이른 어두컴컴한 시간에 반짝, 하고 핸드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곧이어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고, 서온은 더듬거리는 손끝으로 핸드폰을 낚아챘다. 찡그린 얼굴로 알람을 해제한 서온은 부스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양팔을 위로 쭉 뻗어 올리고 외쳤다.​“미라클…… 모닝…….”​소리 내어 말한다고 미라클 모닝이 되지는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기운이 돋아나질 않았다. 팔을 들어 올린 김에 크게 기지개를 켜고, 서온은 매트리스에서 일어났다. 비칠비칠 걸어가 전등을 켜자 자그마한 원룸이 밝아졌다. 서온은 붓기가 빠지지 않은 눈을 한껏 찡그리고는 자잘한 물건들로 어지러운 방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흐음…….”​서온은 다리를 어깨 너비만큼 벌리고는 힘을 바짝 줘 목을 꼿꼿하게 세웠다.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두 번 한 뒤, 서온은 다섯 손가락을 쫙 벌린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외쳤다.​“상태창!”​서온은 배에 단단히 힘을 주고 분명한 발음으로 외쳤다. 앞으로 뻗은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서온은 어깨를 뒤로 당겼다가 힘껏 앞으로 뻗었다.​“상태창! 상태창! 상태창!!”​연달아 외치자 정신이 맑아졌다. 온몸에 따듯한 기운이 돌며 활력이 솟아났다. 상태창을 찾는 서온의 목소리는 명료했고 앞으로 뻗는 손바닥은 반듯하게 일정한 궤적을 그렸다. 상태창을 50번째 외쳤을 때, 땀 한 방울이 이마를 가로질렀다. 서온은 손등으로 땀을 북북 문질러 닦고는 바닥에서 생수병을 찾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서온은 자기도 모르게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열기가 오른 몸에 흘러 들어오는 미지근한 물이 그렇게 달 수가 없었다.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태창은 캐릭터나 아이템 같은 온갖 사물의 상태를 보여 주는 작은 화면이다. 캐릭터의 체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상태 이상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새로 얻은 무기의 성능은 어떤지, 상태창으로 볼 수 있는 정보는 다양하다. 사실상 게임의 거의 모든 설명을 상태창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요소를 차용한 이세계물 라이트노벨이나 현대 판타지 웹소설에서 상태창은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스킬로 표현되고는 한다. 세상 만물에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니, 쓰는 방법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세계 정복도 할 수 있는 힘이다. 그렇다고 세계를 정복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서온은 바로 그 힘. 상태창이라는 스킬을 원했다.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드넓은 인터넷의 세계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어떤 사람은 정권 지르기를 매일 100번씩 하다가 무도가 같은 근육질 몸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은 매일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판으로 화려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그 외에도 작곡을 하거나 책을 쓰는 등 매일 꾸준히 연습한 끝에 훌륭한 성과를 내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수련한다면 언젠가 상태창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태창은 스킬이고, 스킬은 숙련도를 쌓으면 배울 수 있으니까. 적어도 서온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논리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비약이 있다는 걸 눈치챘겠지만 안타깝게도 서온은 그걸 알아챌 만한 여유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때문에 한 학기 휴학하고, 입원 중에 발견된 간 질환 때문에 다시 한 학기를 휴학하고, 복학 시기를 잘못 맞춰 또 한 학기를 휴학한 끝에 돌아온 대학교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워낙 소심하고 소극적인 탓에 지인이 많지 않았던 서온은 학과 생활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같은 이유로 동아리나 학회 활동을 새로 시작할 수도 없었다. 서온이 좋아하는 일본 만화에서는 남들과 제대로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습성을 ‘커뮤증’이라고 부르고는 했는데 서온은 그 표현이 극복하기 끔찍하게 어려운 것에 비해 어감이 너무 귀엽고 하찮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인터넷에는 서온의 커뮤증에 공감해 주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그들 또한 대부분 커뮤증이었으므로 서온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막아 주지는 못했다. 