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하니까, 합니다. 지난여름, 우연히 방방을 알게 되고 방방을 응원하는 두서없는 팬레터 같은 원고를 전달한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늘 샤이 독자로 방방의 활동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던 내게, 너무나 감사하게도 방방 운영진분이 기고 제안을 주셨다. 제안 주신 주제는 “어린이 공연을 해야 하는 이유와 경험담”. 내게 그러한 주제를 의뢰주신 이유는 아마 내가 어린이 청소년 공연 제작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은 제안 주신 주제만큼 의미 있고 거창하기보다 그저, 어린이 공연을 해본 경험과 회고를 (지난 번처럼) 두서없이 적은 글이라는 것을 서두에 미리 밝힌다.내가 7년간 일했던 곳은 근래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핫’했던, 33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지난 2024년 3월 31일 문을 닫은, 학전이라는 공연제작사였다. 나는 학전에서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약 7년여간 기획자이자 마케터로서 일을 했다. 사실 학전을 들어가기 전에는 어린이 청소년 공연의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허나 내가 입사했을 당시 학전은 어린이 청소년 무대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청소년,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을 주로 하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어린이 공연을 접할 수 있었다. 어른들의 세상보다 더 복잡하고, 더 어렵지만 그만큼 더 흥미롭고 더 다채로운 아이들의 세상에 발을 담구게 된 것이다. 학전의 공연이 특별했던 건,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그려냈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TV 속 캐릭터가 등장한다거나, 화려한 스케일로 눈길을 사로 잡는다거나, 악당과 영웅이 등장하는 판타지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매일 반복되는 학교 생활의 지루함, 2층 침대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남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간 게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작당모의 등, 지극히 평범하고 사실적인 일상 속의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가 공연의 주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공연 속에는 어딘가 어설프고 아직 부족하지만 그 모습조차도 충분히 눈부시다는, 아이들을 향한 응원과 따스한 시선들이 담겨 있었다.공연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관객에게 공연이 가진 메시지가 오롯이 가 닿는 순간이다. 많은 이들의 영혼을 갈아 넣은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고,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관객들이 찾아와주고, 관객에게 공연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갔을 때, 비로소 공연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관객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간다는 건 공연이 가진 메시지와 그 안에 담긴 진심이 관객과 연결된다는 뜻과 같다. 내가 공연일을 하고 싶게 해주는 이유이자 원동력인 그 순간을, 나는 어린이 청소년 공연을 하면서 그 어떤 공연들보다 가장 많이, 가장 명확하게 마주했다.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것에 익숙해진 짠한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본인에게 집중한다. 있는 그대로 그 순간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온 감각을 다해 공연을 느끼고 즐긴다. 공연장을 들어올 때의 설렘 가득한 표정, 공연을 관람할 때 빛나는 눈빛, 공연장을 나설 때 흥분으로 살짝 상기된 얼굴. 다양한 지표를 통해 솔직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 이 공연이 아이들에게 연결이 되었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아이들은 공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며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고, 자신들을 향한 응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더 깊게 알아가며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어린이 청소년 공연을 왜 해야되느냐 누가 묻는다면, 그 순간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는 못 되겠지만, 그 순간을 아이들에게 더 많이 더 오래 선사해주기 위해서, 선사해야 할 것 같아서, 선사해주고 싶어서. 아이들이 한 뼘 더 커가는 일에 작은 홀씨라도 되어 보탬이 되고 싶어서, 그래서 한다고.부디 앞으로 더 많은 어린이 청소년 공연이 아이들과 연결되길 바라며, 나 또한 그러한 일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림콩하고 싶은 건 많지만 (그만큼 많이) 게으른 모순적인 사람. 아직도 늘 물음표로 가득하지만, 느낌표로 남은 몇 번의 순간들 때문에 여전히 공연계에 머무르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언젠가 서점 겸 카페 겸 LP bar겸 누군가의 지도에 저장 될 기깔나는 가게의 사장이 되는 날을 꿈꾸며,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에서 어찌저찌 사는 중.