그러니 서온이 미라클 모닝의 기적적인 힘을 빌려 상태창 스킬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고, 다소 엉뚱한 각오를 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상이 집, 학교, 카페만을 오가며 친구 하나 없는 쓸쓸한 삶을 이어 가는 스물다섯 살 윤서온이 아침마다 상태창을 연발하고 있는 사정이었다.​목을 축인 서온은 다시 스스로 고안해 낸 자세를 취했다. 발가락을 꼬물거리면서 크흠크흠, 신중하게 목을 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온은 스킬 영창에 진심을 담아 왔지만 오늘은 마음가짐이 각별했다. 앞으로 상태창을 50번 더 외쳐서 하루 할당량인 100번을 채우면 누적 영창 숫자가 정확히 1만이 되기 때문이다. 만. 1만. 10,000. 만(萬)은 일본어로도 만(まん)이다. 서온은 일주일에 5일, 매일 아침 상태창을 100번씩 꾸준히 외쳤다. 빨간 날은 예외로 치고 일주일에 500번씩이니 1만 번이면 20주, 대충 네다섯 달어치다. 중간에 빼먹은 날도 있으니 거의 반년 정도 미라클 모닝을 핑계로 상태창을 외쳐 온 것이다.​“상태창!”​서온은 마음을 다잡고는 신중하게 상태창을 외쳤다. 1만까지 남은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자그마한 원룸에 긴장감이 짙어졌다.​“상태창!”​영창에 완전히 몰두하자 잠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에서 뜨거운 김이 폴폴 피어올랐다. 습기가 맺힌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 때는 몽글하게 덩어리 진 공기가 만져졌다. 소리 내어 주문을 외울 때는 공기와 함께 강한 기운이 몸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상태창!”​크고 높은 계단을 하나씩 힘들게 오르는 것처럼, 모든 정신을 온전히 쏟아부은 영창이 하나씩 이어졌다. 그렇게 99번째 주문이 끝나고 대망의 1만. 성공과 완성을 의미하는 신묘한 숫자 만까지 단 한 번의 영창만이 남았다.​“……상태창!!”​서온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몸을 달구던 뜨거운 기운이 활짝 펼친 손바닥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창문을 꼭 닫아 바람이 들지 않는 원룸에서 공기가 흘렀다. 뒷골부터 발꿈치까지, 온몸의 신경이 짜릿짜릿했다. 확신이 들었다. 무언가 일어났다. 무언가 이루어 낸 것이다. 서온은 꾹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특이한 것이라고는 없었다. 익히 아는 공간에 익히 아는 잡동사니 살림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엥?”​1만 번의 영창을 하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조금도. 아주 작은 것도. 서온은 어깨를 툭 떨어트렸다. 게임처럼 프리즘이 무지갯빛을 뿜어내고 팡파르가 터지고 웅장한 배경음이 깔리고, 그런 화려한 효과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밋밋하다 못해 언급할 것조차 없는 끝을 바란 것 또한 아니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적막하기만 한 방에서. 서온은 문득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바로 씻고 출발해야 간신히 아르바이트에 늦지 않을 시간이었다.​“에휴…….”서온은 고개를 툭 떨구고는 발을 질질 끌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서둘러 준비를 마친 서온은 익숙한 출근길에 올랐다. 머리를 제대로 묶지도 못하고 급하게 튀어나온 보람이 있어서 지각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온은 새로 생긴 원룸 빌딩과 오래된 빌라 단지가 뒤섞인 가양동의 거리를 지나 올림픽대로로 이어지는 삼거리에서 바쁜 걸음을 멈췄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숨을 돌릴 겸 고개를 들어 올리자 새마을금고 바로 옆, 흔적만 남은 벽돌 담장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검은색과 회색이 섞여 층이 진 무늬의 통통한 고양이가 시큰둥한 얼굴로 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고양이가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뒷발로 귀 뒤를 벅벅 긁는 게 아주 한가해 보였다.​“팔자도 좋네.”​신호등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서온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습관처럼 팔을 들어 올렸다. 다섯 손가락으로 고양이를 겨누고, 서온은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짧게 중얼거렸다.​“상태창.”​그러자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앞발로 얼굴을 닦는 고양이 머리 위로 네모난 창이 떠올랐다.​〔고양이.〕​“……어?”​서온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상태창에 놀라느라 그동안 숫자를 잘못 셌다는 것도, 머리 위에 〔스킬 습득 조건: 주문 영창(10,000/10,000) 달성! 스킬 ‘상태창’을 습득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떠올랐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다음 달에 이어서‥​​송한별장르 소설 작가 겸 편집자. 돈과 명예, 재미 중에서는 아무래도 재미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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